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의 살과 피로 태어났다. 그분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는 세월 속에서 쉼 없이 작동하며 지금의 나를 빚었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변화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태어날 때 창조주가 심어주신 ‘프로그램’을 평생 수행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형제와 나는 같은 부모의 유전자를 나눠 가졌다. 서로 멀리 살아도 문득 닮은 표정이나 몸짓이 드러날 때, 피의 힘을 실감한다. 그러나 유전자의 배합은 저마다 달라 개성은 모두 다르다.
젊은 시절, 직장 동료가 내게 물었다. “혹시 오빠 중에 ‘단’이라는 분이 계세요?” 둘째 오빠 이름이 맞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 당신을 보자마자 친구 동생일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조금전 말과 표정에서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라고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안에서 오빠의 유전자를 발견한 것이다.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만난 사촌 동생은 우리 아버지를 꼭 빼닮아 나를 놀라게 했다. 정작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닮지 않았는데, 작은아버지의 아들 중 셋째가 큰아버지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으나, 중년에 이르러서야 DNA가 드러난 것이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보셨다면 참 신기해하셨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떠난 뒤, 자손이나 먼 후손 속에서 유전자가 깨어나 또 다른 삶을 이어갈지 모른다. 사촌, 팔촌, 십촌, 외가, 진외가, 사돈 팔촌……. 지금은 남처럼 흩어져 살아도, 보이지 않는 끈은 어디에선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손주들을 키우며 그 끈은 더욱 뚜렷해졌다. 딸과 사위의 모습이 아이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남들도 “붕어빵”이라고 한다. 손자는 남자 버전, 손녀는 여자 버전일 뿐이다. 딸은 손녀의 발을 보며 “발가락은 아빠 닮아 길고, 발톱은 나 닮아 얇아 뒤집히네” 하며 걱정한다. 눈꼬리와 흰 피부는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고, 다만 시력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했다. 손녀가 외할머니인 나와 혈액형이 같다는 사실에도 흐뭇해한다. 손자의 양 귀바귀의 바늘구멍은 할아버지, 아빠로 이어지는 삼대 세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딸은 놀라워했다. 인생이란 참, ‘누구 닮았네’하는 이야기로 하루가 간다.
세월이 흘러 오빠들은 내 얼굴에서 어머니를 본다고 한다. 나는 거울 속 주름에서 언니를, 사진 속에서 여동생을 본다. 예순에는 여동생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칠순에는 언니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났다. DNA는 그 나이 들어서야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셋째 오빠는 나를 뚫어지게 보며 “많이 늙었네” 하셨다. 순간 부끄러웠으나 웃으며 대꾸했다. “오빠 칠십에도 안 늙으면 어떻게 해요. 손주들이 다 커 가는데…….” 아마도 오빠는 늙어가는 여동생을 보며 젊음의 소멸을 슬퍼하셨을지도 모른다. 동생의 얼굴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읽으셨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얼굴은 변한다. 그러나 단단한 유전자의 고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 고리는 내 자식과 손주에게도 이어져, 그들 또한 언젠가 “너 닮았네, 나 닮았네” 하며 살아가리라. 그 사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