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巫峽(무협) : 중국 양쯔 강(揚子江) 싼샤(三峽)의 하나. 우산 산(巫山)의 12 봉우리가 강을 따라 있어 산의 형태가 마치 우(巫)라는 글자와 흡사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 迢迢(초초) : 까마득히 멀다. 멀고 아득한 모양. <중국 고시古詩>에 “迢迢牽牛星 皎皎河漢女(초초견우성 교교하한녀) / 초초한 견우성이요, 맑고 밝은 직녀성이로다.”, <두보(杜甫) 전출새9수(前出塞九首)>에도 “迢迢萬餘里 領我赴三軍(초초만여리 영아부삼군) / 멀고 먼 만여 리 길, 나를 더불어 삼군으로 가는구나.”, <김안국(金安國) 칠석(七夕)>에 “只應萬劫空成怨 南北迢迢不自由(지응만겁공성원 남북초초부자유) / 만년토록 부질없이 원한만 쌓이나니, 남북으로 멀고 멀어 만나지도 못하는구나.”라고 나와 있다.
* 襄王憶夢(양왕억몽) :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양왕(襄王)이 운몽택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 주위에 있는 고당(高唐)이란 누관(樓觀)을 바라보니, 그 위에 이상한 모양의 구름이 있었다. 이에 송옥(宋玉)에게 물어보니, 송옥이 답하기를 “옛날에 선왕이신 회왕(懷王)께서 일찍이 고당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임금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枕席)을 같이하소서.’ 하므로, 회왕이 하룻밤을 같이 잤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여인이 떠나면서 ‘저는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는데, 아침마다 양대(陽臺) 아래로 내려옵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과연 그 말과 같았으므로,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는 조운묘(朝雲廟)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양왕 역시 그 누대에서 묵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그 선녀를 만나 보니 아주 고왔다고 한다. <송옥(宋玉) 고당부(高唐賦)>
무협이 예전 같고, 아래엔 초나라 궁이 아직 있어서 비구름에 단풍이 희미하니, 하늘에 떠가는 구름 같은 인간들이 즐거운 일을 연연하여 잊지 못하므로, 꿈속에서도 양왕을 추억할 뿐이다. 이 또한 옛일을 생각하여 아침저녁의 운우에 지난날 양왕의 고당의 놀이가 어렴풋하다. 하물며 어제의 일 같은 데 오늘은 어디에 계신가? 양왕의 운우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강물이 동으로 천천히 흐르며 밤에 소리 내는 뜻이라고 말할 만하다.
* 李商隱(이상은) : 813년 ~ 858년(추정), 자는 의산(義山)이고, 호는 옥계생(玉溪生), 번남생(樊南生)이다. 허난(河南) 싱양(滎陽) 출신이다. 조부 이보(李俌)는 후베이(湖北)성 징저우(邢州)의 녹사참군(彔事參軍)을 지냈으며, 부친 이사(李嗣)는 중시어사(中侍御史)를 맡았다. 이상은이 태어날 때 부친은 가현령(嘉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때부터 가세가 몰락했다. 이상은은 10세에 아버지 이사를 병으로 잃었고, 그와 어머니, 동생들은 허난의 고향으로 돌아왔고, 빈곤하게 생활하며 친척들의 도움에 의존해 살아갔다. 이상은은 장자로서 집안을 지탱하는 책임을 졌다. 25세에 令狐楚(영호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進士(진사)가 되고 校書郎(교서랑), 東天節度書記(동천절도서기), 檢校工部郎中(검교공부낭중) 등 높지 않은 벼슬을 역임했다. 영호초의 반대파인 王茂元(왕무원)의 사위가 되어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하여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修辭(수사)를 중히 여기어 정밀하고 화려하다고 하며, 典故(전고)를 많이 인용했다. 시를 지을 때는 참고 서적이 자리를 꽉 차지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당 나라 말기와 五代(오대)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다. 溫庭均(온정균)과 함께 ‘온이(溫李)’로 불렸으며, 이들의 시파를 西崑體詩派(서곤체 시파)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杜甫(두보)의 전통을 이은 만당의 대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저서에 ‘義山詩集(의산시집 6권)’과 ‘西崑唱酬集(서곤창수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