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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Aug 22. 2023

환경 정의에서 기후 정의로

기후 정의 담론의 변천과 현황

정의비행기 팀 23-1 활동 정리 2편 by 박성민




  기후 정의란 무엇인가? 기후 정의 담론은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으로,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시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기후 정의 담론은 환경 정의로부터 말미암아 지금의 기후 정의, 즉 다양한 사회 문제와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장에서는 환경 정의에서 기후 정의로 흘러가는 기후 정의 담론의 역사를 간단히 조망하여, 기후 정의 담론이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현재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기후 정의 이전 환경 정의의 시초환경인종주의

  

 환경 정의 운동은 1970년 지구의 날에 등장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때는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만 이해되었다. 환경 정의의 개념, 즉 환경 운동이 환경 정의 운동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은 198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Warren County에서 벌어진 한 시위에서 그 시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체에 유해한 독성 폐기물을 주에서 매립장 부지에 불법적으로 조치하여 매립하려는 조치에 주민들이 반대하였고, 시민 집단이 중심이 된 이 시위에서는 500명 이상의 시위자가 체포되며 미국 차원에서 전국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주에서 매립을 강행하려는 부지는 가장 가난한 농촌 지역으로 인구의 약 3분의 2가 흑인으로 구성된 County였다. 즉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환경적 차원의 고려를 통해 Warren County를 매립장 부지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약소한 지위에 있는 주민들이 Warren County에 다수 거주하고 있기에 폐기물 매립장으로 선정하려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폐기물 매립지의 입지와 유색인종 거주지의 상관관계를 탐색하는 연구가 여럿 진행되었고, 미국의 환경 운동은 유색인종의 환경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환경 정의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환경 정의는 환경인종주의, 즉 인종 차별의 문제와 환경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으로, 시간이 흐르며 차츰 인종과 더불어 모든 사회적 계층과 지위를 포괄하는 주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82년 NC 시위

2) 환경 정의의 분류(Robert R. Kuehn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처럼 확장되어 간 환경 정의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번 글에서는 논문 《A Taxonomy of Environmental Justice》의 내용을 중심으로 참고하여, 기본적인 네 가지의 분류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분배적 정의의 측면에서의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as Distribute Justice)

  분배적 정의는 말 그대로 ‘분배’를 정의롭게 하는 것으로, 초점은 분배의 결과에 맞추어져 있다. 분배의 대상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뿐만 아니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과 손해 등을 모두 포괄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각 개인 또는 집단별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배적 정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 절차적 정의의 측면에서의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as Procedural Justice)

  분배적 정의와 비교해서 살펴보자면, 절차적 정의는 분배가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를 논의할 때, 절차적 정의의 측면에서는 그 피해를 받은 대상자들이 모두 논의의 장에서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공론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 역시 의사결정 과정에서 본인들의 영향력을 평등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만 절차적 정의가 제대로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3) 교정적 정의의 측면에서의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as Corrective Justice)

  교정적 정의는 이미 불평등한 피해 또는 이익이 발생한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재 투발루와 같은 환경 문제가 심각한 섬나라들은 선진국에 비교해 자신들이 환경오염을 조장한 분량은 적지만, 그 피해는 선진국에 비해 심각하다. 환경 문제로 인한 훼손을 입은 피해국에게 환경오염을 더 많이 야기한 선진국들이 어떻게 대안을 강구할지 방법을 찾는 문제는 교정적 정의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4) 사회정의의 측면에서의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as Social Justice)

  마지막으로 사회정의로서의 환경 정의는 환경으로 비롯된 사회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 문제가 특정한 사회적 집단(특히 사회적 소수자)에게 불균형한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례로 취약성이 높은 소수자 집단에게 더 많은 환경 부담이 불평등하게 가중된다면 이는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문제시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3) 환경 정의의 확장

  환경 정의는 단순히 특정 국가 내의 특정 지역, 인종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 소외 계층, 젠더의 영역까지 그 논의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즉, 한 국가만의 문제를 넘어 국가 간의 문제, 세대 간의 문제, 나아가 인간과 인간 외의 다른 종 간의 문제까지도 환경 정의가 다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정의 개념만으로는 온전한 환경 정의의 실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을 촉발하였다.

  분배적 정의의 경우 편익을 분배하는 것은 몰라도 오염과 그에 따른 위험, 책임을 분배하는 문제는 분배 대상의 성격상 분배가 진행되기 난해하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형평적으로 부담을 지는 것 자체가 환경 정의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똑같이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들을 오염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존 위험의 이동이나 평등한 분배를 넘어서, 위험의 저감을 통해 환경 정의가 실현될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분배적 정의 개념의 한계는 명확하다.

  절차적 정의 역시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참여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충분한 정보와 의견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각 개인의, 특히 소수자의 권리가 제대로 행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한계가 있다. 분배에 관한 절차적 의사결정만으로는 역시 환경 정의를 온전하게 실현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존재하는데, 이는 앞서 논한 분배 문제에 관한 한계와도 연관이 있다.

  이러한 지적들에 정의 개념을 확장하자는 논의가 뒤따랐는데, 그 논의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대표적으로 생산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를 들 수 있다. 생산적 정의는 환경 문제 발생의 근원적인 문제는 생산 관계에 있다고 본다. 생산적 정의는 환경적 위험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을 넘어서 누구도 피해를 받지 않도록, 즉 위험이 생산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게 모든 사회구성원이 생산 결정에 참여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때 생산 결정이란 환경 관련 편익과 피해가 생겨나는 사안들 자체에 초점을 두고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실질적 정의란 모든 사람이 환경 파괴에 따른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도의 환경의 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환경 부담을 야기하는 행위를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절차의 실질화를 통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되는 결과의 질적인 우수함을 강조하는 정의로움으로 볼 수 있다.


4) 기후 정의의 등장

  200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소수자 집단, 특히 흑인과의 관계를 다룬 보고서가 등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흑인들은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적으나, 오히려 기온 상승에 따른 피해를 받을 가능성은 더 큰 동시에 관련 정책에서도 소외되고 있었다. 전술한 보고서의 논의와 유사하게 환경 정의 운동을 이끄는 주체들에서도 기후 변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기후 정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된 것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남긴 여파가 미국의 여론에 등장하고 나서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의 여러 주 중 뉴올리언스주 역시 강타하였는데, 뉴올리언스주의 사회적 소수자 계층의 주거 형태는 대부분 허리케인과 같은 갑작스럽고 강력한 자연재해에 취약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주에서는 소수자 계층에 시의적절한 보호와 후속 대처를 진행하지 않았고, 도리어 지원에서 소외되는 등 차별에 시달렸다. 이를 목도한 환경 정의 운동가들은 기    후 변화라는 요소 역시 환경에 포함하여, 환경 정의를 기후 정의로 전환하는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주에 입지한 공장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를 강화하였을 가능성 역시 제기하였는데, 이는 사회정의 실현의 필요조건으로 환경 보호를 내걸었다는 의의가 있다. 이 시기 이후로 미국의 환경 정의 운동은 디젤 버스 폐기, 친환경적인 에너지 효율성의 향상 등 현재의 기후 운동과 유사한 활동들을 진행하게 되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총회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이는 주류 환경단체가 주도한 실용적이고 협력적인 자세가 힘을 잃고 급진적인 분파였던 기후 정의 운동이 영향력을 확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환경 정의 운동의 프레임은 “기후 변화에서 기후 정의로”라고 바뀌었다고 평가될 만큼, 기후 정의의 실현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2005년 카트리나 피해


5) 근래 기후 정의 담론의 동향 탐색

  최근 기후 정의 담론은 취약성(vulnerability), 역량(capability), 인권(human rights) 차원에서의 접근을 시도하며 정책적 대응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일례로 [사진 3]에 표현된 도식과 같이, 취약성에 관해서는 위기의 피해를 직접적인 재난 노출뿐만 아니라 민감성과 적응 능력까지 고려한 정교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취약성 개념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포괄하는 회복 탄력성의 격차 문제까지 확장되고 있다. 즉, 빈곤 문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문제, 공간적 차원의 불평등 문제로 인해 약화된 개인의 재난 대응력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다음으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보자면, 우선 정의로운 전환이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고용주가 공장 문을 닫을 때 노동자와 그 산업에 의존하고 있던 공동체를 정당(공정)하게 처우하는 것을 일컫는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고탄소 분야의 산업과 노동자가 부담하는 충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산하기 위해 생긴 용어이다.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의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담 문제, 정의로운 전환이 탈성장 논의와 맞물리면서 생겨난 노동과 환경 간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한 숙고 역시 요청되고 있다. 요컨대 현대의 기후 정의에서는 모든 분야를 두루 포괄하는 다각화되고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며,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서 인류의 미래를 밝히려는 분투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References]

권해수, 〈미국의 환경정의운동〉, 《국내·외 사례 연구를 통한, 환경정의운동 모색》, 2000. 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04/06/data_envinfo_epds_2768_%EB%AF%B8%EA%B5%AD%EC%9D%98-%ED%99%98%EA%B2%BD%EC%A0%95%EC%9D%98%EC%9A%B4%EB%8F%99.pdf

김홍균, 《환경위험에 있어서의 불평등 해소방안: 환경정의》, 2011.

David Schlosberg & Lisette B. Collins, 《From environmental to climate justice: climate change and the discourse of environmental justice》, 2014.

Robert R. Kuehn, 《A Taxonomy of Environmental Justice》,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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