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이 아닌 창조를 하는 예술가 김계환 화백
도곡동에 있는 벨라한갤러리에서 10월 5일부터 31일까지 김계환 작가의 초대전을 감상할 수 있다. 예약 없이 무료로 현장에서 바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미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방문한 날은 마침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라서 김계환 작가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작품에 대해서 질문하고 현장에서 바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김계환 작가님(이하 김작가님)의 이번 전시의 제목은 "Made in Nature"이다. Made in Korea, Made in USA 등 우리는 공산품의 생산지를 앞의 Made in 뒤에 나오는 국가명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작가님의 이번 전시 제목에서는 메이드 인 뒤에 자연을 뜻하는 Nature라는 어휘가 나온다. 아무래도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셨기에 자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메이드 인 네이처? 자연에서 만들어지다? 과연 이 제목은 무엇을 뜻할까?
흥미롭게도 이번 전시의 제목도 Made in Nature고, 전시된 모든 작품의 이름도 Made in Nature이다. 이름은 모두 같지만 제작연도와 작품의 크기는 다양했으며, 대부분 유화였다. 작품의 작가님이 옆에 계셔서 나는 운이 좋게도 왜 모든 작품의 이름이 전시회와 같냐고 질문을 드릴 기회가 있었다.
작가님께서 답변해 주시길 자신은 사진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을 추구하시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러 나오는 표상(presentation)을 캔버스 위에 옮기신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과 같은 시각적인 보조물을 참고하지 않고, 내면의 표상만을 그리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 표상은 당연히 그림의 제재(題材)인 자연에 관한 것이며, 그 표상은 다른 곳이 아닌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연에서 만들어진 작가님 내부의 표상을 표현한 작품들의 전시가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며, 이를 이해하면 우린 왜 이 전시회의 이름이 Made in Nature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분명히 배경은 연못인데, 앞에는 덩그러니 꽃병 혹은 꽃이 담긴 양동이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다. 이 작품 말고도 배경과 이어지지 않는 돌출점으로 사물이 놓인 작품이 몇 점 있었다. 내가 그러한 작품들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작가님께서 먼저 말을 걸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내가 유심히 보고 있던 작품은 모네의 지베르니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 위의 그림처럼 꽃병이 마치 덧칠한 듯이 혹은 공간을 초월한 듯이 존재하고 있었다. 작가님은 지베르니를 재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배경임은 부정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앞에 있는 작품에서 돌출된 사물은 현재의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니까 뒤의 배경은 마치 모네의 작품을 패러디함으로써, 과거의 유산 혹은 미술사적 과거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현재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인과론적인 의미를 함의하는 것일까?
결국 이 작품에서 우린 과거의 예술과 현재의 예술을 동시에 접하며, 마치 가족사진과 같이 그 핏줄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이, 당연히 예술 또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물어보시더라. 무엇을 느끼냐고. 그래서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변했고, 그것이 작가님의 의도였음을 들을 수 있었다. 현학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작품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이런 목가적이며, 평안한 작품을 접했다. 현대미술에서 미(美)를 찾기 힘들다. 일단 그전에 우리가 화폭에 담긴 내용을 보고서 판단을 할 수가 없거나, 기괴함이나 폭력성을 느낀다. 아도르노가 그랬듯이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는 불가능하며, 추해진 사회에서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일까?
오래간만에 느낀 이 편안함은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선험적 노스탤지어뿐만 아니라 치열한 예술만 보다가 오랜만에 평화와 미(美)를 찾았기 때문일까?
나는 김작가님의 작품세계에서 표현주의적인 작품제작법과 인상주의와 같은 목가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보이는 세상이 아닌 자신이 느낀 혹은 담고 있던 사유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마치 표현주의와도 같이 느껴졌다. 20세기의 표현주의는 전쟁 때문에 미치고 병든 예술가들의 영혼의 호소였지만, 21세기 강남에서 본 그의 작품은 그가 느끼는 편안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자연을 제재로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과 그의 미시적 붓터치를 보면 우린 쉽게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를 떠올릴 수 있다. 모네는 수련과 해돋이 같은 자연 속 풍경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이번 전시에서 접한 김작가님의 작품 속에서 또한 그러한 제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작가님의 붓터치는 멀리서 보면 아는 것의 재현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그의 붓터치를 보면 극사실주의 작품처럼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정물을 해체한 추상화처럼 보인다. 마치 벨라스케스의 그림과도 같이 또렷하지 않고 흐릿한 현상과도 같은 그의 붓터치가 만든 해체가 어쩌면 그의 작품세계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포인트일지도?
나는 밑의 그림에서 수평선을 찾을 수 없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그림의 아랫부분은 연꽃이 있으며, 하늘과 구름이 비친 물가이며, 그림의 윗부분은 그 하늘과 구름의 원본인 줄 알았다. 언뜻 90도 돌려보면 좌우대칭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수평선을 해체하고 하늘과 연못을 하나처럼 보이게 하는 트릭이 있는 줄 알았다. 마치 모리스 에셔나 마그리트처럼 상식을 깨는 화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그림 전체가 하늘과 구름이 비친 수면이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상이 아닌 내면의 표상을 그리시는 작가님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하고 금방 납득되었다.
고층 주상복합이 하늘을 가리고, 별빛보다 밝은 조명은 우리를 자연에게서 격리시켜 놓았다. 특히나 타워팰리스로 유명한 도곡동은 인간의 이성주의를 한층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곳에서 자연을 발견했다. 그 자연은 한 예술가가 내면에 품은 표상이었으며, 내가 잊고 있던 풍경이자 자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