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이란의 우방인가?
지난달 아랍에미레이트 (UAE)를 방문한 윤대통령께서, 현지 주둔 중인 한국군 아크부대에 찾아가 언급한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이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 방문 기간 중 300억 불(한화 약 40조 원)의 MOU를 맺으며 경제적인 성과를 얻었다고는 자축했지만, 예상치 못한 이란 관련 적대 발언으로 오히려 향후 그 이상의 손실을 볼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 이상의 손실"이라는 걱정과 우려를 가지고, 이란과 우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를 알기 위해서 아래의 순서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1. 중동 내 이란 시장의 중요성
2. 이란과 한국의 수교 및 관계 절정기
3. 멀어져 가는 양국의 관계 (2017~)
4. 마무리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번 이슈를 보자마자 데자뷔처럼 떠오른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 이란 방문 시 기사를 보겠습니다.
박대통령은 이란 방문기 간 중 371억 불 (당시 약 52조 원)의 MOU를 체결했었습니다.
당시는 제가 이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 굴지의 기업총수들을 포함한 236명의 경제사절단을 대통령이 동행하며 역대 최대 경제외교 성과를 냈다고 연일 기사가 났었고, 중동의 최대시장인 이란을 선점했다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한국은 한동안 정치, 경제, 문화등 다방면으로 서로 앞다투어 이란과 관계강화를 위해 이란 진출을 했었습니다.
이때가 이란과 한국 간의 관계의 최고봉이었고 이후 급속도로 악화 국면에 돌입하게 됩니다. 2017년 촛불시위 이후 박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이후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의 이란제재 재개 조치로 대부분의 MOU는 진행되지 못했고, 이에 대해 이란은 한국의 MOU 약속이행 중단에 대한 심한 유감을 표명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란이 중동에서 중요한 이유는 원유매장량등 자원적인 중도성도 있지만, 중동 내 최대 소비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동지역 영업 및 마케팅 업무를 해오면서, 중동 국가들의 시장 매력도를 크게 인구와 구매력지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구가 많고 구매력이 커야 매력적인 시장인 것입니다.
중동 내 인구 및 구매력 지수 Ranking을 하기와 같이 비교해 보았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2개군으로 나누어 비교를 해봤습니다.
- 1군은 UAE가 포함된 GCC 왕정국가 (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등)
- 2군은 이란, 튀르키예등 대통령이 있는 공화정국가로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구매력 지수로 보면, UAE를 포함한 주요 GCC국가들이 높습니다. UAE의 경우 인당 구매력지수가 6만 불이 넘고 대부분 국가가 5만 불 이상입니다. 이에 반해 튀르키예 및 이란의 경우 2만 불이 좀 넘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구입니다. UAE를 제외한 GCC국가의 인구는 3백만 명이 안되고, UAE가 인구 1천만 수준이지만 자국민은 10%도 안됩니다. (나머지 90%는 대부분 구매력이 약한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이에 비해 이란, 튀르키예 모두 8천만 이상의 인구 대국이면서 대부분이 자국민입니다.
UAE가 6만 불 PPP에 천만명 인구 (이중 자국민은 백만 명)와 이란의 2만 불 PPP에 자국인구 8천만 명으로 비교할 때, 시장규모가 비교조차 안됩니다. 물론 UAE가 중동 내 Freezone을 운영하면서 인근 국가로의 재수출의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물류 허브 기능은 향후 이란이 개방될 경우 이란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처럼 수출 주도형 국가의 경우 시장의 매력도가 중요한데, 이관점에서는 이란이 UAE대비 높은 매력도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란과 한국은 1962년에 수교를 했고, 작년에 수교 60년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당시 이란에 2만여 명의 한국 건설 노동자를 파견했고, 1971년 김종필 국무총리가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1977년이란 수도 테헤란의 "골람레자 닉페이"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서로의 이름을 딴 도로를 제안합니다. 이 길이 현재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중 하나인 테헤란로입니다. 당시 이란 테헤란로에는 서울로 가 생겼습니다.
이때 이후로 이란은 중동지역의 대표적인 한국의 우방국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이란 내에서 한국 콘텐츠 및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인식이 급격적으로 좋아졌고, 이란은 중동 내 한국최고의 우량 교역국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란 내 한국의 위상을 설명드리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서, 2007년 이란에서 방영된 '대장금'은 6개월 평균 시청률이 90%에 이르렀 고, 이후 '주몽'도 8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K-POP 등 한류의 열풍이 오늘까지 식질 않고 았습니다.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TV/백색가전의 경우 삼성, LG등 한국산 제품의 Market Share가 90%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이란 내 한국의 용산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전 Street인 Jomhouri 거리를 가면 삼성/LG 샵 간판이 거의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란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 및 한국산 제품에 대한 애착심에 기반하여,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이란 방문 시 최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성과를 기념하듯 같은 해 9월부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한국과 이란 1300년의 인연"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었습니다.
여기서 소개된 이란의 구전 설화집 "쿠쉬나메 (Kush-Name)"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로 와서 신라 공주와 결혼한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물론 설화이지만 1300년 전 신라시대부터 페르시아와 교류가 있었고, 당시 신라 유물에서 페르시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이란과 한국은 정말 오래전부터 교류와 좋은 인연을 맺어온 것입니다.
2017년 촛불시위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란과 맺은 주요 MOU들이 답보상태에 빠졌고, 2018년 마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직후 기존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이란핵합의를 일방탈퇴하고 오히려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면서, 한국과 이란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방의 경제 제재하에서 이란과의 경제 협력, 교역등이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이에 대해서는 이란도 십분 한국의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지금까지 경제적, 외교적으로 우방이라 믿었던 한국이 이란을 실망시킨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현재 중동 내 시아파와 수니파의 맹주국인 이란과 사우디는 여러 곳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 예멘 내전입니다. 예멘의 정부군을 사우디, UAE 등 아랍연합군이 지원하고 있고,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이란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내 사우디 군대의 계속되는 허튼짓으로 미국은 사우디로의 무기공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였고, 사우디는 미국산 무기와 호환되는 다른 구매처를 찾아야 했는데, 당시 공급 가능한 국가가 지구상에 두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만 해도 사우디의 적대국이라 무기 수입이 불가능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던데, 당시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고 (실제 당시 사용 중인 전투기 미사일을 그냥 떼서 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에 2019년 사우디 모함메드 왕세자가 방한하여 한국정부에 감사의 뜻을 직접 전했었습니다.
이때 이후 이란은 예멘 내전에서, 한국 무기로 무장한 아랍연합군과 싸우게 됩니다.
2020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에, 미국의 요청으로 이란 남부 호르무즈 해협으로 청해부대를 독자 파병 했었습니다. 당시 이란과의 외교적 갈등을 우려해 미국주도의 연합체에는 참여는 안 했지만, 우리 전투부대가 분쟁지역에 국회의 파병동의도 거치지 않고 파병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환영을 받았으나, 이란이 한국에게 느낀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란 테헤란 시장은 당시 삼성, LG등 한국 제품 판매매장의 간판을 내리게 하는 등 불만을 표현했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은 대놓고 이란의 적국 편에 서게 됩니다.
이란은 서방의 경제 제재 중이었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요 미국우방 5개국에 대해 (한, 중, 일, 인도, 터키) 이란으로 부터 원유를 수입하되, 달러 거래 대신 자국화를 활용한 현물 무역을 승인받았고, 이를 활용하여 한국도 무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이란 원화 결제"라 하고, 2019년 이후 이마저도 중단됩니다.)
미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된 후, 재개된 더 강력한 이란 제재로 인해 2019년 5월부터 한국 내 우리, 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총 90억 달러 (멜랏 은행의 지불준비금 20억 불 포함, 약 10조 원)을 이란으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 하에서 달러 송금이 불가능했었고, 이란에서는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를 압박해 왔고 이란 인근해를 운항하던 한국 선박인 케미호를 이란 정규군이 나포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나, 이후 다행히 선원들은 모두 무사히 풀려납니다. 동결 자금 미송금건은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급기야 UAE를 방문한 한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이란은 적대국이라는 발언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윤대통령은 파병 중인 자국의 아크 부대원들에게 UAE를 우리의 조국이라 생각하라 했고, 아울러 UAE의 적국은 이란이라고 했으므로, 한국대통령이 우방이었던 이란을 적국이라 칭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역사상 무수히 많긴 합니다.
이란과의 작금의 관계 악화가, 서방 특히 미국의 경제 제재라는 불가항력으로 인해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란이 서방의 경제제재 중이긴 하나, 아직 중동 내 맹주이고, 오랜 기간 한국과의 최우방이자 최대 교역국
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란 국민들이 한국인과 한류 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제품을 선호해 주는 고마운 고객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기본적인 우방의 예의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이란 제재 해제의 가능성이 높았지만, 아쉽게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빌런 역할로 인해 다시 무기한 연기가 된 상황입니다만, 언제든 핵 협상은 재개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만약 이란과 서방과의 핵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경제 제재가 풀린다면, 그래서 이란이 중동 내 다시 중요한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작금의 UAE와 맺은 MOU와 이란 적대발언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