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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an 02. 2025

161> 偶題(우제) / 우연히 짓다.

漢詩工夫(241006)

偶題(우제) / 우연히 짓다.

 - 李商隱(이상은)


水亭閑眠微醉消

수정한면미취소

●○○○○●◎

물가 정자에서 한가한 잠에 약한 술기운 사라지고


小榴海柏枝相交

소류해백지상교

●○●●○○◎

석류와 측백의 작은 가지가 서로 교차하네.


水紋簟上琥珀枕

수문점상호박침

●○○●●●●

물결무늬 대자리 위에 호박 베개네.


傍有墮釵雙翠翹

방유타차쌍취교

○●●○○●◎

옆에는 비녀와 한 쌍의 취교 떨어져 있네.

* 水亭(수정) : 물가의 정자. <전당시(全唐詩)> 등 중국의 대부분 자료는 수정(水亭)이 아니라 작은 정자인 소정(小亭)으로 도어 있다. 미인(美人)의 거처를 묘사한 것이니까 집안의 작은 정자가 타당할 것 같다.

* 閑眠(한면) : 한가한 낮잠을 뜻한다.

* 小榴(소류) : 작은 석류나무인데, 중국의 대부분 자료에는 산류(山榴)로 되어 있다. 석류는 열매가 붉게 익어서 벌어지기 때문에 시어(詩語)에서 여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남자를 상직하는 측백나무인 해백(海柏)에 대응한 산류(山榴)가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 枝相交(지상교) : 나무 가지가 서료 교차하거나 교제하는 것으로 남녀가 서러 엉켜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水紋簟(수문점) : 물 문양의 대자리다. 여름날 정자에서 낮잠을 자기 위해 시원한 대자리를 편 것이다.

* 琥珀枕(호박침) : 호박무늬를 새긴 베개이다.

* 墮釵(타차) : 떨어진 비녀이다. 당연히 남녀 간에 사랑을 나누고 자려니까 머리를 장식한 비녀를 빼서 자리 옆에 두어야 한다.

* 雙翠翹(쌍취교) : 한 쌍의 취교인데, 취교는 물총새의 예쁜 깃털로 여인의 머리를 장식했다.

此亦寫美人之居也(차역사미인지거야)라. 言臨水之亭(언임수지정)에 閑無事而成眠則面上微醉之痕(한무사이성면즉면상미취지흔)이 已爲消盡(이위소진)하야. 偶見小榴之枝(우견소류지지)가 互相交接則心中(호상교접즉심중)에 應有所懷伊人之歎(응유소회이인지탄而亭中所居之華麗璀璨(이정중소거지화려최찬)이 以水紋(이수문)으로 爲簟(위점)하고, 以琥珀(이호박)으로 爲枕(위침)하니, 令人(령인)으로 氣淸心爽(기청심상)이라. 傍有雙翠翹之釵(방유쌍취교지차)가 墮了席上則閑眠時(타료석상즉한면시)에 必是髮鬖髿而成此者也(필시발삼사이성차자야)로다.

이 시도 미인의 거처를 묘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물가의 정자에 일 없이 한가하여 잠을 이루니, 얼굴의 취기 이미 사라지고, 우연히 보니 석류나무 작은 가지가 서로 사귀니 마음속으로 응당 그 사람을 생각하는 탄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자에 거하는 바가 화려하고 찬란함이 물결무늬로 대자리를 만들고, 호박으로 베개를 만드니, 사람으로 하여금 기운이 맑고 마음이 상쾌하게 한다. 곁에 있는 한 쌍의 취교 비비녀가 자리 위에 떨어졌으니, 즉 한가한 때에 반드시 머리칼이 헝클어져 이같이 되었을 것이다.

* 李商隱(이상은) : 813년 ~ 858년(추정), 자는 의산(義山)이고, 호는 옥계생(玉溪生), 번남생(樊南生)이다. 허난(河南) 싱양(滎陽) 출신이다. 조부 이보(李俌)는 후베이(湖北)성 징저우(邢州)의 녹사참군(彔事參軍)을 지냈으며, 부친 이사(李嗣)는 중시어사(中侍御史)를 맡았다. 이상은이 태어날 때 부친은 가현령(嘉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때부터 가세가 몰락했다. 이상은은 10세에 아버지 이사를 병으로 잃었고, 그와 어머니, 동생들은 허난의 고향으로 돌아왔고, 빈곤하게 생활하며 친척들의 도움에 의존해 살아갔다. 이상은은 장자로서 집안을 지탱하는 책임을 졌다. 25세에 令狐楚(영호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進士(진사)가 되고 校書郎(교서랑), 東天節度書記(동천절도서기), 檢校工部郎中(검교공부낭중) 등 높지 않은 벼슬을 역임했다. 영호초의 반대파인 王茂元(왕무원)의 사위가 되어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하여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修辭(수사)를 중히 여기어 정밀하고 화려하다고 하며, 典故(전고)를 많이 인용했다. 시를 지을 때는 참고 서적이 자리를 꽉 차지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당 나라 말기와 五代(오대)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다. 溫庭均(온정균)과 함께 ‘온이(溫李)’로 불렸으며, 이들의 시파를 西崑體詩派(서곤체 시파)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杜甫(두보)의 전통을 이은 만당의 대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저서에 ‘義山詩集(의산시집 6권)’과 ‘西崑唱酬集(서곤창수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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