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자녀교육의 바이블, 칼 비테 교육법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은 “이거 뭐야?”하고 묻는다. 세 살이 지나면 “왜?”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이거 왜 돌아가? 이거 왜 이렇게 돼?” 하루 종일 ‘왜왜왜’ 투성이다. 이 질문을 부모는 절대 귀찮아하거나 곤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아이들의 뇌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주변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왜’라는 질문으로 계속해서 깊이 들어가다 보면 본질에 맞닿는다. 어떤 것을 피상적으로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알려고 하는 노력! 이것이 아이들의 학습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부분이다.
칼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할 뿐만 아니라 생물학, 미술, 수학, 지질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달했다. 사람들은 칼 비테에게 그 비결을 물어봤다. 칼 비테는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세상 만물에 대해 아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면 됩니다.” 아이의 호기심에 불을 지피면 아이는 자신의 궁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흥미를 갖는 힘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고력, 암기력, 이해력과 같은 능력들을 효과적으로 발휘시키는 원천이 바로 흥미이기 때문이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 어렵고 복잡한 공룡 이름을 술술 외운다. 좋아하는 과목은 덜 좋아하는 과목에 비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이것을 ‘힘’이라고 표현한 것은 흥미를 유발하는 뇌는 마치 근육과 같아서 계속 자극을 주고 사용해야 더욱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둘러싼 여러 주변 환경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발시켜주어야 한다.
칼 비테는 아들과 자주 산책을 나갔다. 무엇을 가르칠지 미리 정해놓지는 않았다. 아들이 자유롭게 걷고 뛰다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알려주었다. 때론 여행을 떠나 바다, 이끼, 어부, 광산, 광부, 야생 동식물 등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도 창문에 끼는 습기,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 정원에서 자라는 각종 꽃들과 채소, 지렁이 등 아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은 널려있었다. 칼 비테는 칼의 관심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지식들을 채워주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물리학, 식물학, 동물학, 자연사와 같은 도서들로 가르치려면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웠겠는가.
칼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자, 칼 비테는 동네를 나갈 때 종이와 연필을 들고 나갔다. 마을 지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산 꼭대기에 앉아 칼에게 간략하게 지도를 그리게 하였다. 지명을 모르면 알려주면서 큰 윤곽을 그렸다. 그 다음은 내려와 돌아다니며 산, 호수, 도로 등을 그려 넣었다. 칼이 충분히 다 그렸을 때, 서점에서 지도를 샀다. 지도를 보며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고, 빠진 부분을 다시 그려 넣어 완벽한 지도를 완성했다.
단순히 지도를 잘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변에 대한 관찰력을 늘리고, 탐구심을 늘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지도 그리기는 서양의 여러 명문가에서도 많이 시행되는 교육이다. 어떤 때는 기억력 게임도 했다. 지나 온 장소에 무엇이 있었는지 하나씩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게임이 있었다. “학교에 가면 공책도 있고, 연필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의자도 있고…….” 이런 간단한 게임으로 아이의 기억력과 관찰력을 기를 수 있다. 칼은 특히 새를 좋아해 틈만 나면 새 둥지와 새가 나는 모습을 관찰했다. 칼 비테는 칼이 돌아오면 관찰한 것을 말해달라고 졸랐고 칼은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아이 혼자 골똘히 생각하거나 풀, 꽃, 개미 등을 한참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칼 비테는 이 시간을 절대 방해하지 않았다. 아이가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이 시간이 바로 탐구력이 쑥쑥 성장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순간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얼른 가서 밥 먹이고 씻기고 숙제 시키고 할 일이 머릿속에 투성이다. 또는 덥거나 다리 아프거나 지루해서 결국 아이에게 빨리 가자고 독촉하고 만다. 어떤 부모는 지렁이, 개미 등이 징그럽다며 아이를 다그치기도 한다.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는 우리 아이의 탐구심을 부모가 꺼트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부모의 세상은 아이의 세상이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아는 만큼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고, 부모가 보여주는 만큼 아이는 알 수 있다. 부모가 정보력을 가지고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해주면 아이의 선택지는 그만큼 넓어진다. 하지만 ‘호(好)기심’과 ‘흥(興)미’라는 글자에는 ‘좋아하고 즐기는 감정’이 들어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고 어떻게 가르칠까를 고민해야 한다. 아이가 배움을 좋아하고 즐기도록 하는 것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닌 부모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