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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24. 2022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는 아픈 것

울어야 할 때 눈물이 안 나오면, 마음이 고장 났을 수 있다.

<커버 이미지-어느 여름, 소나기가 쏟아진 날 직접 찍은 유리창>

눈물이 나야 할 것 같은 순간에 눈물이 안 나오는 것은 뭔가 단단히 잘 못 된 것이었다. 씩씩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심히 고장 난 무서운 일이었다.






눈물의 신호


나는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슬퍼도 울고, 아파도 울고, 화가 안 풀려도, 답답해도 눈물이 났다. 영화,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뿐 아니라 음악을 듣고 감동이 느껴져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공연장 같은 데서 다른 이들은 환호하는데, 나는 울고 있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더 살다 보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는 경험까지 추가되면서, 내가 흘린 눈물의 양은 더 많아졌다.


어른이 되면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씩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좀 덜 해보려 해도 좀처럼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감성이 넘치고 눈물이 많은 것은 태생적이라 인정하고, 가족들의 ‘울내미’라는 놀림을 기꺼이 들었다.


울내미라도, 동네 시끄럽게 목 놓아 엉엉 우는 타입은 아니었다. 특히 다 커서는 눈물이 나약하거나 주책맞아 보일까 봐 꾹 참기도 하고, 못 참을 것 같으면 화장실 같은데로 피해 혼자 조용히 울기도 했다.

실컷 울고 나면 슬픔이나 노여움 같은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고, 또 시원해졌다. 울어야 할 때는 우는 것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눈물이 악감정을 씻겨주는 카타르시스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사십춘기에 마음을 다친 후 새로이 알게 되었다.-울음은 단순한 감정 해소가 아니라는 것을.

울어야 할 때 우는 것은 건강함의 신호였다.

웃음뿐 아니라 울음도 잃은 상태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징후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한참 후에나 알아챘다.






 

말라버린 울내미의 눈물샘


우울
1.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
2.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
3. 마음이 어둡고 가슴이 답답한 상태

(네이버 사전)



나는 이전에 ‘우울’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슬픔’을 떠올렸었다. 우울증이 생기면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계속 울어서 그 바다가 더욱더 깊어지는 건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겪은 우울은 그렇지 않았다.


울던 것을 하나도 울지 않게 되었다. 분명히 괴롭고 답답해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픈 자식 앞에 애타는 내 엄마가 너무 애달팠고, 어렴풋이 알아도 의연하게 제 몫을 하며 잘 지내주는 내 새끼가 눈물 나게 고마운데… 그렇게 울내미였던 나는 안 울었다. 아니, 울고 싶어도 울지를 못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울어야 할 마음인데 눈물이 안 나오는 것이 길어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웃을 일이 없어져서 미소를 잃은 것보다, 울고 싶은데 안 울어지는 게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울해서 슬픈 것도 훌쩍 뛰어넘어 ‘무감각’ 상태에 빠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건’ 바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라는 것을 상기했다.


과거 한 때로 생각이 돌아갔다.

함께 시작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펼쳐놓자 마자, 아무것도 함께 써 나갈 의지도 이야기도 없는 사람 옆에 유령처럼 서 있음을 알게 된 때. 왜 내가 더 이상 그와 살 수 없다고 판단했고,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약속한 삶을 포기했었는지 떠올랐다.

무념무상, 무감각, 무관심, 무의지, 무공감… 오직 없음으로 가득한 사람 옆에서 가족이 된 사람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없음을 알았고, 절망했다.

그러니 어느새  스스로가 ‘없음상태에 빠져버렸음을 알아차렸을 , 온통 캄캄한 곳에서 길을 잃은  같을 수밖에.






팽팽히 당겨진 줄 같은 삶


병원 치료와 함께 매일 운동을 하면서, 이탈했던 궤도에서 다시 제자리로 점점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제공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내가 회사에서 겪었던 사건뿐 아니라 더 깊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가졌다.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하는 깊고 오래된 내면세계로의 여행에서, 나도 잘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가이드의 견해로, 나는 장녀로서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나의 역할과 짊어지고 있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그것도 아주 잘하고 싶어서, 언제나 매우 긴장감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산 것이 아닐까 싶다고 하셨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도 결국 삶은 스스로의 몫이니, 누구에게 기댈 곳 없다고 아는 자신에게 더 씩씩함을 강요하고, 흐트러짐 없이 살고자 하지 않았겠느냐고.

나 스스로는 전혀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문득 사교적이어서 술자리를 꽤 자주 가졌던 20-30대 내내, 누구에게도 술에 취해 흐트러지는 꼴은 보이기 싫어 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술을 마시던 내가 떠올랐다. 이 모임 저 모임에서, 단 한 번도 J가 취한 걸 본 적 없다며 지인들이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아니 술을 좀 풀어지고 취하려고 마시지, 누가 그렇게 정신줄 꼭 붙들고 먹냐?!”

“아, 말술을 마셔도 넘어지지(!) 않는 여자니, 술값만 많이 들고! 참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할 스타일이네~”


이런 에피소드를 선생님께 들려드리자, 웃으시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네, 그런 모습만 봐도 J님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엄격한 사람인 거예요. 아마 남들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고, 실수도 하기 싫고… 빈틈없는 사람이 되려니, 항상 줄이 한껏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은 높은 긴장상태로 살아왔을 것 같아요. 그러다 그 사건으로 줄이 건드려지니까 그냥 탁 끊어져 버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자리에 더 큰 불안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하고, 힘들면 힘든 모습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남들한테 도움을 받거나 기댈 수도 있어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요. 그러니 조금 더 편안하게, 내 마음이 어떤지 - 가족들 친구들 다 빼고 오롯이 J님 마음이 진짜로 원하고 편안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따라가며 사시면 좋겠어요.”





외롭고 슬프면 울어요


어느 순간, 다 말랐는 줄 알았던 눈물샘에서 다시 눈물이 나왔다. 슬픔이나 울화에 그리고 감동이나 기쁨에, 원래의 나처럼 울기 시작했다.

눈물에 반가움이 들기는 또 난생처음이었다.

다시 울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나도 모르게 K장녀 콤플렉스와 들장미 소녀 캔디 증후군을 가지고 있던 나는, 울지 않는 상태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장 난 수도꼭지 같은 눈물이 아니라,  흘리는 눈물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는,

아픈 거다.


그러니 당신도 외롭고 슬플 땐,

‘잘’ 울었으면 좋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링크를 아래 붙입니다.

서랍 속에 넣어두고 이 글을 쓰던 중에 같은 주제로 쓰인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섬세하디 섬세한 감성을 쓰시는 ‘hun’작가님의 우는 것에 대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nbank2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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