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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nded Apr 24. 2022

퍼스트 카우 스포리뷰.

기묘한 우정

퍼스트 카우. 기묘한 우정의 연대기.


레이카트는 소위 씨네필 감독들 중 하나이다. 알베르 세라, 리산도르 알론소, 페드로 코스타, 알랭 기로디와 유사한 느낌을 국내관객들에게 줄 것이다. 영화제에서나 이따금 볼 수 있고 정식개봉은 요원한, 그런데 평론가들은 좋다고 극찬하는 지루한 영화들. . (알베르 세라와 페드로 코스타 영화는 mubi에서볼 수 있다. .) 레이카트의 퍼스트 카우도 그런 종류다. 그런데 그의 영화가 정식 수입되어 개봉하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레이카트를 두고 미국 로드무비의 여왕이라고 하던데 그 전에 이 분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나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이 떠올랐다. 미국 서부라는 공간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묶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뭐 나보다 똑똑한 분들이 하시겠지만. .

 미국의 서부극이라는 위대한 장르는 오랫동안 백인남성우월주의적이라는 비판(혹은 심각한 오해)을 들어왔는데 그 장르를 여성감독들이 최근에 다룬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달까.서부라는공간은 영화적으로 새롭게 변용되어 왔지만 최근에 만난 영화들은 다른 면모들도 있지 않나 싶다.

 예컨데 슬로우 웨스트의 코너나 파워 오브 도그의 피터, 퍼스트 카우의 두 주인공까지 지금까지 서부의 주인공들의 스테레오타입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점은 상당히 신기하다.

 

 퍼스트 카우는 배가 움직이는 강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는 느린 리듬이다.어디선가 갈수록 쇼트의 수가 많아지고 빨라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느린 리듬은 일종의 자기소개서같다.

 그 다음은 영화가 풍경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과 그 위를 떠가는 배의 풍경은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오프닝 숏은 넌지시 퍼스트 카우는 풍경의 영화라고 일러주는 느낌이다. 강과 배는 무엇을 암시할까. 시간의 흐름인가 아니면 떠도는 자라고 말하던 킹루와 같은 삶인가. 그도 아니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미지 그 자체일까.

 영화는 특이한 액자구조를 취한다. 보통 액자구조를 취하더라도 액자는 내용과 상호작용을 약하게나마 한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여성은 누구인지 무슨 경위로 여기에 왔는 것인지조차   없다. 여성은 해골을 발견하고  후로 본격적인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상상한 이야기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은 그가 해골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영화의 액자구조의 의미는 연결이다. 영화적인 해석을 하자면 그가 해골을 만났기에 우리는 쿠키와 킹루의 우정어린 연대기와 연결될  있었다. 여성은 관객과  남자를 이어주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감독으로 해석할  있다. 여성이라는 사실 역시 그와 연관되어있다.) 그를 통해 영화는 (시간과 스크린을 넘어서는) 깊은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핵심은 관계이고 하나의 관계만을 묘사하지 않고 관계의 사슬을 만들어서 이를 심화시킨다. 상호작용이 부재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아무 관계 없이도 시간을 넘어 그들을 잇는 우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영화의 화면비는 4:3 이다. 수평으로 좁고 수직으로 넓은 이 화면비는 독특하다. 언뜻 보면 인물에게 집중하는 화면비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풍경을 중요하게 다룬다. 영화에는 아름다운 풍경숏들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이 화면비를 선택한 이유는 조화이다. 인물과 풍경의 조화, 비스타버전이나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할 경우 풍경에 비해 인물이 왜소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화면비를 통해 인물들은 부드럽게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일부로서 존재한다. 이 안온한 소박함은 영화의 기조이며 이 둘의 우정과 같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서부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쿠키는 처음 버섯을 따며 등장한다. 그리고 도마뱀을 도와준다. 그의 다정하고 차분한 성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쿠키는 처음에 인간들과 함께 나오지 않았다.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그가 무리와 갈등을 빚는 내용이다. 도마뱀까지 도와주며 자연과 상호작용하던 그가 인간들과는 불화한다.

  킹루는 중국인이다. 그리고 방랑자이다. 쿠키가 쫓기는 킹루를 구해주면서 그들은 첫 만남을 가진다. 이 만남은 우연이다.

그리고 그 둘은 술집에서 두번째로 만났다. 이 때 그 둘이 만난 이유는 그 둘이 싸움을 구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다른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친구가 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다. 이 둘은 (흔히들 서부라면 떠오르는) 폭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 둘은 우유를 훔쳐서 빵을 만든다. 재밌는 것은 이 빵은 기호식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두 남자는 서부하면 연상되는 두 키워드 폭력과 생존으로부터 은근히 떨어져있다.


재밌는 사실은 쿠키가 우유를 짜낼 때 소에게 말을 건다는 사실이다.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이 장면은 찡한 면이 있는데 쿠키는 암소와도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미숙하고 불확실하지만 그 말들은 우유서리를 희박하게나마 연대로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서리는 킹루가 감시하던 나무가무너지며 끝난다. 그리고 킹루는 쿠키가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두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우정의 끊어짐일까. 하지만 그 둘은 다시 만난다. 그들의 집에서 그들의 의지로 재회한다. 서로 완전히 모르더라도 우정은 가능하다.


영화는 깊이 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가로가 좁아서 필연적인 선택으로 보이는데 이런 화면구성 속에서 인물들 역시그렇게 배치되어있다. 이 영화의 풍경은 깊고 아스라히 존재하고 인물들은 그 속에 같이 있다. 종종 사용되는 인물들을 가두는 듯한 구성도 인물들을 답답하게 제약한다기보다는 풍경의 깊이와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전경,중경,후경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존재한다.


엔딩서 두 친구는 무엇에 다다랐을까. 똑같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연관이 깊은 영화 데드맨이 떠오르기도 하는 엔딩은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오히려 편안하고 아련하다. 그들의 우정은 자연과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결국 오랜 시간을 지나 발굴하는 여자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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