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 Dec 28. 2021

처음으로 가르쳤던 아이들은요,

윈터스쿨 멘토링 이야기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건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에서였다. 국영수사탐 11122의 등급,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논술전형 합격. 플랜카드에 이름이 걸릴 정도의 성과를 거둔 나는 운이 좋게 겨울방학 일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


같이 재수하던 언니가 보내 준, 내 합격 인증샷


마침 강사를 꿈꾸고 있던 내게 윈터스쿨 멘토 자리는 방학 알바로 최적이었다. 멘토링은 사실 강사라기보다는 질문을 받아 답변을 하고, 아이들의 학습관리를 하는 일이다. 또 선생님들의 수업준비도 해야 하는데 시간표에 맞게 강의실에 과목명을 붙이고 출석부를 미리 가져다 놓는 일을 한다. 추운 날에는 난방기도 틀고, 지우개가 더러우면 미리 빨아놓기도 하면서 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학습실을 돌며 조는 아이는 없는지, 떠들거나 딴짓하는 아이는 없는지 확인하는 일도 해야 한다.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원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했다.


윈터스쿨에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혼재한다. 예비 고1부터 고3까지의 학생들이 하루 종일 학습실에서 공부하고, 개개인의 시간표에 맞춰 아래층에서 단과 수업을 듣는다. 그중에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쉬지 않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 등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와서 그저 시간 보내기에 급급한 아이들도 있다. (주로 예비 고1 아이들이 그렇다.) 멘토실을 찾는 아이들도 딱 그 두 부류로 나뉜다. 매일 질문하기 위해서 책을 들고 오는 아이와 선생님과 수다 떨기 위해 오는 아이. 먼저 첫 번째 부류부터 이야기해보자.


어쩌다 한 번 모르는 문제가 있어 오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이 아이들은 매일 적어도 세네 문제 이상은 질문을 한다. 문제집의 상위 파트를 들고 와 통째로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빈이의 경우도 처음에 문제집 이름과 문제 번호만 대여섯 개를 적어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편지에서 자기가 질문 폭탄을 해서 미안했다고 하더라. 문과인 나는 과목이 수학인 경우에는 종종 당황하기도 했다.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한번 풀어보고,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어떤 문제는 이렇게 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다른 문제를 먼저 알려주고, “선생님이 풀어보고 알려줄게.”라고 말하고 돌려보낸다. 내가 배운 범위를 넘어선 문제는 이과 멘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도 사람이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다른 방법을 빠르게 안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나에게 설명을 듣는 게 더 좋다며 늦게라도 좋으니 꼭 선생님이 알려주세요,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경우엔 이과 멘토들에게 내가 직접 설명을 듣고 아이를 불러 다시 알려주었다. 그만큼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또 공부방법을 물으러 오는 아이들도 있다. 막연하게 ‘국어 공부법을 알려주세요.’ 하는 아이부터 ‘수학의 함수 파트가 어려워요.’ 하고 자세히 묻는 아이까지. 사실 공부법이란 게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고, 남이 해서 잘 된 공부법이라고 무작정 따라 하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는 내신을 제대로 준비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오히려 아이들보다 부정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재수를 시작할 때 선배들의 공부법을 보고 많은 도움을 얻었고, 수학의 어느 파트는 어떤 공부법이 도움이 되었다든가, 이 시기에는 이런 과목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전해줄 수 있었다. 또 책자-우리 학원에선 재수 선배들의 공부법을 책자로 만들어 나눠주었다.-에 실린 내 공부법을 보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약간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름 좋은 결과를 얻어 책자에 실린 것이기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세한 답변을 해줬다. 나는 윈터스쿨 멘토로 전문 선생님이 아닌, 갓 재수를 마친 학생들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습 고민을 자세히 듣고 내가 공부할 때를 생각하며 최대한 많은 노하우들을 전해주려 노력했다.


 번째 부류는 위와는 반대로   있는 최선을 다해 딴짓을 하는 아이들이다. 주로 책상에서 잠을 청하거나 화장실, 계단에서 몰래 수다를 떠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  상당수는 멘토실에 질문이 아닌 잡담을 하러 오곤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받아주다 적정한 선에서 돌려보내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공부와 관련된 고민들부터 친구 고민, 연애 고민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앉아있지만 사실   차이  나는 언니, 누나였기 때문에 진짜 선생님에게는 하지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스레  친해지는 아이들도 생겼고, 식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며 번호를 교환한 아이들도 있다. 장난스럽게 연세대 원주캠-지금은 미래 캠퍼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진학해도 후배 아니,  사주냐고 물어보던 아이도 있었다.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누나 동생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학교를 자퇴해서일까, 왠지 불량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는지 아이들은 사적인 얘기도 스스럼없이 말하고, 물어봤다.  자퇴했는지 이유를 묻는 아이도 있었고, 학창 시절에  놀았겠구나 짐작하고 재수만으로 이뤄낸 결과는 아닌지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막연히 학교 다니기 싫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 아이들이 나를 따라 자퇴하고 수능  방을 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반대의견을 말했다. 대부분은 나의 학교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자퇴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듣고 나면 학교 생활에   충실해야겠다며 돌아갔다. 종종 남자친구가 있냐며 묻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중 아주 일부는 나를 좋아했던 것도 같다. (도끼병?) 심지어는 쉬는 시간마다 마이쮸를 가져다주며 “ 귀여운 , 쌤도 알고 계시죠?”라고 말도  되는 멘트를 날린 친구도 있었는데……, 솔직히는 오글거려 죽을 뻔했다.  당시 나는 남자친구는 없었지만 학생을 연애 상대로 보는 파렴치한은 아니었기에 그저 귀여운 아이들로만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여학생과 남멘토 간에 썸씽이 생기는 것을 목격했고, 초반엔 그저 주의를 주는 것에 그쳤지만 얼마   진짜 커플이 되는 바람에 원장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감시의 대상이 되어  여자아이가 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 줄도 모르고 친구와 뒷담을 까다(?) 걸린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기도  것이, 겨우 열일곱, 열여덟 먹은 아이들이 공부가 뭐가 그리 재밌고 하고 싶어서 방학 내내 학원에 앉아있고 싶을까, 안타까움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잠을 청하는 아이들을 위해 껌을 챙겨 다녔다. 가끔은 반항심에  엎어져 자려던 아이도 내가 “이거 먹고   깨자!”하며  하나를 내밀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곧잘 정신 차리고 공부했다. 물론 나중엔 이것도 내성이 생겨 껌을 씹으며 조는 아이도 봤으나 정도로 졸린데도 문제집  놓고 졸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냥  적도 있다. 하루 끝에 과제를 검사하는 것도  몫이었는데, 매번 꼼꼼히 해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번을 제대로 해오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거의 모든 문제에 별표를  놓곤 “몰라서  했어요.”라며 뻔뻔하게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는 다음날  자리 앞에 앉혀놓고 숙제를  하도록 시켰다. 모르는 문제는 질문해서라도 풀으라 하니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낸 것이  웃펐다.


학원에서 같이 일하는 멘토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문과 멘토들은 대부분 재수를 같은 반이나 옆반에서 했기 때문에 어색하진 않았지만 이과 멘토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재수 후 멘토로 일하는 환경 특성상 대부분이 21살 동갑이었고, 어색함은 첫 회식을 지나며 풀어졌다. 그들 중 몇몇과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며, 거의가 서울권 대학에 진학해 서로의 축제에 놀러 가 함께 놀기도 했다. 재수학원에서 일할 때의 낙은 일이 끝난 후 제일 마음이 잘 맞는 멘토 선생님과 술자리를 갖는 것이었다. 나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인데, 20살이 되자마자 재수학원에서 거의 갇혀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재수가 막 끝난 그때는 한창 그 욕망이 분출될 시기였다. 심지어는 10시에 퇴근한 후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학원 근처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 출근을 한 적도……. 내가 강사가 아니라 멘토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다 싶지만 그땐 그런 낭만이 있었다. 마음이 잘 맞았다는 그 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이미 이 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어 행정 선생님들과도 잘 알고 지냈다. 덕분에 학원 적응에도 빨리 하고 많은 도움을 받으며 일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대신 커버 쳐주기도 했고, 성격이 좋아 아이들과도 잘 지냈기 때문에 나도 그 언니와 일하는 날은 일하기가 아주 수월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몇 년째 서로 쌤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나중에도 언니 동생으로 부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호칭 때문에 언젠가 같이 피맥을 하다 쌤!하고 불렀더니 옆 테이블에 있던 쌤 친구가 “학생이랑 술 마시러 왔어???”하고 놀랐던 일화도 있다.


윈터스쿨에서의 경험은 내가 강사라는 꿈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고, 아는 것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힘들게 공부한 시기를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그것이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무에게나 내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이 일에서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겠구나 느꼈을 땐 강사가 천직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나에게 많은 인연과 즐거운 추억을 남긴 학원에서의 첫 알바. 나중에는 그곳에서 더이상 멘토가 아닌 강사로 설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제가 왜 강사가 되었냐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