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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브 Mar 12. 2022

그들의 세상은 정적으로 가득하다

영화 「아들에게 가는 길」

 위잉 돌아가는 노트북 소음,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 좋아하는 음악, 새액 새액 옆에서 새근대며 자고 있는 강아지의 숨소리. 지금의 내 주변을 이루는 소리이다. 현재 당신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소리는 무엇인가? 그 소리가 모두 없어진다면? 귀를 아무리 꼼꼼히 막아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을 착용해도 조그마한 틈 사이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와 들려버리는 소리이기에 단 한 번도 소리가 없는 삶은 상상해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 정적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두 남녀가 있다. ‘보현’과 ‘성락’은 농인이다. 둘 사이엔 ‘원효’라는 청인 아들이 있다. 보현과 성락은 원효를 시골에 계신 성락의 어머니께 돌봄을 맡긴다. 시간이 흐르고 원효가 어린이집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보현과 성락은 원효를 서울로 데려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원효는 농인인 부모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현과 성락을 피한다.


 보현과 성락은 원효가 읽어달라는 책도 읽어주지 못하고, 원효가 밤새 앓아도 어디가 아픈지 묻지 못해 성락의 어머니께 문자로 연락해 동효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 달라며 전화를 걸고 성락의 어머니가 원효에게 아픈 곳을 묻고 대답을 듣고 그 대답을 성락에게 문자로 보낸다. 원효는 수화를 배운 적 없어 수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보현과 성락은 원효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원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은 불통의 관계가 된다.

 

 그래도 원효는 수화를 조금씩 따라 해보기도 하고, 꿈속의 마녀와 했던 엄마의 목소리를 대가로 한 거래가 현실에서 성사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기에 스스럼없는 말을 던지기는 하지만 원효도 보현과 성락을 사랑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기에 부모의 심정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자식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느낀 것은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향한 지독한 원망 섞인 짝사랑이다. 요란하기보단 정적인,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홀로 하는 사랑.


 보현이 기억하는 엄마는 농인인 보현에게서 ‘문 열어 주세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보현을 추운 겨울 맨발로 내쫓았던 사람이다. 보현은 평생을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나 보현의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딸이 말을 할 수 있길 바랐고 평생 딸 걱정을 하며 지내왔다. 보현은 엄마가 되자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그렇지만 보현이 받은 상처와 엄마를 향한 원망은 지워지지 않는다.     


 분명 서로를 향해 있음에도 이 관계는 외롭다. 서로를 마주한 평행선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선 안에 애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망이 미움이 사랑이 슬픔이 투정이 온 감정이 뒤섞인 채 공존한다. 큰 상처를 주어 마음에 흉터가 생겼을지라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한다. 부모가 부모이기에 사랑한다.


 이 소리 없는 사랑이 닿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다 어느 날 문득 받고 있는 사랑을 느낄 때, 단지 정적이기에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예고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내 세상이, 내 온 우주가 그 사랑으로부터 기원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가끔씩 사랑이 닿는다. 비록 서로의 사랑이 마주한 것은 아닐지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렵다. '부모'와 '자식'이란 명사에 형용사가 붙으면 관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청인인 부모와 농인인 자식, 농인인 부모와 청인인 자식. 이들은 청인과 농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매 순간 느낄 것이다. 매 순간 좌절하고 실망할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사랑할 것이다. 그 좌절과 실망도 모두 사랑하는 과정일 뿐이다.


 

 아들에게 가는 길은 아주 정적이고 고요한 영화다. 그렇지만 치열하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이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치열함은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없을뿐더러 감당할 수도 없을 정도로 뜨겁고 강렬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그들에게 존경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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