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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Dec 09. 2021

제가 왜 강사가 되었냐면요,

자퇴 후 방황하던 소녀가 국어강사가 되기까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재수가 끝난 1월,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에서였다. 멘토라는 이름으로 윈터스쿨을 다니는 고등학생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공부는 못 하지만 착한 아이, 자주 와서 말을 걸어주는 귀여운 아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 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질문지를 받고 내가 해결한 뒤 질문한 아이를 불러서 답변을 해주는 식의 멘토링이었는데, 사실 질문하는 아이는 거의 정해져 있었고 매일 두 세 문제씩 써내는 아이들과는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중 수학 문제를 자주 질문하는, 어느 날은 항상 잘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초콜릿 우유를 사서 전해준 아이가 있었다. 윤유빈, 아직도 그 이름은 잊지 않고 있다. 1월반만 하고 그만 다니게 됐다고 아쉬워하던 유빈이는 1월의 마지막 날 직접 그린 도라에몽 편지지에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주고 갔다. 소중한 마음이 담긴 편지에 적힌 -수민 쌤-이라는 호칭.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랑하게 되었다.


유빈이가 직접 그린 도라에몽 편지지




대학에 입학하고, 송도에서의 1년을 보내며 처음으로 과외 중개 사이트에 소개를 올렸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논술전형으로 입학한 나는 국어 과외를 구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고, 수능에서 수학을 96점이나 받은 덕분에 수학 과외도 맡을 수 있었다. 사탐은 나름 잘했지만 과외를 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고, 영어는 자신이 없었다. 대신 나는 다른 하나의 특이한 과목, 검정고시 과외도 가능하다고 적어냈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 강사


나는 검정고시 출신의 강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한동안 방황하다 뒤늦게 공부에 마음을 붙여 재수를 통해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연세대라는 타이틀을 단 후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외를 통해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학원에서도, 과외에서도 내가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비밀이다. 요즘 시대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게 뭐 대수냐 할 수 있지만 그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수학원에서의 멘토링이 끝나고 처음 과외를 구한 건 1학년 2학기 송도에서였다. 그때까지는 과외 중개사이트에 소개를 올릴 때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다. 첫 문의가 들어오고 아이의 어머님을 만나던 날, 어머님은 내게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과외 시장에서 검정고시 출신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은 언제나 답답한 학교를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자퇴 후 재수를 통해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나를 보며 자신도 자퇴하고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꿈꾸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내 소개에서 검정고시 출신 이력을 지웠다.


재수학원에서 멘토링을 할 때는 검정고시 출신인 것을 밝혔다. 내가 직접 밝힌 것은 아니고 멘토실 한편에 붙은 선생님 소개에 재학 중인(또는 합격한) 대학과 함께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도 적혀있었다. 아이들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라는 타이틀보다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이력에 더 관심을 가졌다. 단순히 학교를 자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됐지만 그 후 연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것이 더 큰 임팩트를 주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게 자퇴 후 정시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물어온 아이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단호하게 말했다.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자퇴하지 말 것. 고등학교 생활이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큰 재산인지를 알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것. 지금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들 중 실제로 자퇴한 아이는 없는 것으로 안다. 자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나는 학교를 나왔고,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아마 내가 임용을 치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약간은 우스운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내 생각이지만)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다른 행정업무 없이 온전히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꿈이 강사였던 것은 아니다. 여느 애들처럼 어릴 땐 가수, 치과의사, 변호사 등 많은 꿈들을 꿨다. 그중 최고는 초등학교 때 적어냈던 ‘하버드대 최연수 교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싶지만 그만큼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 내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교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학교를 이탈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허탈감, 무력감, 억울함 등등의 많은 감정들로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울던 날도 있었고, 밖에 나가 미친 듯이 놀면서 방황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19살이 되었고, 고졸 검정고시를 치고 나니 ‘나도 대학은 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퇴 이후로 해놓은 공부가 없었기에 당장 반년도 안 되는 시간으로 학교에서 꾸준히 공부해오던 아이들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꽤 하는 편에 속했기에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ebs를 들었고 운명처럼 내 인생을 바꿔준 선생님을 만났다.


사회탐구 1타 강사 자리에 계신 그 선생님은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힘든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한 선생님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고 한다.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서울대에 입학했고, 사시 공부를 하다 포기한 후에 교사로 일하시다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강의실에서 한두 명을 놓고 강의하던 게 지금은 대치동 제일 큰 강의실을 전부 채우고도 대기 수강생이 넘치는 자리에 올랐다. 그만큼의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말 그대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이 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사람들은 유튜브에 이지영을 검색해보라.- 처음에는 그저 대단한 사람, 멋진 사람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과목의 매력에도 빠지게 되었고 어느새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게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한때 완전히 포기했던 내가 재미를 느끼게 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한 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19살 중반부터 수능까지 반년 간 나를 지도해주신 수학 과외 선생님. 시범수업부터 선생님의 강의력에 압도된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이 선생님께 배울래요!”를 외쳤다. 그 당시 나는 고2 3월에 자퇴했기 때문에 미적분은커녕 고등 수학의 기초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기로 했다. 선생님은 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나를 배려해주시고 감정적인 위로를 건네주시던 분이셨다. 반면 수업을 할 때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집중력을 이끌어냈고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끔 가르쳐주셨다. 덕분에 일명 ‘노베이스’였던 나는 그 해 수능에서 수학 3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선 내 실력에 비해 아쉬운 성적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는 단기간에 많은 성적 향상을 이뤄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실제 결과로 반영되는 것을 보자 조금만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학원에서 지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다른 친구들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라는데, 나는 오히려 그 기간이 참 소중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일단 오랫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지냈던 내게 같은 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힘이 났다. 또 나는 재수하는 내내 계속해서 성적 향상을 경험했다. 3월, 6월, 9월 매 모의고사마다 성적은 점점 상승했고 지원할 수 있는 대학도 높아져갔다. 이때 만난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존경스럽고 멋진 선생님들이셨다. 막연히 나와 같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하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꿈에서 강사라는 구체적 목표가 생긴 시점이 이때였다. 재수학원 내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도 제일 존경하고 잘 따랐던 국어 선생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셨다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나도 그곳을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물론 서울대를 가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리고 실제로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담임선생님 다음으로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분은 그 국어 선생님이었다. 장난스럽게 이제 선배님이네요, 하는 말도 건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교 밖에서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가르치는 것에 열정적이고, 늘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다. 물론 학교 내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나처럼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또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난 강사라는 직업을 꿈으로 삼았다. 아직은 대학 재학 중이지만 여러 학원과 많은 과외를 통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는 중이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늘 기대하고, 수업을 준비하며 가슴이 뛰는 나는 강사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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