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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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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Aug 14. 2023

[복직일기] 독박육아의 시작

  집사람이 다시 복직을 하고 주말에만 오는 바깥 양반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에 더 이상 집사람은 없다. 등원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고, 하원은 시터이모님께 외주를 주게 되었다. 아이는 생각만큼 이모님께 촥 안겨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하는 엄마에 대해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한 모양이다. 더 이상 일하러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에 꼭 한마디는 한다.

 "엄마, 오늘 일찍 와."


"복직하셨으면 아이는 누가 봐주세요?"

 "시터이모님께서 5시부터 8시까지 봐주세요."

 "퇴근은 언제 하세요?"

 "7시쯤. 집에 가면 8시쯤 되니까 그때 이모님 퇴근하시죠."

 "그럼 언제 쉬세요?"

 "......"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게, 난 대체 언제 쉴 수 있을까? 회사를 복직하고 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글 업로드가 늦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5시에 하원을 하면 유치원 옆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집에 와서는 자버린다. 초저녁에 잠을 자고 엄마가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8시면 눈을 뜬다. 초저녁 잠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딸내미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늦은 저녁을 차려주면 절대 제 손으로 먹지 않는다. 엄마가 먹여줘야 한다. 그리고 엄마랑 목욕도 하고 싶고 놀이도 하고 싶다. 사이사이 시간을 쪼개 엄마도 먹고 씻어야 한다. 다음날 유치원 준비물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어느덧 벌써 11시가 넘었다. 아이 양치를 시키고 책도 읽어주고 잠자리에 누우면 11시반 즈음. 아이가 잠이 든다. 엄마가 종종 더 빨리 잠들기도 한다.


 엄마는 늘 아이보다 먼저 아침을 맞는다. 일어나면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쓰다듬는다. 화장실로 가서 빠르게 씻는다. 다 씻어갈 즈음이면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눈치 채고 크게 '엄마'하고 부른다. 둘은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엄마는 바로 아이의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는 또 아침을 스스로 먹지 않는다. 먹여달라고 조른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도 많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밥을 챙겨먹고, 사과도 먹고, 구운계란도 먹는다고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영양제도 먹겠다고 한다. 그때부터 엄마는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아직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열심히 한숟갈씩 먹여본다. 아이는 다 먹고 안하던 양치를 하겠다며 칫솔을 들고선 거울 앞에서 하세월이다. 이는 닦지도 않고 거품놀이중. 엄마는 다가오는 출근 시간에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닦자'하며 도와주려고 하면 아이는 거절한다. '싫어, 혼자 할거야!' 겨우 그렇게 마친 양치질 이후에 옷을 갈아입자고 하면 아이는 숨바꼭질 하자며 달아난다. 가까스로 붙잡아 옷을 갈아입히면 아이는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한다. 뒷처리를 도와주고 집을 나서면 오늘도 결국은 택시행이다. 회사 지각을 면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택시도 잘 안잡히는 날은 더 애가 탄다. 카카오 블루(자동배차 택시 서비스)로 택시를 부른다. 택시는 잡혔는데 오는데까지 10분이 걸린단다. 10분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기다려 타고 나면 하품이 몰려온다. 엄마의 출근은 이제 시작인데.


  어떤 이들은 독박육아라는 말이 아이에게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돌보는 가치 있는 일을 왜 독박이라고 하느냐고. 그러나 평일에 육아를 홀로 책임지는 나로서는 독박육아라는 말을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닌 것 같다. 낮에는 일하다가 퇴근하고 두번째 출근을 하는 엄마들은 내 시간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다. 일 외에 나머지 시간을 모두 아이를 위해 쏟고, 쉬는 시간이라고는 취침시간 밖에는 갖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건 엄마 아니 그냥 한 인간에게 폭력적이지 않을까? 오죽하면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람들이 독박이라는 이름으로 육아를 부를까. 엄마라서 감당할 수 있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특별히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시간의 부재가 서글프다.


 독박육아도 백일이 지날 무렵 아이의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인데 뭐 갖고 싶어?"

 "엄마. 엄마가 유치원에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어."

 하원 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했다. 유치원 앞에서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던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약간의 안부인사를 주고 받다가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

 "복직하고 울었어요, 안 울었어요?"

 "안 울었어요."

 "할만한가보다. 대단한데요."

 할만해서가 아니라 대단해서가 울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까.


 집에 데려온 아이를 앉혀두고 촛불을 끄면서 소원을 빌었다. 아이는 천진하게 내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나는 아이의 네 돌 무탈을 감사함과 동시에 아이의 백일 잔치를 기념하는 것처럼 나의 독박육아 백일을 축하하며 앞으로 나의 독박육아도 무사히 잘 순항하길 빌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백일은 그저 시작일뿐이다. 나의 독박육아도 이제 겨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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