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 부재의 상처
6학년 여학생들은 손절과 화해를 밥먹듯이 한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손절을 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부모든 담임이든 끼어든다고 하여 억지로 화해를 시킬 수도 없고 그저 시간이 약인 기간이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필통을 따라 샀다며 손절한 케이스도 보았다. 처음엔 이러한 사유들이 기가 막히고 이해가 안 갔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이해는 포기하고 더 큰 따돌림이나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최근 옆반이 떠들썩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둘이 사는 여학생이 있는데 그 여학생은 또래들 사이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학생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너 졸업식에 누가 오셔?"라고 물었고 여학생은 자신의 아버지가 없어서 안 오실게 뻔한데 그걸 물었다는 이유로 그 친구를 손절하였다. 졸업식에 누가 오시냐고 물었던 그 친구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랑만 사는 친구다. 어쩌면 같은 고민을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을 수도 있고 정말 모르고 물어봤을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악의가 없는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걸 물어봤다는 이유로 손절을 당한 친구는 매우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 여학생을 보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3살 무렵 엄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께서 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학창 시절 내내 학기 초에 작성하는 기초 가정환경조사에 죽은 아버지 이름을 써냈고 늘 아버지가 살아계신 척했다고 한다. 결혼을 할 때도 아버지의 빈자리가 티 나지 않게 먼 친척 이모부를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한부모 가정도 매우 흔하고 부부가 살다가 안 맞으면 이혼을 할 수도 있고 틀린 게 아니라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나도 외할아버지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아버지 없이 큰 것은 슬픈 일이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게 한평생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나 보다.
너무나 큰 상처를 건드리면 과하게 반응하게 되는 마음도 이해가 갔다. 엄마는 아버지 없이 자란 상처를 극복하기까지 약 50년 정도가 걸렸다. 내가 보았을 때 엄마는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 없이 자란 것에 대해 무덤덤해졌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싶기도 했지만 양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고 상처였다. 남들 다 있는 아버지, 나만 없이 자란다는 것. 다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5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반 아이들의 가정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요즘은 학부모나 학생이나 먼저 밝히지 않으면 가정사를 알 수 없다. 6학년 담임을 맡으면 10월쯤 중학교 입학을 위해 등본을 걷는데 그제야 뒤늦게 알게 된 경우를 제외하곤 가정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 같아도 젊은 담임에겐 이야기하지 않을 거 같긴 하다. 결혼도 하고 6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 이제 신뢰를 얻은 건지 아니면 세상사 대충이라도 파악한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지 학부모님들이 종종 먼저 이야기해 주시곤 한다. 엄마는 늘 나에게 한부모 가정 학생이 있으면 더 따뜻하게 대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감히 그 빈자리를 내가 채울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길 바라며 더 따뜻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