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지팡이

by 배니할

두 개의 지팡이

나를 이 나이까지 지탱해 준 힘은 과연 무엇이었든가?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야 그분들의 보호 아래 근심·걱정 없이 살았기에 지팡이를 생각해 본 일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결혼하여 지금까지 50여 년의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했다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크게 앓았다. 류머티즘으로 몸져누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까 주위에서 모두 걱정들을 했다. 이제 집마련하고 아이들 유치원 다닐만큼 키워놓고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충실히 근무하고 그야말로 아무 근심 걱정없이 살 때다. 나는 병석에 누워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시어머님이 새며느리감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는 그런 상상도 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남의 손에 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은 면역이 약해서다. 이 병은 병원에 다녀서 낫는 게 아니고 오로지 내 의지에 달렸다는 결론에 이르러 병원에서 지어왔던 약을 쓰레기통에 다 갖다버렸다.
아침에 산에 다닐 동지들을 모았다. 앞집 형님이 중학교 들어간 아들 밥해주려면 새벽 네 시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 하여 그 시간에 내가 세 집에 전화를 두 번씩 울리는 것을 신호로 네 명의 아줌마들이 뒷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겨울 영하 15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눈이 온 다음에는 비료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도 타면서 재미있게 다녔다. 그랬더니 차츰 밥맛도 좋아지고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이 났을 때 나는 생활의 변화를 주고 싶어 아이들을 전학시켰다. 그곳에서 우연히 안현필 선생님의 자연식강좌를 듣게 되었다. 그분의 책 ‘공해시대의 건강법’이란 책을 읽고 현미를 위주로 철저히 식단을 짜고 실천을 했다. 얼마 안 가서 나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하나씩 건강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멀미도 그치고 어지럼증도 없어졌다. 남편은 담석증이 나았고, 아들은 아토피가 좋아지고, 딸은 구내염이 나았다.


그때 나를 깨우치고, 살게 힘을 준 것이 나의 어린 두 남매이다. 이 아이들이 클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건강지식을 쌓고 의지로 실천하여 오늘까지 큰 병 없이 살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 지팡이는 필요가 없어졌다. 원래의 목표를 훨씬 넘겨 아들딸에게서 손자 손녀까지 보았으니 그 당시의 지팡이는 내 보물창고에 잘 모셔두었다.

그 후 생각지도 않던 새로운 지팡이가 내게 나타났다. 바로 남편이다. 배우자보다는 아이들만 보고 살았던 삶에서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야 덩그러니 부부만 남아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결코, 튼튼한 몸을 물려받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나는 결혼 때 그에게 98점이란 높은 점수를 주고 출발했기에 직장생활하는 이외의 집안일에는 신경을 안 쓰도록 했다. 퇴근 후 일이 있으면 그의 기사가 되어 문상을 다녔고 그의 건강을 위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출장도 따라다녔다. 장거리 운전은 교대로 그가 볼일 볼 동안은 나는 시내 구경을 다니거나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일을 마친 그가 오라는 지점으로 가서 그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마 나에게 무엇이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바로 내 역마살이 이렇게 채워져서 배가 부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매일 세 끼 식사를 잘 익은 김치와 알맞게 발효된 요플레를 먹으며 비로소 제대로 맛깔나는 식사를 한다.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고, 그는 나의 지팡이가 되었다. 그에게는 내가 꼭 필요하고, 나 또한 그가 꼭 필요하다. 나는 그와 나의 건강을 생각하며 즐겁게 장을 보고, 건강에 좋은 식단을 짜고 요리를 한다. 남편 덕분에 나는 매끼 잘 먹게 되기에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전혀 귀찮지가 않다. 그가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정도는 수고랄것도 없다. 이런 마음과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매 순간 감사할 뿐이다. 이 쌍지팡이는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매일 써야 하기에 닦고 기름칠을 하고 아름답게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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