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오기까지”
1부. 하루의 시작, 눈뜨기 전의 마음
늘 아침은 샤우팅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그렇다.
나도 그랬다.
"솔아 늦었어~ 김솔!"
하루의 첫 문장이 고함으로 시작되곤 했다.
어느새 그건 습관이었고, 생존 방식이었고, 나의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어느 날 문득, 아이의 눈을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어이쿠, 일어날 시간이네~
우리 솔이가 오늘도 스스로 일어나겠지?"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밥을 준비하고,
그사이 아이는 꿈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일어나려고 꼼지락거리는 상황이
꼭 소리로 들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일어났어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흔들흔들 앉아 있다.
"좋은 아침~ 아고, 우리 애기 스스로 일어났어요~"
뽀뽀, 뽀뽀, 뽀뽀세레~
아이의 웃음소리가 쨍 하고 아침을 깨운다.
고작 일어난 것뿐인데,
나는 온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그 순간만큼은 잊는다.
조금 후 다시 시작될 ‘우당탕탕’을.
ㅡ2부. 상황극과 세수 전쟁, 그리고 조용한 인내
아이의 하루는
단순히 눈을 뜨는 것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몸이 깨어나고,
마음이 준비되고,
그 모든 걸 지나야 비로소 아침이 온다.
우리 집에 아침을 깨우는 친구들은 많다.
악어, 쿠션의자, 윙크(학습기), 그리고 토끼 헤어밴드.
모두 아이의 세계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아기기리 아퍼...”
허리를 구부리고 이불 위에 웅크려 있는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땐, 묻는다.
“어디 어디~ 여기?”
하고 부위를 가리켜 보면
아이의 신호는 바로 바뀐다.
“아니~ 기리니.”
그러다 퍼즐 조각처럼 단어가 조합된다.
아, 솔이가 아기기린이 된 상황극이구나.
“아기기린이 아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응! 아거가 앙~ 하고 무러써!”
순간,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날 것 같지만
재치 있게 넘긴다.
“이런, 나쁜 악어! 엄마가 혼내줄게!”
“응응!”
이제는 안다.
이 대화들이 단지 ‘노는 척’이 아니라는 걸.
아이가 세상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걸.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바쁜 아침에 이런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 싶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솔이의 말을 통역해주는
아침 공식 번역가다.
세수도 마찬가지다.
솔이는 세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꾀를 낸 게, 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며칠 전,
토끼 모양의 헤어밴드를 직접 고르게 한 후부터 시작됐다.
아직은 반복적으로 말을 해야 하지만
이때만큼은 상황극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어~ 어? 솔이만 기다렸는데
오늘은 솔이가 언제 올까?”
세수가 싫다고 하던 솔이가
귀를 쫑긋 세우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솔이의 세수를 도와주고 싶은데...
보고 싶다, 솔이...”
뒹굴던 아이가 일어나 앉는다.
그 틈을 타
나는 다시 상황극을 시작한다.
“토끼야, 토끼야~
솔이 세수 안 한대.
오늘은 아줌마랑 같이 할까?”
이 말에 솔이는 종종종종 뛰어오며 소리친다.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소리소리 하꺼야!”
‘솔이가 할 거야!’라는 뜻.
4살짜리의 말은 아직 서툴지만,
그 안에는 당당함과 의지가 꽉 들어차 있다.
물론,
아직 혼자 머리카락을 넘기진 못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한 순간,
이미 반은 해낸 거니까.
“엄마가 도와줄까?”
“아니.”
하지만 이내 머리카락이 손질이 안 되자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해주세요.”
그제야 나는 다시 묻는다.
“엄마가 도와줄까?”
“응.”
나는 그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면대 앞에 올라선 아이는
사다리를 두 칸이나 올라
살짝 까치발을 해야 겨우 닿는다.
하지만 그 위에 선 아이는
작은 승리의 주인공처럼
얼굴 가득 기쁨을 안고 있다.
“아이 좋아~ 아이 신나~
토끼가 솔이를 감쌌어!”
나는 즉흥 노래를 부르며
손에 물을 묻히고, 작은 얼굴을 닦는다.
“우리우리 아침에는 세수해요~
쓱쓱쓱쓱쓱쓱~
뽀득뽀득뽀득~”
손등에 닿는 미지근한 물,
거품 핸드워시,
그리고 아이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지금 우리 집 아침의 소리다.
옛날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은 재촉하고,
고함을 질렀을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는 한참 깨어나는 중이고,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
그 기다림은 느리지만,
그 속엔 함께 살아가는 법이 들어 있다.
ㅡ 3부. 참아낸 게 아니라, 선택한 거야
"솔이 우유 먹자. 지금 시간이 없어서 바나나도 먹고."
나는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습관처럼 아이를 바라본다.
주방에서 고개만 돌리면 거실과 안방이 다 보이도록,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솔이는 언제나 내 눈이 닿는 곳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건 ‘불안’이라기보다는 하루를 잘 시작하기 위한 ‘연결’ 같은 것.
"엄마 거 우유예요?"
"엄마는 여기 안가요."
솔이의 말은 아직 비밀 암호 같다.
어떤 의미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 한다.
“엄마 계란후라이만 해 갖고 갈게.”
"나도! 계하. 엄마 음료수 만두어요? 음료수 만두어조요!"
바나나와 계란을 믹스하는 걸 보고 음료수를 만들어 달라는 말.
바쁜 와중에도 귀엽다.
나는 음료수가 아님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솔이는 이미 장난감을 꺼내 딴짓을 시작한다.
"솔아, 장난감 엄마가 언제 하자고 했지?"
"이타가."
알고는 있다.
하지만 호기심에 자꾸 다른 걸 만지게 되는 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한 규칙은 지켜야 함을 알려준다.
그러자 찰떡같이 대답한다.
"마자."
나는 잠시 웃음이 난다.
알면서도 자꾸 엉뚱한 데로 새는 게, 이 시기의 아이답다.
식사 준비를 마친 나는 쟁반을 들고 솔이 앞 상으로 향한다.
상 위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나는 그 한숨을 삼킨다.
이미 상 위는 내려놓을 자리가 없을 만큼 난장판이다.
"솔아, 엄마도 일하러 가야 되는데 이러면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아침에는 이렇게 하지 않기, 알았지?"
말하는 와중에도 솔이는 딴짓을 한다.
윙크(학습기)는 혼자 떠들고 있고, 내 속엔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
나는 다시 숨을 고른다.
‘지금은 저럴 나이다. 저 상황이 맞는 상황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색종이 놀이 중이었는지 풀은 두 조각이나 나 있다.
"솔이, 이거 버려야겠네. 이렇게 하면 못 쓰잖아."
그 사이 내가 들고 있는 쟁반을 보더니 만지려고 한다.
나는 제지하며 상 위에 쟁반을 올린다.
그러자 또 무슨 말을 한다.
나는 종종 솔이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일부러 맞장구를 치며 따라간다.
그렇게 종알거리던 솔이는 덥석 소세지를 물었다가 금세 뱉는다.
"거 봐요. 엄마가 뜨겁다고 말했죠."
그럼에도 아이는 미소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웃음이 나는지.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웃으며 넘어간다.
그리고 마저 식사를 하게 한다.
입에 무언가를 물고 학습기를 보는 아이.
학습기마저 없으면 돌아다니기 바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생일이 지나면 조금 더 단호하게 할 생각이다.
‘그래, 며칠만 즐기거라.’
하는 마음으로 먹이고 있다.
"자, 우유 먹고. 부지런히 냠냠냠, 꼭꼭 씹어. 이제 어린이집 가야 돼."
그리고 엄마는 가방도 챙겨야 한다.
나는 종종거리며 가방을 챙기러 나갔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또 다른 ‘사고’가 나 있다.
이번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왜 그랬어?"
"하나?" (화나어요?)
"왜 그랬어? 일부러 그런 거야? 왜"
"엄마가 하나서..."
엄마가 화내기도 전에 이미 해놓고는
“엄마가 화나서 그랬다”고 말하는 솔이.
어이가 없었지만, 이 또한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어쩌면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다.
나는 화를 내거나 소리치지 않으려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솔아, 장난치다 그랬어?
그리고 솔이가 한 건 스스로 치우는 거야."
입을 삐죽 내민 아이는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린다.
나도 안다.
이럴 땐 늘 고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나는 얼른 상황극에 돌입하며, 끊어내기를 시도한다.
쿠션의자가 등장
"나 이런 장난 싫어. 우유 다 튀었잖아. 닦아줘야지. 솔이 나빠."
"엄마 놀거요." (엄마랑 놀 거야)
"그래도 닦아줘야지. 나도 불편해. 솔이 나빠."
윙크도 등장
"나한테 우유 뿌리면 몸에 물기 닿아서 고장 나."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딴청을 부린다.
결국 나는 또,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솔아, 윙크가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
이렇게 물 같은 거 닿으면 고장 난대.
그럼 솔이랑 못 놀게 되잖아."
솔이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한다.
이럴 때면 나는 말한다.
"엄마 화날 것 같아."
그러면 아이는 그제야 나를 바라본다.
"엄마 지금 우유 쏟아서 화난 게 아니야.
엄마랑 친구들이 말하고 있는데 솔이가 듣질 않았잖아.
엄마뿐만 아니라 친구도, 선생님도 솔이에게 말을 하고 있으면
눈을 보고 듣는 거야.
지금은 안 보고 딴짓하고 장난쳤지?
그럼 안 되는 거지?"
"응."
아이는 정말 잠시 집중하는 게 어렵다.
한 가지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기다.
나도 안다.
그래서 나 또한 알고 있음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이후에도 옷을 스스로 입길 바라지만,
결국 입혀줘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오늘 아침도 우당탕탕, 종종종.
여전히 정신없고, 여전히 상황극과 갈등이 반복된다.
그래도 나는 전처럼 화내지 않고 조절하는 연습을 한다.
이렇게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믿는다.
그게 이 아침을 함께 살아내는 나와 아이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