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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12. 2024

12. 파리스처럼 심판관이 되고 싶은 애로서(曖露書)

경염(競艶) 대회는 에로스의 성찬(盛饌)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가 기울어져 망하게 할 정도의 미녀이야기는 중국 역사에 부지기수로 많이 나온다. 서양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없을 리가 없다. 트로이를 멸망하게 한 전쟁의 발단을 제공한 것도 바로 이 미녀들의 다툼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전회(前回)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에서 간단하게 설명했으니까 생략한다. 역사나 신화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금삿갓은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제우스가 신탁(神託)의 예언을 무시하고, 부인 헤라에게 엄청 혼날 것을 각오하고 테티스를 유혹하여 바람을 피웠으면 결혼식도 없고 ‘불화(不和)의 사과’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심판 자체를 파리스엑 맡기지 않고 스스로 맡았다면 누구를 선택했을까? 마누라 헤라를 선택하면 내부자 거래인 ‘답정너’이고,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를 선택하면 마누라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민감한 선택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준 결정장애 스타일이다.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밖에 못해본 금삿갓 입장에서 이런 미녀들의 누드 심판관이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해 주고 싶다. 몰매 맞을까? 아무튼 나라야 망하던 말 던 눈요기 잘하고 아름다운 여인까지 얻은 파리스의 심판 작품들이나 감상하자.

먼저 위의 것이 한스 폰 아헨(Hans von Aachen)의 1593년 작품이고 아래 것이 1588년 작품이다. 아주 앳된 소녀의 얼굴을 가진 세 여신이 있다. 당연히 중앙의 승리자 아프로디테가 예쁜 가슴을 드러낸 채 황금 사과를 잡고 헤라를 향하여 은근히 뽐내고 있다. 투구를 쓴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내리깔고 다소곳이 잇다. 여신의 왕인 헤라는 패배를 승복할 수 없다는 듯 화난 얼굴로 아프로디테를 노려보고 있다. 한수 폰 아헨은 심판의 과정보다 심판의 결과 심리 묘사에 더 치중한 듯하다. 에로스와 아이물라티오(Aemulatio : 경쟁, 질투, 시기)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래 작품에서는 패배한 아테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아이러니하다.

위는 스페인 화가 호세 카마론 보나나트(Jose Camaron Bonanat)의 1780년대 작품이다. 여기서도 발가벗은 여신은 에로스를 대동한 아프로디테이고, 공작새를 대동한 헤라와 투구와 방패를 가진 아테나는 성장(盛裝) 차림이다. 심사 과정도 필요 없이 파리스의 눈길과 손가락은 벌써 아프로디테를 가리키고 있다. 부귀영화도 명예도 필요 없다. 아름다운 여인을 취할 숩만 있다면 모든 게 끝인 것이다.

이것은 이탈리아 화가 루카 지오다노(Luca Giordano)의 작품이다. 경기는 이미 싱겁게 판정이 난 것 같은 분위기이다. 파리스의 눈은 한 곳에 고정된 채 집중되어 있다. 양 떼들도 심드렁한 표정이다. 빨리 끝내고 풀 좀 먹여주라는 태도이다.

지롤라모 디 벤베누티(Girolamo di Benvenuto)는 1470에 태어나서 1520에 사망한 이탈리아 화가이다. 그도 이 작품에서 아프로디테만 벗은 몸이고 나머지 두 여신은 옷을 입은 모습이다.

이것은 동판화이다.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작품을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Marcantonio Raimondi)가 동판화로 제작한 것이다. 에로스를 대동한 아프로디테가 벌써 승리를 한 것이다. 파리스의 손에 든 사과는 그녀에게 넘어가고 있다.


이 세 작품은 모두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의 1500년대의 작품이다. 세 여신 모두 발가벗고 심판관을 향하여 다소곳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심판인 파리스는 갑옷을 입은 채 주저앉아서 가운데 아프로디테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심중을 굳혔으리라. 그림 속의 세 여신이 모두 현대 여성들처럼 날씬한 몸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현대의 여성들도 저토록 날씬하게 다이어트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에두아르드 바이트(Eduard Veith)의 말년인 1925년도 작품이다. 아프로디테만이 벗은 몸이고 헤라는 이제 막 벗으려고 하는데 경기는 끝난 것 같다. 아테나는 투구를 벗었을 뿐이다.

위의 두 작품 모두 헨드릭 반 발렌(Hendrik van Balen)의 1600년대 작품이다. 위위 작품은 지혜의 상직 올빼미를 대동한 아테나가 방패를 들고 파리스의 앞에서 열심히 자기를 설명하지만 파리스의 눈은 한쪽 유방을 살짝 가림으로써 더 선정적인 포즈를 취한 아프로디테에게 꽂혀있다. 그런 게 바로 애로(曖露) 즉 가리고 노출하는 전략이다. 아래의 작품은 패배한 아테나는 멀직히 떨어져서 실망한 채 앉아있다. 헤라는 질투와 분노의 표현으로 아프로디테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위의 두 작품은 프랑스 플로리스(Frans Floris)의 1548년도, 1550년도 작품이다. 위의 것은 경기는 끝나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건네고 있다. 헤라와 아테나는 질투의 얼굴을 하고 아프로디테를 노려보고 있다. 아래 작품도 마찬가지다. 헤라의 풍만한 몸매보다 아프로디테의 몸매가 더 날씬하게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쟝 프랑스와 드 트로이(Jean Francois de Troy)의 1700년대 작품인데 아프로디테가 벗은 몸으로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파리스에게 선택해 달라고 아야을 떠는 모습이다. 반면에 헤라와 아테나 두 여신들은 모두 옷을 입은 모습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어필을 하는 광경이다.  

이것은 스페인 화가 엔리께 시몬네(Enrique Simonet)의 1900년대 작품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프로디테가 온몸을 활짝 열고 파리스를 향하여 미소를 짓고 있다. 헤라는 옷을 모두 입고 공작새의 화려한 날갯짓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아테나 또한 벗은 몸이지만 천으로 살짝 가린 채 신비함을 노려보지만 여기서는 노출이 가림을 이기는 내러티브이다. 

이것은 독일의 인상파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의 작품이다. 헤라만 입고 있고 두 여신은 벗은 채 심사를 하고 있다. 아프로디테의 늘씬한 몸매가 정말 눈부시다.

이 작품은 자크 클레망 바그레(Jaques Clement Wagrez)가 그린 것으로 세 여신 모두 옷을 성장(盛裝)하고 있다. 철저히 가려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애(曖)의 전략이다. 얼굴과 옷자랑이다.

필립 패로트(Phillipe Parrot)의 1890년대 작품으로 세 여신이 모두 벗은 것이다. 중앙의 아프로디테가 승리하여 황금사과를 막 받으려는 찰라이다. 헤라는 쇼울을 걸치고 약간 가린 모습이고 아테나 역시 홀딱 벗었지만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위의 두 작품은 네덜란드의 화가 요아킴 브테바엘(Joachim Wtewael)의 작품이다. 위의 작품은 벌써 경기는 한쪽으로 기울어서 끝났다.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를 건네받고 있고, 헤라는 실망하여 먼 데를 쳐다보고 있으며, 아테나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아래 작품은 마치 숲 속에 야유회를 온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이쪽에서는 즐기고 저쪽에서는 치열한 경연대회를 치르는 중인데, 승부는 판가름 났다. 아테나가 부러운 눈으로 황금사과를 노려보고 있다. 

안톤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의 1770년대의 작품이다. 파리스는 가장 가까이서 자기를 뽑아달라고 아프로디테의 미소 공략이 넘어갔는지, 아름다운 여자와 맺어준다는 은밀한 약속을 믿고 그리해 본 것이다

쟝 뱁티스트 마리에 삐에르(Jean Baotiste Marie Pierre)의 1700년대 작품이다. 아테나가 파리스 곁에 붙어 앉아서 열심히 유혹을 해 보지만 파리스의 마음과 눈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니클라우스 마뉴엘(Niklaus Manuel)의 1520년 경의 작품이다. 아테나도 벗고 도전해 보았지만 탈락하고, 헤라는 아예 벗지도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준 대신 아프로디테의 약간 임신한 여인처럼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려는 포즈로 오인될 수 도 있겠다. 

이것은 코르넬리스 판 하를럼(Cornelis van Haarlem)의 1628년경 작품이다. 아프로디테가 승리하자 아테나는 빠쳐서 돌아서서 있고, 헤라는 분노의 표시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카렐 반 자파엔(Carel van Savoyen)의 1650~1660년 경의 작품이다. 헤라는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서 공작을 대동하고 있고, 아테나는 방패와 투구로 전쟁의 여신임을 강조한다. 반면에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헤라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듯하다. 사전에 파리스와 묵계가 있거나 자신감이 넘치는 몸짓이다.

아드리안 반 데르 베르프(Adriaen van der Werff)의 1712년 경의 작품과 아래는 1716년 경 작품이다. 위의 것에는 승리자 아프로디테만 강조하고 나머지 두 여신은 아예 지나가는 행인 1-2 정도로 묘사된다. 아프로디테의 등뒤에 가려져서 파리스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 반면에 아래 작품에는 헤라와 아프로디테가 적극 파리스를 유혹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아테나는 뒤쪽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아프로디테의 승리가 예상되는 구도이다.

미켈레 로카(Michhele Rocca)의 1710~1720년대의 작품이다. 비교적 세 여신이 치열하게 자신을 과시하며 적극적으로 파리스를 설득하려는 모습이다. 이면 계약이 없다면 그런대로 공정 경쟁의 구도가 보인다.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의 1720년 경 작품이다. 이 건 미인대회의 요건을 못 갖춘 것 같다. 후보자 한 명에 대하여 심판을 한다는 것은 독점이나 마찬가지다. 어쨌든 황금사과는 주어지고 있다.

마리아 아나 앙겔리카 카우프만(Maria Anna Angelika Kauffmann)의 1770~1790년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세 여신 모두가 옷을 입은 모습이다. 스위스 태생의 여류화가라서 그런지 누드를 그리지 않고 옷을 입은 모습을 그렸다.

프랑스와 자비에르 파브르(François-Xavier Fabre)의 1808년 경 작품이다. 심판은 이미 끝났다. 아프로디테는 벗은 몸으로 승리에 취하여 득의 한 모습이다. 마치 파리스를 향해 안길 태세이지만 얼굴은 패배한 두 여신에게 승자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패배한 헤라와 아테나는 작별의 손을 흔들며 떠나가고 있다. 공작새도 날개를 접고 시무룩하다.

기욤 기용 르티에르(Guillaume Guillon Lethiere)의 1812년 경의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령 과들루프(Guadeloupe) 출신의 화가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에서 활동하였다. 승리자인 아프로디테가 당당한 나신을 자랑하고 있고, 패배한 헤라와 아테나는 성장(盛裝)을 한 채 돌아가려다가 미련이 남는지 뒤를 돌아다보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요제프 하우버(Joseph Hauber)의 1819년 경 작품이다. 뮌헨 미술아카데미의 교수였던 그의 작품은 세 여신 모두 벗은 모습니다. 가운데 아프로디테의 당당한 모습이 눈길을 끌고, 아테나는 나무그늘에서 어두운 모습이며, 헤라는 예쁜 엉덩이와 뒤태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는 승패가 갈라진 상태이다. 세 여신 모두 현대적인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장 밥티스트 레뇨 남작(Jean-Baptiste Regnault Baron)의 1820년 경의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화가로서 루이 16세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화가로서는 무척 영예스러운 일이다. 그의 작품은 샛감이 무척 화려하고 밝게 표현되었다. 전면의 아프로디테는 마치 꿈을 꾸는 표정으로 환상에 젖어있는 모습이고, 심판관인 파리스가 도리어 애원을 하는 모양이다. 모종의 거래에서 파리스가 을의 입장으로 된 것 같다. 헤라와 아테나 여신을 뒤에서 쑤근거리면서 흉보고 있는 모습이다.

앙리 피에르 피쿠(Henri-Pierre Picou)의 1800년대의 작품이다. 아프로디테의 눈부신 나신이 좌중을 압도하고 득의 찬 미소를 지으면서 황금사과를 받으려 하는 모습니다. 파리스가 데리고 있는 양치기 사냥개가 도리어 여신들의 미모에 반한 듯이 그녀들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1862-1864년경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 활동 중 '어둠의 시기(1861~1870)'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여신들의 모매는 적나라하나 얼굴은 흐리게 처리하였다. 아프로디테는 심판관 파리스에 다가 가서 안긴 자세이지만 파리스의 손은 떠나가는 여신을 향해 뻗어 있고, 얼굴과 눈빛은 흐리게 처리하여 잘 판단하기 어렵다. 아마 세 여신 모두 마음에 들어서 마음속으로 방황하는 파리스의 심정을 그린 것이었을까?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의 1869-1870년경 작품이다. 독일의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세 여신 모두 심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고, 심판관인 파리스도 원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다. 여기서는 헤라의 나신이 가장 클로즈업되어 있다, 공작의 호위를 받으며 황금왕관 쓰고 우아하게 서있다. 반면에 아프로디테는 뒷모습을 보인다. 아테나는 아예 옷을 벗지도 않았다. 

독일의 조작가 판화가인 막스 클링거(Max Klinger)의  1886-1887년경 작품이다. 그야말로 일대일 심사를 하는 모습이다. 한 명씩 파리스 앞으로 나와서 수영복 심사가 아닌 알몸 심사를 받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제일 먼저 당당하게 파리스 앞에 두 손을 펼친 채 선택을 기다린다. 아테나와 헤라는 이제 다음 순서를 기다리면 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엔리케 시모네 롬바르도(Enrique Simonet Lombard)의 1904년의 작품이다. 스페일 출신의 화가로 종군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당하게 나신을 펼쳐 보이는 아프로디테와 수줍은 듯 옷으로 나신을 가린 아테나, 옷을 입은 헤라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선뜻 내 줄 생각이 없는지 턱을 괴고 세 여신을 바라보면서 사과를 잡은 오른팔은 뒤쪽으로 빼고 있다.

에두와트 이비에스키(Eduard Lebiedzki)의 1906년경 작품이다. 주변의 장식물들을 모두 제거한 아주 세 여신에게만 집중하도록 구도를 만들었다. 에로스도 공작도, 투구와 방패도 없다. 다만 나신을 가리는 하늘거리는 얇은 쇼울만 있을 뿐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대상에만 관심을 표하겠다는 작가의 생각이 심판관 파리스에게 전해진 것이다.

에드아르드 바이트(Eduard Vieth)의  1925년경 작품이다. 에로스가 심판관 파리스에게 하얀 면사포를 쓴 아프로디테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아테나는 옷을 입을 채이고, 헤라는 반쯤 벗은 몸으로 아프로디테 곁에 서있다. 사냥개가 매우 궁금한 눈초리로 세 여신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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