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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상 Jan 04. 2022

오늘은 무슨 짜장을 먹을까

메뉴판에서 만나게 될 거의 모든 짜장에 대한 이야기

짜장, 빠르고 취향 안 타고 어디서나 팔고 심지어 저렴하기까지 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먹게 되는 국민 점심 메뉴다. 한 때는 졸업식,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먹는 '고오급 요리'였지만, '물가 관리 품목'으로 지정되어, 오랜 시간 동안 저렴한 점심 메뉴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쌈마이한 음식'으로 치부하기에 짜장은 너무 맛있고, 생각보다 심오한 음식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춘장 맛인 것 같지만,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면을 쓰고, 어떻게 볶아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진 음식이 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필자의 짜장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우리가 중식당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짜장에 대해서 소개하려 한다.


짜장은 어떤 음식일까?
오늘 저녁 메뉴였던 필자가 요리한 짜장밥 <출처: 본인>

짜장면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듯, 중국 산동지방의 향토음식인 작장면(炸醬麵)이 현지화된 음식이다. 이 원조 작장면은 면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장을 볶아 면에 얹어 생채소와 함께 비벼먹는 음식으로, 물기가 적고 강렬한 짠맛이 나는 음식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면장을 대량생산에 쉽게 개량한 것이 춘장인데, 한국의 짜장은 이 춘장을 야채, 고기와 함께 볶아낸 음식이다. 거기에 더해 설탕과 굴소스(또는 미원)로 간을 하기 때문에 짜장면은 달콤 짭짤하면서도 확 당기는 감칠맛이 있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짜장의 조리법은 간단하다. 1) 춘장을 기름에 볶고, 2) 야채와 고기를 기름에 볶고, 3) 볶아진 고명에 볶은 춘장을 섞은 뒤, 4) 설탕, 간장, 굴소스 등으로 간하여 마무리한다. 그 단순함 덕에, 가정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어느 중식당에서나 '적당히 먹을만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적당함에 반기를 들고, 자기 식당만의 특별한 맛을 추구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어떤 식당에서든 3가지 이상의 짜장면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 보는 짜장의 이름을 해석하면서 씨름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 짜장들은 다 뭐란 말인가?


짜장(옛날짜장) - 부드럽고 깊은 맛

감자가 들어간 대전 동해원의 옛날 짜장 <출처: 본인>

거의 모든 중식당 메뉴판의 좌측 상단에 있는 바로 그 '짜장'이다. 위에서 언급한 짜장 레시피는 매번 볶아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는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다. 박리다매를 해야 했던 중식당들이 이러한 볶는 과정을 생략하여 원가를 절감한 것이 바로 이 옛날짜장이다. 옛날짜장은 매번 볶는 대신, 춘장과 야채, 고기 등을 한 번에 대량으로 볶아두고, 녹말물을 부어 양을 늘림과 동시에 들통에 끓여 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문에 이 짜장은 식당에서 제일 저렴하고, 빠르게 나오는 메뉴이다. 

하지만 저렴하다고 해서 무시하지 마시라.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여지면서 야채에서 우러나온 달큰함과 부드러움은 옛날짜장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다. 특히 감자와 호박처럼 오랜 시간 익어야 제맛이 나는 야채는 옛날짜장에만 들어갈 수 있다. 또, 부드러운 스튜의 형태를 띤 만큼 짜장밥으로 먹는 데에도 이만한 것이 없다.


간짜장 - 강렬한 맛과 아삭한 식감

일반적인 간짜장의 모습 <출처: 본인>

간짜장은 춘장과 고명을 그때그때 볶아서 면과 따로 내는 가장 기본적인 짜장이다. 면과 짜장을 따로 내기에, '간을 해서 먹는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나 마른 짜장(마를 건 乾, 중국어 발음 gān '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볶아야 하니 품이 많이 들고, 때문에 보통 짜장보다 1,000원 이상 비싼 게 보통이다. 물을 따로 넣지 않기에 맛이 더 강하고, 짧은 시간에 볶아내기 때문에 야채의 식감 역시 살아있어서 1,000원을 더 내더라도 간짜장을 선호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하지만 일부 바쁘거나 무성의한 식당의 경우, 끓여놓은 기본 짜장에 양파만 새로 넣어 볶거나, 야채를 너무 대충 볶아 아린 맛이 남아있는 등 함정을 밟을 확률도 높은 메뉴이다.


삼선짜장 - 다양한 해물을 골라먹는 재미

중식에서 삼선(三鮮)은 땅, 바다, 하늘에서 얻은 재료들을 말한다. 보통 버섯, 해물, 가금류 등을 말하는데, 삼선짜장은 이 중에서도 구하기 쉬운 해물을 넣은 짜장을 말한다.(식당에 따라 버섯도 들어가기도 한다.) 삼선짜장에 들어가는 해물은 새우와 오징어, 쭈꾸미 등으로, 잘 볶아지면 식감과 향이 각별하다. 고명이 더 들어가고 따로 볶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 짜장보다 3,000원 정도 비싼 것이 일반적이지만, 갓 볶은 짜장의 풍미와 해물을 좋아한다면 만족스러울 것이다.


쟁반짜장 - 짜장, 고명, 면 모두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맛

영등포 당산동 동춘관의 고추쟁반짜장 <출처: 본인>

쟁반짜장은 춘장, 야채, 고명을 볶은 간짜장에 면까지 넣어서 한 번에 볶아낸 것이다. 따라서 면과 짜장이 잘 버무려져 있어 다른 짜장처럼 비빌 필요가 없다. 따뜻하게 갓 볶아져 나온 쟁반짜장은 김이 솔솔 올라오고, 면에서 진한 짜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쟁반짜장은 '요리부'와 '식사부'의 사이 즈음의 취급을 받는데, 식당에 따라서 해물을 비롯한 다양한 고명들이 추가적으로 들어가 골라먹는 재미를 더한다. 즉, 쟁반짜장은 간짜장의 진한 짜장의 맛, 삼선짜장의 풍성한 고명에 면과 짜장의 일체감이 더해진 요리인 셈이다. 그렇기에 짜장을 잘하는 식당에 방문해서 메뉴를 하나만 골라야 할 경우, 쟁반짜장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변형으로 돌판에 쟁반짜장을 올린 돌짜장 등도 있다.


사진으로 첨부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동춘관고추쟁반짜장은 푸짐하면서도 잘 어우러져 있고, 매콤함까지 더해져 일품이라 감히 추천한다.


유니짜장(유슬짜장) - 부드럽고 먹기 편한 짜장


짜장면을 먹다 보면 면과 짜장이 따로 노는 비극적인 경우가 있다. 면은 면대로 심심하고, 남은 짜장만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도 고역이다. 이런 비극을 피하고 싶다면, 유니짜장이나 유슬짜장이 좋은 선택이다. 유니짜장은 육니(肉泥, 고기진흙)라는 뜻으로 고기와 채소를 잘게 갈아 넣은 것이고, 유슬짜장은 고기와 채소를 길게 채 썰어 넣은 것이다. 두 가지 짜장 모두, 면과 짜장을 함께 먹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유니짜장은 면 사이에 잘게 갈린 고명들이 비벼져 올라오고, 유슬짜장은 채 썰려 있어 면과 고명을 함께 집기 편하다. 또한, 잘게 갈린 고명이 들어간 짜장은 훨씬 부드러운 맛을 낸다. 간짜장처럼 그때그때 볶아내는 것은 덤이다.


고추짜장 - 중독성 있는 매운맛


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매운맛을 즐긴다. 짜장도 예외가 아님을 나타내 주는 것이, 중식당 테이블 위에 놓인 고춧가루다. 이런 매운맛에 대한 수요에 화답한 것이 바로 고추짜장이다. 고추짜장의 매운맛은 고추기름과 고추에 나오는데, 볶을 때 고추기름을 더해서 볶고, 고명에도 청양고추가 더해져 칼칼함을 더한다. 고추짜장이 단일 메뉴로 있는 곳들도 있지만, 위에서 소개한 동춘관처럼 다른 짜장에 고추와 고추기름이 더해져 새로운 맛을 내는 경우도 많다.


도삭면 - 특별한 면에서 오는 매력

세종 초향각의 도삭면 볶음짜장 <출처: 본인>

중식에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칼국수나 일본의 우동처럼 칼로 썰어내는 국수도 있는데, 이를 도삭면이라고 한다. 도삭면은 한자 그대로 밀가루 반죽을 칼(刀)로 깎아낸(削) 면(麵)으로 넙적하고 얇은 것이 특징이다. 면이 넓고 얇은 만큼, 짜장 소스를 정말 잘 먹으며, 마치 손칼국수를 먹는 듯한 독특한 식감 또한 매력적이다. 도삭면은 짬뽕, 짜장 어떤 요리에도 들어갈 수 있지만, 소스를 잘 먹는 만큼 볶아 비벼내는 요리인 쟁반짜장이나 볶음짬뽕이 가장 잘 어울린다. 일반 식당보다 보통 2,000원 정도 더 비싼 편이지만 그 가격 이상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모로 추천하지만, 도삭면을 깎는 것 또한 기술이기에 먹을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때문에 최근에 맛있게 먹었던 세종시 장군면의 초향각을 소개하고 넘어간다. 또한, 서울, 수원 등지에도 도삭면 전문점이 있으니 검색해보는 것을 권한다.


중깐 - 목포만의 특별한 맛

목포 대명춘의 중깐 <출처: 본인>

중깐은 전라남도 목포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짜장이다. 처음 중깐을 판매한 곳의 이름을 따서 '중화루 간짜장'이라고 부르던 게 축약된 이름이라고 한다. 중깐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잘게 다지다 못해 '조사버린' 야채와 고기, 또 하나는 일반 중화면의 절반 정도 되는 얇은 면이다. 이 두 가지가 더해져 면 째로 숟가락으로 떠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감이 가볍고, 맛이 부드럽다. 때문에 중깐 자체의 맛도 훌륭하지만, 다른 요리에 곁들여 먹을 때 부담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원래 이러한 의도로 메뉴를 개발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다만 요리에 곁들일 것을 감안해서인지, 일반 짜장보다 양이 조금 적은 편이니 요리를 안 시킨다면 곱빼기를 시키는 것을 권한다.


중깐은 목포에서도 목포역 주변의 원도심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데, 중화루, 태동식당, 대명춘 등 대략 3~4 곳 정도의 오래된 식당에서 중깐을 판매한다. 각 식당마다 맛이 꽤 다르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들 역시 다르니, 한 곳씩 들러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첨언하면 목포 원도심의 가게들은 일찍 닫는 편이니 가능하면 점심식사로 먹는 것을 권한다.


마치며


지금까지 소개한 짜장들 외에도 하얀짜장, 백년짜장, 짜장은 아니지만 파생된 요리인 물짜장 등 다양한 형태의 짜장들이 있고, 필자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짜장들이 많다. 그만큼 세상에 아직 새로운 즐거움들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은 무심코 '짜장', '짬뽕', '볶음밥'을 외치는 대신, 중국집 메뉴판을 한 번 정독해보면 어떨까? 숨어있는 새로운 맛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짜장 대신 짬뽕이 끌리실 여러분을 위해, 전에 작성한 짬뽕에 관한 글을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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