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라임 Apr 07. 2023

40대 백수의 재취업 후기

 올해 3월 2일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것이 작년 2월 28일이었으니 정확히 1년을 논 셈이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무수히 많은 갑질을 감내해야 했던 내가. 무슨 한을 풀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공공기관의 전산팀 직원이 되었다. 비록 2/3토막 난 급여를 받게 되었지만, 신기루 같던 정년을 보장해 주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감사하게도 전 직장 관련한 분들께서 종종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주셨었다. 아무래도 같은 업종에서 비슷한 일을 했던 사람이 안전하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다시는 그 무질서한 굴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라 이번엔 좀 다른 접근을 해봤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전 세운 기준은 '업무가 과중하지 않아서 워라밸이 지켜질 것. 그렇다면 급여는 상관없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보통 '공공'으로 시작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이었다.


 취업을 결심하고는 우선 유명한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검색을 세분화해서 보니 공공기관의 채용공고가 적지는 않았다. 특히 경력 있는 전산직을 찾는 곳도 여럿 보였다. 다만 사람인, 잡코리아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곳 외에 ‘잡알리오’라는 공공 일자리 전문 플랫폼이 있어서 이쪽을 더 자주 찾아봤다. 단기 계약직부터 대규모 공채까지 공공의 일자리를 빠짐없이 살필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그렇게 지원할 곳이 보이면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내 성격의 장단점을 돌아봐야 했고, 끈기 있게 노력하여 이룬 가장 큰 성취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해내야 했다. 일부는 가상의 나를 상정하여 작성했고, 지난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을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다행히 전산 경력직 채용은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인지 나의 서류합격률이 예상보다 높았다.


 반면 면접은 쉽지 않았다. 말 잘 듣고 똘똘한 팀원을 뽑는 기관 입장에선 내 나이와 경험이 장점으로 보이지 않았던 게다. 첫 면접은 경기도 수원의 어느 기관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셔츠를 입고 타이까지 둘렀다. 긴장과 기대가 섞인 감정으로 맞이한 첫 면접. 그런데 나의 경쟁자는 이 기관 사람들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는 다른 직종의 지원자와 안부를 나누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내정자'가 이런 걸까?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준비한 것들을 찬찬히 풀며 면접을 봤지만 '웬만해선 떨어질 거야.'는 패배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결과는? 떨어졌다.


 이때부터 나의 면접 경쟁자, 즉 서류합격자들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며 나와 같이 면접을 보는 이들의 이름을 가지고 과거 이 기관에 합격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이 작업은 온라인 흔적 찾기의 달인인 배우자가 대부분 해주었다. 놀랍게도 첫 면접에서 나를 제쳤던 인물은 기간제 계약직으로 같은 업무를 했던 사람이었다. 기존에 일을 하던 사람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 자리는 그 사람에게 주는 게 여러모로 안전한 게 맞다. (** 다만 경쟁자 앞에 놓고 서로 아는 체는 안 했으면 한다.)


 면접일이 겹쳐 포기한 기관도 있었고, 면접 장소가 지방이라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면접을 앞두고는 꽤 성실하게 준비를 해갔다. 관련된 정보를 줄줄이 읊을 수 있는 건 기본이요. 나의 약점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때 자연스럽게 물타기 할 수 있도록 꼼꼼히 챙겼다.


 짧은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는 공공기관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다. 우선 이쪽은 공공에서의 경험을 중요시한다. 태도보다 실적이 중요한 사기업과는 달리, 정해진 지침과 절차에 맞춰 모든 일처리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이 먹고 급여가 줄면 적응하지 못할 거라 믿고 계셨다. 그래서 결국 합격시켜 주면 금방 도망갈 사람으로 비췄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계속 넣다 보면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는 곳이 있기는 있더라는 거다. 이 기관은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서 업무를 분산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력을 쌓은 사람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공의 경험보다는 다양한 사업경험을 우선시했고, 덕분에 나 같은 아재를 뽑게 된 것이다. 물론 면접예정자 5명 중 2명이 불참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기안을 올려봤고, 지금은 주로 하반기에 진행할 사업의 계획서와 제안요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관련근거를 들이대며 공문을 돌리는 문화가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고객의 시간에 맞춰 쫓기듯 일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앞으로 브런치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또는 카카오 좋은 일만 시키는 이 행위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래도 40대 아재의 백수생활을 그렸던 브런치에 취직했다는 건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남긴다. 연애스타그램만 올리다가 결혼했다고 없어지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두 여자가 만든 나의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