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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nded Mar 09. 2022

언더 더 스킨 스포 리뷰.

세계와 존재.

언더  스킨은 난해하다는 평이 많은 작품이다. 흔히들 말하는 예술영화의 표본에 가까운 영화 같기도 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없는 영화라는 말이 가장 많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어렵다기 보다는 신선하고 사실적인 편에 가깝다. 정말로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이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행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미지와의 조우라는 테마로 영화감독을 본다면  감독에 대해서 여러 사실을 추론할  있다. ET에서 외계인은 소년을 만났고 이는 스필버그의 마음 안에는 영원히 소년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미지의 생물체는 샐리 호킨스가 연기하는 장애인과 사랑에 빠졌다. 반면 킹콩에서 콩은 나오미 와츠가 분한 미녀배우를 사랑했다. 괴물에서 봉준호는 괴생명체보다는  괴물이라는 거울에 비친 사회에 주목했다. 박찬욱의 박쥐에서 미지의 존재는 작품의 중심에 있으며 아이러니와 딜레마에 포박되어 있다.

조나단 글레이저의 외계인은 무엇일까. 굳이 따지자면 박쥐의 상현에 가깝다. 이 외계인은 소년과 깊은 우정을 나누거나 타인과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게 만들거나 인간을 비판하는 외부의 존재도 아니다. 에일리언처럼 미지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도 아니며 대규모로 침공을 하는 외부의 적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 외계인은 말그대로 외부인, 타자이다. 결국 이것은 타자에 관한 영화이고 이 타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응시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외계인의 여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타인을 사냥하다가 자아에 대해 고민하다가 살해당한다 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오프닝을 보자. 영화는 빛과 외계물체의 모습을 비춘다. 일식과 같이 겹치는 이미지들은 눈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눈을 극단적인 익스트림 클로즈업숏으로 찍는다. 눈의 이미지는 '본다'라는 행위를 강조한다. 이 시선은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응시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보면 거울의 사용은 탁월하기 이를 데가 없다. 초반부 외계인은 작은 거울로 본인의 립스틱을 바른다. 이 때 거울에는 그의 얼굴 일부만이 보인다. 종종 사용되는 백미러를 보여주는 숏에서도 그의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고 그도 그 이미지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후에 그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거울에 비치는 방식도 달라진다. 피부병 환자를 만난 이후에 그는 거울을 보고 거기에는 그의 얼굴이 온전히 담겨있다. 약간의 교감을 가진 남자의 집에서는 아예 전신거울이 등장한다. 거울을 통해 외계인은 본인의 자아(혹은 껍데기)를 바라본다. 그 피부가 벗겨진 외계인이 본인의 피부를 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그를 비추는 거울이 점점 커지고 그에 담기는 모습 역시 더 커진다. 이는 인식의 확장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외계인이 희생자를 가두는 공간이 액체성이고 그 때문에 이미지가 거울처럼 반사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계인은 처음에 f로 시작되는 어휘들을 학습한다. 그 중에 주목할 단어는 다름아닌 film이다. 영화라는 단어는 이 영화가 가지는 메타영화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의 화면이 공존한다. 하나는 외계의 세계와 지구의 세계다. 외계의 세계는 하얀색 혹은 검은 색만 가득차있고 알 수 없는 액체가 존재한다. 비현실적이고 생경한 이미지의 공간이다. 반면 지구의 세계는 흡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듯한 화면을 보여준다.

 외계의 공간은 극단적인 공간구성으로 영화성을 적극적으로 러낸다. 무엇보다 알몸인 배우들이 강조되는데 이는 외계인이서서히 옷을 벗는 동선과 겹친다. 여기서 각 배우들의 육체적인 섹시함은 탈색되어 있으며 자연스레 스킨에 집중하게 한다. 더 주목해야할 점은 이 공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것들로 가득찬 지구의 세계와 대치된다.

흥미로운 점은 피해자 2가 피해자 1을 보며 본인의 처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결국 타자를 통해 본인을 인식할 수 있다. 피해자가 터져서 남는 부분은 결국 피부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아무 것도 없는 세계와 달리 지구의 세계는 많은 것으로 가득차있다. 거슬리는 듯한 사운드는 외계인이 이 세계에 느끼는 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외계인을 말 그대로 지구 바깥에서 왔으며 그렇기에 인간의 기준은 무의미하다. 그가 아기를 버리거나 바다의 남자를 죽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도덕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기에 그 어떤 판단도 불허한다. 이를 표현하듯이 외계인의 전반부 동선은 정방향과 반대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설계되어 있다.

 비인간적이고 효율적이던 외계인이 변하는 순간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차에서 들었을 때다. 그 때 분명 그는 해변의 아이를연상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고통을 학습했다. 인간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다음 장면서 그의 오른쪽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이 앵글은 이 영화서 처음 나오는 앵글이다.이 순간에는 남자들이 그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 앞까지는 외계인이 먼저 그랬지만 이 때는 반대다. 그가 피해자의 상황에 서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이 되는 순간이였기에 클로즈업으로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렇다면 그가 파티장에서 뒤돌아오는 이유가 설명된다. 본인 역시 피해자가 될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유혹이 곧 죽음이였으니. 그 다음 여자들과 함께 다시 파티장으로 향하는 데 이는 외계인이 여성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비슷한 존재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이후 외계인은 달라진다. 초반부 남성들만을 찾았던 포식자가 아니라 여성들을 쳐다보며 본인을 고민한다. 도시의 일상적 풍경 속 사람들을 스케치하는 몽타주는 그가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암시이며 그들이 겹치는 화면에 주인공의얼굴이 떠오르는 디졸브는 그에게 인간성(혹은 인간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순긴을 포착한다.


피부병을 앓는 남자와의 만남은 큰 분기점이다. 이 남자를 부르고 대화를 나눌 때 이전의 클로즈업 앵글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피부병 걸린 남자는 외계인과 비슷한 사이즈의 클로즈업 앵글로 싱글샷으로 찍힌다. 그 순간 외계인과 피부병환자는 일종의 교감을 나누고 겹친다. 그들의 피부(skin)이 맞닿는다. 그들은 피부 아래로(under the skin)연결되고 그 공통점은 고독일 것이다. 결국 외계인이 그를 풀어준 이유도 그를 이해했거나 연민을 느껴서일거다.

 그 둘이 서로 잡은 손을 찍은 클로즈업은 그래서 아름답다.

여자이면서 아름다운 외모의 외계인과 남자이면서 추한 외모의 지구인이 피부 아래의 내면의 교감을 하는 장면이다. 외계인이 풀어주기 전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검고 어두운 본인의 본모습이다. 이 이미지는 외계인의 얼굴로 디졸브된다. 외계인의 내면에 대한 묘사면서 결국에 그 역시 같이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지각했다는 것을 묘사한다.


풀어준 이후 외계인은 안개를 마주한다. 영화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소재이다. 인간들은 물에 죽는다. 그리고 물은 안개, 폭포, 바다, 눈의 형태로 변한다. 이런 순환은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 중 하나다.

 안개는 외계의 공간처럼 온 세상을 하나의 색으로 칠한다. 하지만 안개는 지구의 소산물이다. 지구의 공간과 외계의 공간으로 이분법되어있던 세계가 겹치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허물어진 경계에 있다.


조각케익을 먹는 시도가 실패하고 버스에서 친절을 마주하고 연인(?)을 만나는 등 여러 경험을 한 외계인은 숲에 들어간다.이 숲은 수직적인 나무가 같이 서있는 공간이다. 쉼터에서 주인공은 잠을 청하는데 그 때 숲과 그가 디졸브되며 겹친다. 마치 그와 숲이 교감을 나누는 듯한 장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남자와의 섹스는 실패했지만 숲과의 교감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연대가 겉의 문제가 아닌, 피부 아래의 문제이기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그는 강간범에게 당한다. 강간범은 나무를 베는 벌목꾼이다. 나무는 그를 감싼 숲을 구성하는 요소다. 그는 차를 타지만 차는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와의 반대인 동선(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간다. 피부가 벗겨진 이후 그피부를 응시하는 외계인의 장면은 그의 내면을 향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의 고민을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외계인은 강간범에 의해 불에 타서 죽는다. 불에 탄 외계인이 숲에서 추방되는 롱숏은 냉정하다. 그리고 불에 의해 연기는 상승하고 눈은 하강한다. 이 순환의 이미지는 세계의 질서다. 영화서 탁월하게 사용된 롱숏은 이 세계에 비해 작고 나약한 존재들을 표현한다.

영화의 시선은 냉정하고 거리감을 둔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몰입하기 보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종종 사용된 비현실적인 장면 역시 그런 의도다.

결국 이 영화는 냉담한 순환의 질서에 무력한 존재를, 그 존재들의 연약한 교감과 자아를 더없이 영화적으로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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