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을 논하는 사소한 이야기들.
놉에 대한 첫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좋은 의미로) '할리우드의 힘'이였다. 흔히들 미국 영화의 위업을 이야기하면 폴 토마스 앤더슨, 코엔 형제, 데이빗 핀처, 베넷 밀러, 제임스 그레이 계열의 작가주의 영화계통을 말하거나 혹은 마블과 같은 거대상업기획 그리고 인터스텔라, 프로메테우스 계열의 sf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할리우드만의 특권이라고 느끼는 분야는 놉과 같은 프로젝트이다. 이런 규모의 기획과 제작은 자생가능한 시장을 가진 나라들에서도 쉬이 시도할 수 없는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놉의 규모는 그 정도의 비중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가장 큰 장점은 놉과 애드 아스트라와 같이 큰 자본이 필요한 장르에다가 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조던 필이였기에 가능했다. 조던 필은 아마 사프디 형제, 그레타 거윅, 로버트 에거스 등과 거론되는 차세대 미국의 감독이다. 겟 아웃 이후 그는 대중과 평단을 만족시키는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조던 필의 영화는 상상력과 은유를 뼈대로 이루어져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적거리며의미와 해석을 찾게된다. 그의 영화들에서 인물과 화면, 소재들은 복선이고 상징이고 은유다. 그가 만든 영화의 상상력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이와 연결되어 있다. 현실감으로부터 멀어져 영화로 보게 만들어 요소요소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관객들이 조던 필이 제시하는 상상이 영화 내적인 핍진성에서 어긋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미 영화적/서사적 논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이는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놉이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겟 아웃의 주제의식은 명확했다. 어스의 은유는 달랐다. 겟 아웃에 비해 어스는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확장될 수 있었다. 이 면은 장점이였지만 단점이기도 했다. 그 은유를 꿰뚫는 중심이 선명하지 않을 때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놉은 어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겟아웃에 비해 훨씬 모호하다.
하지만 감독은 단서를 늘 그렇듯 뿌리고 있다.
결국 놉은 시선 그리고 스펙타클, 영화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오프닝을 보면 학살을 저지른 침팬지를 보여주는 쇼트로 시작한다. 후에 나오지만 이는 아역배우였던 주프의 시점쇼트였다. 오프닝부터 영화는 넌지시 시선의 문제를 강조한다.
그리고 후에 성경구절이 인용된다. 이 성경구절에서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구경거리라는 말이다. 놉에서 주인공들은 소위 스펙타클한 이미지에 매혹(혹은 경도)되어 있다.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은 '보다'이다. 외계인을 보면 안 되는 존재다. 외계인의 디자인은 눈과 렌즈가 연상된다. 주인공이 외계인과 맞서싸우는 도구도 보는 카메라고 마지막 oj와 에메랄드의 연대 역시 본다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 이 둘은 영화산업과 관계되어 있다. 영화 역시 보는 것이다. 이 본다는 행위의 매혹과 경계가 주요테마이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외계인을 카메라에 담고자한다 이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에 대한 매혹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괴물은 쳐다보면 공격하는 존재이다 이는 이미지에 대한 경고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인물이 촬영감독 홀스트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동물들의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는 범람한다. 하지만 그만큼 이런 이미지에 관한 윤리는 아직까지 빈약하다. 즉 우리가 그런 끔찍한 이미지로부터 무엇을 얻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자크 리베트가 지적한 '재현의 윤리'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러니까 수용자의 감정을 이끌어내기위해 고통을 이용하는 것의 문제점이다. 우리는 끔찍한 폭력의 이미지를 혐오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동시에 즐긴다. 거기서 스릴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홀스트는 이런 이미지에 대한 중독을 드러내는 캐릭터이다. 바이크를 타는 사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주프 역시 그렇다
oj가 살아남은 이유도 그는 이런 이미지를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들어가 구하려고 했고 이 강렬한 시각적 자극에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후반부에 들어와 외계 생명체의 크기를 강조하는 위압적인 익스트림 롱쇼트, 작은 인물들을 따라가는 외계인을 그림자로 드러낸 부감숏(혹은 외계인의 시점숏)은 그 자체로 이미지의 공포와 매혹을 드러낸다.클로즈업된 말의 눈, 렌즈와 눈이 연상되는 둥근 우물은 보는 '눈'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 영화는 거꾸로 쓰는 영화사기도 하다. 머이브리지의 일화서 보이듯 이 영화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영화사에서 중요했던 존재들을 다루고 있다. 옛날에 잘나간 아역배우, 말 등 그 자체로 영화산업의 뒤안길에 있는 존재들이죠. 주인공이 맞서싸우는 도구가 디저털,필름,사진으로 영화사의 발전과 반대로 간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괴물을 물리치는 무기가 잊혀진 아역배우의 풍선이고 럭키를 타고달려가는 oj는 머이브리지의 그 흑인 기수와 겹친다.
에메랄드는 영화에도 나오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가 살던 도시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흑백에서 칼러로 전환되는 스펙타클을 선사한 고전이죠. 무엇보다 오즈는 강력한 마법사처럼 보인 사기꾼이였다. 이 역시 본다는 행위와 이어진다.
놉은 좋은 영화다. 재밌고 정교하게 짜여진 메타포들과 복선이 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죽음이나 피가 내리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하지만 내가 조던 필에게 가지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때때로 그의 영화 속 미장센과 인물은 메타포를 위한 기능처럼 느껴진다. 놀란의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불만이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가 아닌 퍼즐찾기와 같다.
결국 조던 필은 좋은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감독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진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