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의 서재 Feb 16. 2022

1. 외국에 살면 영어가 저절로 늘까

영어를 빠르게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21년 겨울. 아내와의 대화.



“자기, 이제 조금 있으면 복직이네?”


(한숨을 쉬며) “일 년 넘게 육아만 하다가 다시 돌아가려니까 엄청나게 긴장되네. 아씨... 영어 공부도 다시 해야 하는데.”


“갑자기 왜?”


(머리를 싸매며) “우리 업무 특성상 다른 나라에 있는 클라이언트와 연락해야 할 때가 자주 있잖아. 이메일도 자주 써야 하고, 컨퍼런스콜 해야 할 때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출장을 못 가니까 화상회의로 오히려 더 자주 이야기해야 할 텐데, 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중에 영어를 하나도 안 써서 다 까먹었단 말이야.”


(웃으면서) “처음엔 그래도, 금방 돌아올 거야. 출근 첫날부터 클라이언트랑 회의시키지도 않을 텐데 뭐. 그리고 자기가 영어를 못했던 게 아니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아니야. 그건 자기 같은 사람 이야기지.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몰라. 영어가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그걸 배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겨우 배웠던 외국어가 퇴행해서 다시 리부트 시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


외국어는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지치기만 하는 길 같을 때가 많아


(표정이 굳는다) “아니야. 내가 더 잘 알아.”


“자기가?”


“어렸을 때 외국 가서 영어를 배운다고 그게 쉽겠어? 어른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어려운데, 어린아이가 그걸 억지로 해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잖아. 나중에 도움된다고 말해도 아이가 이해하긴 어렵고.”


“음... 그래도 어렸을 때 외국에 가면 한국에서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많이 늘지 않아?”


“한국에서 보다야 빨리 늘지. 하지만 단순히 외국에 가서 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자동으로 느는 건 더욱 아니야. 영어든 한국어든 언어를 배우려면 자연스럽게 그 언어를 접하는 노출도 필요해. 하지만 학습이 병행되지 않으면 늘지 않아. 단어 외우고, 문법 공부하는 학습도 당연히 필수야. 그 과정을 안 하고 노출만 하면 특정 수준 이상 늘지가 않아. 딱 친구들이랑 간단한 대화할 수 있는 정도? 외국에 가서 환경이 바뀌면 외국어에 대한 노출이 느는 거지, 학습은 여전히 아이 몫이야. 어학연수랑 달라. 갑자기 내가 배우는 모든 교과서가 영어로 바뀌는 거잖아. 어른이 하나, 아이가 하나, 학습은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야. 외국에 가서 한다고 그 과정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어. 외국에 나가면 배워야 할 이유가 급박해지는 거지, 쉬워지고 재밌어지지 않아.


“하지만 자기가 말한 것처럼, 영어에 대한 노출은 한국에 비해서 엄청나게 늘잖아. 그건 엄청난 이점 아닐까?”


“언어만 보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 노출이라는 게 어떤 상황일까? 자기가 초등학교 때 갑자기 외국으로 가서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해봐. 초등학생이 이 상황에서 ‘와! 영어와 외국어에 대한 노출이 늘었으니 나의 언어 실력이 급격하게 향상되겠구나!”라고 생각할까? 아니야. 이 아이가 접하는 ‘언어에 대한 노출’은 딱 한 가지 상황의 연속이야 - 헬렌 켈러의 경험.”


“그게 뭔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경험. 따돌림당하고 있는지도 몰라. 친구들이 생겨도, 대체로 조용히 있어야 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긴 하지만... 처음에는 친구들 하는 대화 반도 못 알아듣거든. 물론 그 시간이 어릴수록 짧기는 해.”


“아...”


“노출이 늘면 영어가 늘기는 하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과정의 시작은 엄청난 외로움이야. 아이가 감당해야 하지 않아야 할 외로움. 가령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면, 내 친구들도 같은 학년이고, 친구들은 다 그 학년 수준의 언어를 구사해. 나만 못하는 거지. 그렇다고 아무도 봐주진 않아. 오히려 놀리고, 심한 경우에는 따돌리지. 그 나이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잔인해.”


“진짜 쉽지는 않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자기 말 듣기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어. 하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짧지 않아? 어릴수록 언어를 엄청 빨리 배우잖아.”


“그건 맞아. 그리고 외국어를 습득하는 골든 타임도 있는 것 같기는 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초반까지는 두뇌가 말랑말랑하고, 새로운 언어에 노출이 되었을 때 흡수도 빨라. 그보다 더 어렸을 때 노출되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흡수하지만 모국어도 그만큼 빨리 잊어버려.”



한국어를 잊어버리면 나중에 고생하느니라


“그러고 보니까 자기는 외국에서 오래 산 것 치고는 한국어가 크게 불편한 것 같지 않네?”


“지금이야 그렇지. 왔다 갔다 해서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배워야 했으니까. 미국으로 갔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게 처음에는 어려웠어. 국어 시간에 배우는 시나 고전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국사나 사회 시간도 힘들었고. 한문 시간에는 ‘대한민국’의 ‘민(民)’이라는 글자를 몰라서 혼났고. 대학 가서도 1학년 때는 전공뿐만 아니라 교양 과목도 힘들어서 튜터링 신청해서 겨우겨우 따라잡으면서 다녔거든. 노출이 되고, 학습과 연습을 하면 언어가 늘잖아? 반대로 줄면 퇴행해. 한국어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따로 공부하고, 연습을 해야 해. 한국에서 외국으로 갔을 때 언어 때문에 고생하다가, 다시 돌아오면 또 반복되는 거지.”


“그러고 보면 자기는 딱 적절할 때 갔다가 왔다가 했다. 한국어랑 영어 둘 다 큰 손해 없이. 지금 돌아보면 그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


“어... 언어 면에서는 시기가 참 적절했어. 근데 부모님이 고생하셨지.”


“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가 언어 습득의 골든타임이고, 이때 한국과 외국을 오간 건 언어 면에서는 최적의 시기였기는 해. 문제는 이때가 부모님 말 제일 안들을 때잖아. 반항도 많이 하고, 화도 많이 내고. 지금이야 다 커서 회상하는 입장이니까 차분하지만, 당시에는 아빠와 엄마 때문에 내가 계속 힘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나 때문에 자주 냉랭했어.”


“하아.. 우리 아들이 그럴 거라 생각하면 진짜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네. 지금도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면 아직 말도 못 하면서 엄청 뭐라 뭐라 하는데... 나중에 초등학생 때 엄마, 아빠 때문에 친구와 헤어져서 다른 나라 가야 한다고 하면 난리 날듯하긴 해.”


“그래서 외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키우는 것에 대해서 난 굉장히 조심스러운 거야. 리스크와 비용을 생각하면,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든 과정이야. 물론 그 과정을 무사히 지나가면 바이링구얼이 된다는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리스크도 분명히 있어.”


“그럼 우리 아들이 영어를 잘 배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외국에 살게 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면.”


“일단 한국 교육과정에서 멀어질수록 좋을 것 같아.”


“그건 나도 동의해.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최악인 것 같아. 나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이 영어에 엄청난 시간, 돈, 에너지를 투자하는데, 결과는... 상당히 참담해.”


“한국 교육제도, 그중에서 영어 교육 방식은 정말 내가 봐도 너무 이상해. 마치... 음악 이론을 12년 동안 가르치면 아이들이 피아노랑 바이올린을 다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해볼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음표와 화성학만 공부한다고 연주가 되겠어?


“그럼 어떻게 해야 영어나 외국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지? 어렸을 때 가서 아이와 부모 둘 다 고생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


“내가 굉장히 충격받았던 게, 북유럽, 네덜란드 애들은 외국 처음 나온 애들도 영어를 엄청 잘하더라고. 언어구조가 워낙 비슷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핀란드에서 온 애도 잘했어.”


“핀란드도 북유럽 아닌가? 핀란드가 왜?”


“나도 몰랐는데, 핀란드는 언어 구조가 오히려 우리나라 말이랑 비슷하더라고. 영어 할 때 악센트 없이 그냥 모노톤으로 말하는 것까지 우리나라랑 비슷해. 고등학교 때 핀란드에서 온 애가 있었는데, 걔는 외국 나온 게 처음인데도 영어 수업도 바로 따라가고, 말도 잘했어.”


“진짜? 핀란드어가 한국어랑 가깝다니 진짜 의외다. 근데 걔는 영어를 잘했어? 무슨 차이지?”


“제도의 차이가 크더라고. 영어를 어떻게 배우게 되었는지 물어보니까, 핀란드에서는 외국어든 모국어든 일단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학습은 오히려 좀 덜 강조된다고 하더라고. 일부 과목은 영어로 배우기 때문에,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도 바로 따라갈 수 있고. 근데 가장 충격적인 건, 따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학교에서 배웠다는 거야.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 다녔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학원’이라는 개념을 이해를 못 해서 따로 설명해야 했어.”


“진짜? 그냥 학교만 다니고? 엄청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난 한국을 볼 때마다 너무 놀랐던 게, 고등학생인 내가 봐도 공교육에만 의존해서 영어나 외국어를 배우면 힘들긴 한데, 막상 언어 습득이 안되더라고. 친구들 영어 실력은 부모님 재력에 정비례하는 게 아이의 눈에도 너무 확연하게 보였어. 근데 그렇게 해도 나중에 교환학생을 가거나, 유학을 가면 영어 때문에 엄청 힘들어해.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는 비극적이라고 생각해.”


“진짜 심각하다... 나도 돌이켜보면, 영어는 수능과 내신 과목이었지, 실제 언어로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나중에 대학 가고 나서야 알아서, 따로 돈을 써가면서 해야 했어. 진짜 한국에서 영어라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데, 개선은 안 되는 끈질긴 문제 같은 느낌이야.”


“영어를 영어라는 과목 하나로만 접근해서 그렇지 않을까? 언어라는 것은 하나의 도구잖아. 영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엄청 많이 강조되는데, 영어’로’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 교과목으로만 접근하니까, 언어 구사 역량을 배양하기보다는, 선별 도구가 되는 거지.”


“하긴, 매년 수능에서 영어가 어려웠다, 쉬웠다 이런 이야기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나오는데, 그 시험을 본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아예 안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럼 나중에 우리 아들 크면, 어떻게 영어 가르쳐야 할까?”


“영어라는 언어에 계속 자연스럽게 노출을 시키면 좋을 것 같아. 나의 경우에는 미국에 갔을 때, 텔레비전이랑 영화관이 참 도움이 많이 되었어. 만화든 영화든 보고 있으면, 엄마가 와서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자막 키고 보렴’이라고 했거든. 아직 귀가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게 도움이 꽤 되더라고. 들리지 않아도 읽어서 파악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용 자막을 틀면 동작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도 자막에 나오니까 이해가 빠르게 되더라고.”



만화든 영화든 언어에 흥미를 느끼면서 노출이 되는 게 중요해


“요즘은 영상도 많고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언어에 대한 노출은 꼭 외국을 가지 않아도 해줄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근데 학습은 어떻게 하지? 자기도 말했지만, 그냥 듣고 보는 것만으로는 언어가 느는 게 한계가 있잖아.”


“애가 커가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과목이나 주제에 흥미를 가지는지를 잘 보자. 그 분야에 영어를 접목시켜서 가르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언어라는 것은 도구고, 습득하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길을 열어주면, 시키지 않아도 할 거야. 특히 남자애들이 이런 성향이 굉장히 강해.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데, 관심이 있는 거는 어떻게 해서든 끝장을 볼 때까지 하더라고. 가령 애가 곤충을 좋아하면, 영어로 된 책도 사서 주고 하면, 놀라울 정도로 파고든대.”



물고기에 대해 궁금하면 물고기에 대한 책이든 영상이든 다 찾아봐야 할 거야


“아빠가 그렇게 해주면 우리 아들은 진짜 좋겠다. 근데 나는 어떡하지? 이미 너무 어른인데. 이제 와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음... 확실히 나이가 들면 노출에 의한 언어 습득이 더 느려지기는 해. 나도 영어는 어렸을 때 접해서 자연스럽게 배웠지만, 프랑스어는 고등학교 때 접했고, 딱 프랑스어라는 한 과목 빼고는 다 영어로 하니까, 습득도 어렵고, 익숙해지지 않고, 그리고 금방 까먹더라고.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차선책으로, 어차피 원어민처럼은 못하지만 내가 일하는 분야에 한정해서는 이 언어를 구사하자라는 것이었어. 관련 기사나 페이퍼 읽을 정도로만 하는 거지. 그 분야를 벗어나면 급격히 어려워지지만. 자기도 복직 전에 업무 관련된 분야의 콘텐츠를 영어’로’ 접하면 훨씬 습득이 빠르지 않을까?”


“오, 좋은 생각이다. 그럼 우리 일주일마다 하나씩 기사나 콘텐츠 뽑아서 읽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 어때? 좋지?”


“음... 진짜 궁금하다. 다른 부부들도 이렇게 교과과정을 운영하면서 살까?”


“우리 부부는 그래. 다른 부부가 왜 궁금해.”


“알았어. 그렇게 하자. 이왕 할 거면 계속 유지해서, 우리가 그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아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보는 대로 따라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유목민 아빠의 고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