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의 서재 Jan 14. 2022

집안일을 해야 한다

우리집 조기교육: 집안일.

2020년 초여름.



“나중에 우리 아들도 자기처럼 집안일을 잘했으면 좋겠어”


(걸레질을 하며) “내가 제일 바라는 게 그거야”


“왜?”


(씩 웃으며) “인수인계하게”


“내가 집안일을 너무 많이 시켜? 내가 할까?”


“아니, 농담이야. 그럼 자기가 지금 만삭인데 자기가 해? 내가 하면 되지.”


“근데 진짜 집안일을 잘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


(나지막이) “... 네 원사님”


“뭐라고?”


(다소곳한 말투로)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범적인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냥 단순히 청소나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습관처럼 만들어 주는 거”


“음... 나도 사실 그건 동의해. 사실 아이는 우리가 키우는 대로, 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크잖아? 우리의 의도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따라가니까.”

1년 후... 이렇게 잘 따라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난 만약 우리가 나중에 돈을 엄청 벌어도, 우리 집은 우리가 직접 치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 사람 구해도 자기 성에 안찰 것 같아서 그러지?”


(웃으며) “아 그것도 있어 사실. 근데 그거보다도 더 중요한 건 평생 가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말로 해봤자 안 들을 거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그래, 집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물론 어렸을 때야 우리가 다 해주지만, 클수록 역할을 주고 집안일 중 일부는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웃으며) “우리 부대의 복무 신조야?”


“와 복무 신조래. 자기 그러니까 진짜 무슨 군대를 최전방 현역으로 다녀온 사람 같다”


“나 현역 맞아. 우리 집처럼 힘든 부대에 어떻게 적응했겠어”

우리 집안 복무 신조: 모두가 청소를 한다. 예외는 없다.


(웃으며) “아무튼 군대든 어디든 우리 아이가 어디에 가서든 한 사람 몫은 해야 해.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있는 곳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고 내 역할을 해야 깔끔함이 유지된다’라는 생각이 있어야지.”


“우리 아기 무슨 청소 마스터로 키우려고...? 세상을 다 치울 아이인가...?”


“최소한 깔끔한 공간에 가면 ‘누군가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이곳을 치웠구나’라는 생각은 있어야지”


“그건 좋은 포인트인 것 같아. 사실 나 미국 살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애들이 용돈을 받잖아. 그게 정액제가 아니라 약간 성과수당처럼 나와.”


“무슨 말이야 그게”


“애들이 담당하는 집안일 목록이 있어. 가령 잔디 깎기, 차고 쓸기, 뒷마당 치우기 등등. 그걸 다 하면 정해진 용돈을 다 주지만, 안 하거나 대충 한 게 있으면 차감해서 주더라고”


“오... 진짜 마음에 든다 그런 거. 우리도 할까”


“일단 집안일은 협업이다라는 생각이 강해. 아빠는 거실과 다락방, 엄마는 부엌, 나는 뒷마당 이런 식으로. 미국은 대부분 가정집이 단독주택인데 가정부를 두고 사는 부잣집이 아닌 이상 집을 유지하는 게 꽤 큰 일이거든. 대부분 가정이 엄마, 아빠가 맞벌이하는데 주택까지 잘 유지하려면 애들도 집안일을 하는 게 선택이 아니기는 해. 하지만 선택할 수 있어도, 그렇게 키우는 게 난 좋다고 봐. 한국은 주로 아파트에서 사니까 마당 치울 일은 없어도, 분리수거나 이런 거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놓아야지.”


“맞아 맞아 가정교육부터 사람들 안에서 역할과 일을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 해.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냥 포시럽게 자란 사람은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결이 달라”


“포시럽게 가 뭐야?”


“포시럽다가 뭔 뜻인지 모르나? 막 어? 어? 막 어린아이 때부터 막 응석 다 받아줘가꼬 막 커서도 복에 겨워가 까탈스럽고 귀하게 커서 좀 모지리 같은 거”


“아... 그렇구나. 경상도에서는 그런 사람을 포시럽다고 하는구나”


“응 맞아. 그렇게 키우면 안 돼. 잘살든 못살든. 포시럽게 키우면 커서도 어디서 일손이 필요한지 아예 보지를 못해. 협업도 못하고. 일 시킬 수도 없어. 일머리 없는 사람한테 시키는 게 또 일이야. 다른 사람들 다 바쁜데 멀뚱멀뚱 있게 된다니까. 이게 사소한 습관이 차곡차곡 쌓여야 생기는 거거든. 그런 게 있어야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그냥 친구 집이든 바닥 더러우면 빗자루 들고, 밥 먹고 나면 그릇이라도 치우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런 사람은 최소한 어디 가서 조금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되더라고”


“돌이켜보니까, 대학교 때도 애들끼리 놀러 갔을 때 장보기든 뒤처리든 착착 잘하는 애들이 지금도 직장이든 결혼생활이든 전반적으로 수월하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집안일이랑 일머리랑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일이라는 게 사실 세부적으로 보면 되게 사소한 과업들로 이뤄져 있잖아. 목표를 정하고 세부 과업으로 나누고 순서를 정하는 훈련은 집안일부터 시작하는 거지. 연습이 안되어있는 사람들은 일처리도 오래 걸리고, 본의 아니게 민폐도 끼치게 되더라고. 가령 먼지가 가득한 바닥을 물걸레로 바로 민다던가”


“그런 면에서, 좀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아기 스스로를 위해서도 집안일은 연습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안일을 연습해놓지 않고 나중에 혼자 살면 얼마나 힘들겠어. 사소한 습관이 착착 쌓여서 습관이 되어있어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고, 밥 먹으면 설거지하고, 외출 갔다 오면 옷 정리하고. 자주는 못해도 화장실이랑 주방 정리하고. 이런 거 스스로 처리 못하면 나중에 스스로가 힘들어. 아기가 태어나서 크는 동안이야 우리랑 살지만, 얘 삶의 전체를 보면 엄마와 아빠와 같이 살 날보다는, 떨어져 살 날들이 더 많잖아. 혼자 살아도, 친구와 동거를 해도, 결혼을 해서 아내와 살아도, 집안일이 자연스럽게 처리되어야 자유롭고 편한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벌써부터 우리 아기랑 떨어져서 살 생각하는 거야?”


“평생 품고 살 수는 없잖아. 학교나 직장도 다 우리랑 살면서 다닌다고 해도, 언젠간 결혼도 할 텐데.”


(배를 만지며) “안돼. 데리고 살 거야.”


(웃으며) “조금만 크면 독립한다고 난리 칠걸?


“왜?”


“우리 자식이잖아. 집에 있으려고 할 리가 없어.”


“그러네. 그래도 아쉽다.”


“괜찮아, 나중에 커서 결혼하고 그러면 다 같이 우리 집에 모이게 하면 돼. 나 청소 끝나가는데, 마무리하고 산책 가자.”

"그래, 가자. 근데 나 부탁이 있어"


"뭔데"


(끙 소리를 내며) "나 좀 일으켜줘. 우리 아기가 못 일어나겠대."





덧.


아들에게,


아빠가 엄마랑 결혼하고 깨달은 팁 몇 가지 적어놓는다.

나중에 커서 아빠처럼 아내 고생시키지 말고, 미리 잘 배워두길 바란다.


첫째, 일단 하는 게 우선이다.

집안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계획보다는 엉성한 실행력이 훨씬 낫다. 엄마의 유전자가 강하게 나타난다면 넌 체계성을 잡으려고 할 거다. 집안일은 깊은 생각보다는 아니라 빠른 실행을 축적하는 게 우선이다. 어떻게 일을 할까 생각하다 보면, 실제 일보다도 시간을 더 쓰게 된다. 일단 하면, 답이 보인다.

둘째,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가전제품이나 청소 도구를 집에 구비해두고, 너에게 필요한 기능은 항상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면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특히 항상 쓰게 되는 청소기와 세탁기는 성능과 용량이 충분해야 한다. 화장실과 주방에서 쓰는 청소 도구는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는 것이 좋다.

셋째, 규칙적으로 하면 편해진다.

집안일의 가장 큰 적은 미루고 싶은 욕구다. 규칙성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큰 결심의 필요성을 낮춰준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면서 대충 해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 특히 빨래와 설거지는 미루지 않는 게 좋다. 집안에서 생물학적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넷째, 시행착오를 충분히 경험해봐야 잘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아빠도 결혼하고 나서 엄마에게 많은 요령을 배우면서 집안일을 조금씩 터득했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같이 하면서 새로운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너는 미리 잘 배워서, 나중에 결혼해서 아빠보다는 너의 아내를 더 편하게 해 주길 바란다. 너의 아내가 집안일을 잘 못할 수도 있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네가 얼른 끝내버리고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다섯째, 집안일이 쉬운 상태를 유지해라.

사람은 거대한 도전 하나보다는 여러 개의 사소한 문제들 앞에서 더 쉽게 포기하는 법이다. 청소할 때마다 옮기고 들어야 할 물건과 가구가 많으면 청소라는 과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귀찮아서 일을 미루기 마련이다. 가구를 새로 들이거나, 수납공간을 배치할 때, 네가 집안일을 하기에 편한 방식으로 유지해야 집안일이 편해진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쉬운 구조를 따르게 해야 완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결혼했다면, 아내가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해라. 그게 너도 편할 거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집안일만 하지는 말거라. 집안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너의 공간에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끔은 좀 지저분하고 산만해도, 그냥 쉬어야 할 때가 있고, 그럴 때는 그냥 쉬어도 괜찮다. 깔끔하고 깨끗한 집에서 쉬면 좋겠지만, 집안일이 강박이 되면 넌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집에서 노동을 하게 된다.


옳지, 옳지 잘한다. 그렇게 청소기랑 친해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