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희 Oct 09. 2023

그녀의 밥

03. 흰 죽에는 낙지 젓갈 감기에는 쌍화탕 

퇴근길  버스 창가에는

 수많은 불빛이 반짝인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대도시에 반짝이는 

불빛들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 도시의 한 낯  불빛이어도 

좋으니 그 일원이 되고 싶었다 

반짝이는 건물들 속에 나도 있고

 싶었다. 비슷해 보이는 정장의

 무리들 속에서

 나도 같이 걷고 싶었다      

그렇게 원하던 직장이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나마 직장을 구해 다닌다는 것이 

나의 불안을 잠재워 주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흔들거리는

 촛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촛불이 

되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던 도심의 불빛

아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흔들거리며 술에 취해 

흔들거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흔들거리는 버스가 흔들거리는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 버스가 다리 위를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강바닥에 버스가 추락해 처박힌데도

 나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이대로 삶이 끝난다 해도 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

죽음이 오히려 평안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무지에서 

생겨난 평안이겠지... 

진짜 죽음이 내 앞에 

다가온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집에 도착해 침대에 몸을 눕힌

나는 잠시나마 안도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그래도 오늘은 약간 설레었어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금요일밤이 아쉬워 더 깨어 있고 싶지만

내 몸은  나의 바람을 무시하며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지게 했다.    



      

'열이... 나는 것 같다...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몸에 이상함을 느꼈다 

요 며칠 야근으로 몸을 혹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열까지 날 줄은 몰랐다 

체온계의 온도는 3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에 있던 감기약을 대충 먹고 

다시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이번 주말은 이렇게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아프지 않은 나의 주말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지영 씨~ 나 지숙이에요~ 

오늘 약속 없으면 저녁 같이 먹을래요? "


"아 ~ 죄송해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저런 많이 안 좋아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약은 먹었고? 밥은? "


쉴세 없는 그녀의 질문들에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느낌이었다.


"네 약 먹고 누워 있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


"정말... 혼자서 아프면 얼마나

 힘든데 알겠어요. 얼른 쉬어요"


"네 다음에 같이 밥 먹어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나의 등은 땀에 젖어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열은 내려 있었다. 

몸이 좀 가벼워지자 허기가 몰려왔고,  

죽이라도 시켜 먹어야겠다 생

각하며 핸드폰을 들었는데

지숙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지영 씨~ 몸이 아프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죽 끓여서 문 앞에 걸어 놨어요 

직접 전해줄까 하다가

잘 것 같아서 걸어 놓았어요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먹어요 얼른 먹고 기운 내요~! “     


그녀의 문자대로 문 앞에는 

죽이랑 쌍화탕 그리고 귤, 

작은 통에 들은 낙지젓갈이 있었다 

음식을 들고 돌아와 고마운 마음에 

전화라도 해야겠다 싶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영 씨 몸은 좀 어때요? "

밥을 한번 같이 먹은 것뿐인데

그녀는 우리가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상냥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네 자고 일어나니 좀 좋아졌어요

 죽이랑 보내주신 음식들 감사해요 "


"별거 아닌데 뭘.. 

그래도 아플 때는 흰 죽이 최고예요

낙지 젓도 보냈으니까

참기름 살짝 뿌려서 

흰 죽에 올려 먹어 봐요

낙지가 누워있는 소도

 일으킨다고 하잖아~

죽 먹고 귤도 먹고 

쌍화탕도 레인지에 30초 정도

데워서 약이랑 같이 먹고 

또 푹 자요 그럼 한결 나아질 거예요 "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말대로 흰 죽은 속을 편하게 해 주고

낙지젓은 심심한 죽에 잘 어울렸다

꼬들한 식감이 입맛을 돋어 줬다.

 

죽을 먹고 기분이 좀 나아진

나는 티브이를 틀며 생각했다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은 토요일 밤이네 

잘 쉬고, 잘 먹었고'    



잘 먹고 잘 쉬면 그래도 

살만하게 느껴진다. 

흔들거리는 촛불 같은 내 인생도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낀다.


모두에게 평안한 주말이었기를...

잘 쉬고, 잘 먹고 다음 한 주를 

버틸 힘을 채우는 주말이 되기를...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