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
도그는 외로움을 느끼고 반려 로봇을 구매한다. 로봇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도그는 해변가로 놀러간다. 역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로봇은 그만 고장나고 만다. 어떻게든 로봇을 살리려고 하지만, 해변가는 잠겼고 해변가에 들어가려는 시도는 합법적인 그리고 불법적인 방법 모두 실패한다. 로봇은 혼자 해변가에 남았다. 도그도 혼자 남았다. 도그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여러 행동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반려로봇을 구매한다. 로봇은 고물상에게 팔려 완전 분리가 되지만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로봇은 도그가 새로운 반려로봇과 걸어가는 것을 멀리서 발견한다. 이 영화에서는 반려 로봇을 다루고 있다. 영화<애프터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려 로봇 자체를 다룬다기 보다 반려 로봇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다루려고 하는 것 같다. 바로 사랑과 이별이다.
도그는 사실상 꽤 긴 시간동안 로봇을 방치한다. 토끼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로봇의 다리를 잘라가는 장면이나 고물상이 로봇을 가져가는 장면을 봤을 때 해변에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꾸는 모든 꿈의 중심에 도그가 위치한 로봇의 상황을 아는 관객들은 도그가 좀 답답할 수 있다. 그리고 도그는 로봇만큼 도그를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로봇이 없어서 죽을 것 같다면 어떻게 해서라든지 들어가서 수리를 하거나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배를 타고 들어오거나 매일같이 관공서로가 해변 승인 서류를 받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미리 들어가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그는 그러지 않았다. 도그가 정말 로봇을 덜 사랑했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여기서는 동물)은 모두 다르다. 누가 뭐라하는 것에 상관없이 돌진하는 사람(리얼 페인의 벤지)이 있는 반면 누가 뭐라하는 것에 겁을 먹는 사람도 있다.(리얼 페인의 데이비드) 도그는 그냥 이거 이제 하지마 하면 안 하는 그런 인물인 것 같다.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장일이 되자 바로 찾아가고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땅을 파는 것을 보면 도그도 로봇을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다만 도그의 성격이 그런 것일뿐. 그리고 멀리서 상황을 보는 입장에서는 여러 방법이 보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는 방법이 안 보일 수 있다. 하늘에선 미로의 출구가 보이지만, 미로 속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도그는 해변이 다시 개장하는 날까지 여러 활동들을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오리를 만난다. 오리는 뭔가 서투른 도그에 비해 모든 것에 능숙하다. 연을 날리는 것도, 물고기를 잡는 것도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능숙하다. 도그가 아꼈던 로봇은 하나하나 도그가 모두 알려줘야하는 존재였다. 손조차도 제대로 못 잡는 사람이었다. 도그는 누군가를 리드하는 삶보다는 따라가는 삶을 살고 싶은 존재인 것 같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해변은 들어가지 않으며, 애초에 로봇을 구매한 것도 쓸쓸함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그는 뭐든 능숙하고 자신을 리드해주는 오리를 만났을 때 뭔가 다름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로봇과 다른 오리의 모습에 끌렸을 수 있다. 하지만 오리는 로봇처럼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교류가 쌍방향이라고 생각했던 도그와 달리 오리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해외로 간다는 메모만 남겨놓고 이별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리의 존재는 도그가 로봇을 더 가디라는 계기가 된다. 오리라는 불안정감을 겪고 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어줄 로봇의 안정감이 더 커보였을 수 있다. 상처를 입었던 도그는 새로운 로봇과 만나게 되고 상처가 점차 아물게 된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진다라는 말이 가장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로봇은 계속 도그만을 기다린다. 다시 일어난 순간 도그가 아닌 라스칼이 눈에 보였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과의 관계로 비유하자면 전 연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 앞에 새로운 사람이 괜찮냐며 손을 내미는 상황이지 아닐까 싶다. 라스칼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로봇도 그에 빠지고 그와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 도그 꿈만 꾸고 도그와 만날 생각만 하던 로봇은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직 로봇의 마음에 도그가 남아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찌 보면 도그는 로봇의 첫사랑이다. 조립되고, 즉 태어나고 처음 사랑을 느낀 사람이기 때문이다. 케찹을 가지러 갔다가 창문 너머에 있는 도그를 보고 쫓아 내려가 도그와 인사를 하지만 부질없는 꿈일 뿐이다. 로봇이 도그를 완전히 잊지 못한 까닭은 아마 마지막 인사의 부재도 큰 부분을 담당했을 것 같다. 모든 관계는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난다. 로봇에게는 시작하는 인사는 있지만 끝나는 인사를 듣지 못한 것이다. 물론 도그도 마찬가지지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움직임이 있었던 도그와 달리 로봇은 움직이지 못했다. 도그는 전 연인이 그립지만 새로운 연인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로봇은 그것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로봇에게 도그와의 관계는 끊긴 것 같기는 한데 또 안 끊긴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라스칼이 마음에 들어왔지만 가슴 어딘가에는 아직 도그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라도 도그를 찾아갔을 것이다. 즉 로봇은 첫사랑과 동시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도그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기에 도그를 쫓아가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새 로봇과 같이 걸어가는 도그의 모습을 본 것이 로봇에게는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직접 만나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보다 큰 충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로봇이 도그를 놓아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 로봇은 라스칼과 시간을 보내면서 도그가 신경쓰였을 것이다. 도그는 슬퍼하고 아무 것도 못하는데 자신만 라스칼과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하게 된 마지막 인사로 로봇도 마음 편하게 라스칼과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뒤이어 춤을 추는 장면이 한결 편해진 로봇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sepetember라는 곳에 맞추어 각자 춤을 추는 순간, 도그는 새로운 로봇과 있었고, 로봇은 라스칼의 좋아하는 음악이 몸에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둘의 춤은 같았다. 서로 다른 공간에, 다른 인물과 있지만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행복했던 추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같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둘의 미래는 과거 둘이 꿈꾸었던 미래와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함께 나누었던 추억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것을 생각이 들었다.
도그와 로봇은 이별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도그는 새로운 로봇이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로봇은 손을 잡을 때 살살 잡는다. 모두 도그와 로봇이 서로에게 잘못했던 점이다. 누구나 서툰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서툰 면때문에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서툰 점이 다음부터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도그와 로봇은 자신의 서툰 점이 새로운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고 둘은 성장했다. 둘은 서로를 기다리는 긴 시간동안 적어두었던 오답노트를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결국에는 조금 더 나아진 자기자신을 만들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