부업으로 시작했던 쇼핑몰이 마스크로 단기간에 수익이 나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쇼핑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하루 일과 대부분을 쇼핑몰에 집중했다.
당시 마스크 매입만 원활하게 되었다면 아마도 더 큰 수익을 볼 수 있었겠지만, 마스크 매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마스크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되던 시기였기에 마스크 단가는 무섭게 오르고 있었다.
하루에 기본 2~3번은 공장에 전화하여 마스크를 요청하였지만, 연 단위로 계약한 화주(화물의 주인)들로 인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마스크 수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무렵 초등학생 자녀가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아 왔는데, 개인 방역물품을 챙겨서 등교하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정통신문에 기재된 방역 물품을 하나의 파우치에 담아 팔아보기로 한 것이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봐도 관련 제품이 없었다. 제품을 출시할 경우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공단에 있는 방역업체 목록을 확보해 두었기에 제품을 소싱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물품을 담을 파우치가 속을 썩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파우치는 단가가 높아 타산이 맞지 않았다. 원하는 디자인과 로고를 넣기 위해 제작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아내와 같이 이틀간 의정부, 남양주, 을지로를 발로 뛰며 파우치 생산 공장을 찾았다. 을지로 같은 경우 골목골목을 다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찾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시안을 보여주자 생산단가가 바로 나왔다. 단가를 더 내리기 위해 제작 수량을 늘렸고, 마침내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파우치 생산을 기다리며 상세페이지 제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크몽에서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려고 알아봤지만, 비용과 제작기간이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퀄리티는 아니지만 디자인 플랫폼에서 직접 만들었다.
5가지 방역물품과 파우치,, 그리고 상세페이지까지 모든 게 준비되는데, 10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직접 기획한 ‘방역키트’가 탄생했다. 없던 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관련 키워드 자체가 없었다. 덕분에 1페이지를 선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출시된 상품이었기에 누구도 이 상품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마케팅의 영역이었다. 우선 상품을 알리기 위해 '네이버 광고'와 ‘기사 송출’을 선택하였다. 관련 기사를 만들어 배포하고 동시에 페이스북 광고에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