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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Jan 15. 2022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이유

영상의 시대의 살게 될 너를 위해

2018년 여름.



“이쪽 벽은 어떻게 할까? 요즘 집에는 아예 벽 하나가 텔레비전을 걸어 놓을 수 있게 나오네.”


“사실 난 텔레비전을 안 봐서... 그냥 텔레비전을 놓지 말까?”


“근데 우리도 언젠간 텔레비전을 놓고 싶어지지 않으려나? 사실 텔레비전을 안 보는 집은 있어도 없는 집은 드물잖아.”


“글쎄, 사실 우리가 보는 것들 중에 텔레비전으로 봐야 하는 것들이 있나? 공중파나 케이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우리가 사실 고정적으로 보는 프로그램도 없어. 주로 스트리밍으로 보니까”


“응 난 사실 그게 좋더라고. 고정된 시간에 꼭 내가 그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게 싫어. 내 자유가 박탈되는 느낌이야. 내가 원할 때 보고 싶어.”


“자기 드라마 하나 시작하면 시즌 단위로 보잖아.”


(큰 소리로) “그러니까! 얼마나 답답해. 일주일에 하나씩 보는 거 못 참겠어! 안 보고 말지”


“하긴 안 그래도 몰아서 보는데, 텔레비전에 소파까지 있으면 완전히 고정되어서 보겠다. 우리가 자주 보지는 않지만 한번 보면 늦게까지도 보잖아.”


“사실 내가 이런 면이 있어서 더 텔레비전 놓기가 싫어. 사실 요즘 스마트 텔레비전이 태블릿이나 휴대전화와 비교해도 딱히 다를 건 없거든? 근데 텔레비전이 훨씬 더 끄기가 힘들어. 핸드폰은 뭐 보다가도 하물며 메시지라도 뜨면 보던 거 몇 초라도 멈추게 되는데, 화면 큰 게 집에 떡하니 있으면 그걸 어느 순간 멍하니 보고 있게 되더라고.”


(책 더미를 가리키며)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진화생물학자가 쓴 책인데, 사람이 수십만 년 동안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실내 공간을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더라고. 원래 돌아다녀야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게 자연스러운 상태로 유전자에 박혀있는데, 집안에 들어와서는 뭔가 시각적인 변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거라고 하더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튼 텔레비전이 있으면 딱히 보지도 않으면서 켜놓는 시간이 많아져. 딱히 뭐 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니고. 멍한 상태가 자연스러운 공간은 만들어내지 말자.”


“근데 우리가 아예 영상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상을 안 보는 건 아니잖아. 같이 영화도 보고 그러고 싶은데. 귤 까먹으면서.”


“그럴 때는 태블릿으로 같이 보거나, 아니면 나중에 방 하나에 프로젝터나 대형 모니터를 놓자. 영화를 볼 때는 영화만 보고, 그 방에서 나와야지, 틀어놓고 있으면 또 멍해져.”


“그러네 맞아. 우리가 딱히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는 않지만, 막상 놓으면 계속 틀어진 상태로 있을 거야. 나중에 우리가 그러는 모습을 우리 아기가 보면 안 되잖아.”


“자기가 마침 아기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데, 사실 난 나중에 우리가 아기를 낳아서 키울 때를 생각해서 텔레비전을 놓기 싫어. 다른 아이들도 다 보는데 우리 아이만 안 봐서 잘 못 섞일까 걱정도 되긴 하거든? 아이들도 만화든 뭐든 공통의 주제가 있아야 서로 이야기도 하고 친해지고 그러니까. 하지만 친구 집에 가서 보는 한이 있어도 우리 집에서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아기 발달에도 안 좋을 것 같고, 영상이 중독성도 높아서 걱정도 되고. 내가 너무 유난인가? 사실 대부분 집에 텔레비전이 있는데, 그런 집들이 다 나쁜 부모인 건 절대 아니잖아”


“응, 맞아, 집에 텔레비전이 있고 없고는 사실 선택이고, 둘 중 하나만 옳다고 보기는 어려워. 나도 사실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 - 내가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애까지 안 보게 하는 건 아닌가? 결국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실 우리 무덤을 파는 거고. 영상 조금 보여주면 잠깐이라도 편할 수 있는데, 그 선택지를 닫아버리는 거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영상은 한번 시작한 이상 노출을 줄이기가 극도로 어려워. 아이들은 어릴수록 자제력이 다 발달되지 않은 상태니까, 영상이라는 자극적인 매체를 보면 계속 보게 돼. 그렇게 되면, 영상 외에는 다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어. 그러면 결국 영상 말고는 달랠 방법이 없어져버려. 그럼 또 영상을 봐야 하는 악순환이 되잖아. 그리고... 난 사실 조금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 생각했을 때, 텔레비전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우리 아이가 나중에 크면 영상을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문해력만큼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텔레비전 노출을 최소화시켜주고 싶어.”

영상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장난감을 주고 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나 몇 년 전에 회사에서 방송사와 공동 기획하는 다큐멘터리 촬영 담당했었잖아. 그때 담당 피디 님하고 친해져서 스튜디오도 가서 작업 같이 하고 그랬거든. 근데 작업실에 책이 가득한 거야.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벽 하나가 다 책이야. 그것도 몇 겹으로.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보시냐고 하니까, 읽지 않으면 영상도 생각이 안 난대. 찍고 편집하는 건 몰라도,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책을 봐야 생각난다는 거야. 그것도 엄청 다양하게 읽어야지, 안 그러면 새로운 형태의 영상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대. 같이 일하시는 작가님 한분은 아예 핸드폰도 폴더블로 유지하시더라고. 다큐멘터리 작가인데 말이야. 영상을 위한 글을 쓰는데, 영상을 보면 자기 글이 마른다고.”


“그게 아기 키우는 거랑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줘.”


“아기가 어렸을 때부터 영상을 보고 책을 안 보면, 오히려 시각화하는 능력이 저하될 것 같아.”


“그럴 수가 있나? 그래도 좀 봐야 영상도 잘 이해하고 만들고 그러지 않을까?”


“영상이라는 게 전달력이 극대화된 매체잖아. 보고 이해하는 건 노출을 조금만 해주면 금방 하더라고. 근데 영상이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어떤 스토리나 아이디어를 그려보는 건 다른 문제야.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잘되게 하는 건 문해력이 기반이 되어야 해. 영상을 보는 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아무리 많이 봐도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쌓이는 건 없거든. 근데 책은 아니야. 작가가 써준 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주인공이 어떤 모습일지, 이 장면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건 독자 몫이거든.”


(장난스럽게) “영상은 수동적으로 보고, 책은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읽는다는 말이지? 그걸 그렇게 길게 말한 거야?”


(웃으며) “사실 자기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증명해줬어. 자기는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걸 축약하고, 핵심을 골라서 이해해서 재구성했잖아? 그건 우리가 대화를 하면서 내 말을 자기가 들어서 가능했던 거야. 상호작용을 하니까 내가 말할 때 자기도 머리를 쓰는 거지. 만약 내가 하는 말을 녹화해서 영상으로 틀어줬다면 어땠을까?”


“음... 그냥 넘겼겠지”


“그렇지? 맞아. 채널을 바꾸거나, 앞으로 넘기거나, 다른 걸 보기 시작하거나. 하지만 끄거나,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


“그럴 것 같기는 해. 자기 말을 듣고 보니까, 우리가 왜 텔레비전을 놓으면 안 되는지 더 명확해진다. 만화나 영화 같은 콘텐츠를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영상만 보고 앉아있는 시간이 늘수록 수동적으로 있는 상태가 늘어.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진짜 바깥세상이랑 단절될 것 같아.”


“맞아 현실세계에서의 상호작용이 진짜 중요해. 텔레비전을 봐도, 텔레비전을 같이 보고, 잘 시간이 되면 끄고, 가족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보는 건 사실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막상 텔레비전이 벽 하나를 차지하면 그게 될까 싶어. 그냥 가족 공용 스탠드가 되지 않을까? 텔레비전을 그냥 틀어져있는 거고, 계속 영상이 재생되면서 각자 태블릿이나 휴대전화로 이거 저거 본단 말이지. 이런 식으로 보내는 시간이 우리 가족은 최소화되었으면 좋겠어.”


“근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나중에 아기를 낳아도 이런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생 영상이나 텔레비전 안보여주고 어디 은둔자처럼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야.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유아기 때는 되도록 노출을 아예 하지 말고, 나중에 좀 커서도 딱 정해진 시간만큼만 보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유아기 때는 왜?”


“내가 저번에 서울 출장 갔을 때, 표가 없어서 유아 동반석이 있는 칸에 탔거든. 되게 시끄러운 아기가 있었는데, 핸드폰 영상 틀어주니까 진짜 조용해지는 거야.”


“좋은 거 아니야?”


“오송역에서 서울역까지 액정에서 눈을 안 떼더라고. 영상이라는 게 사실 작정하고 보게 하려고 만든 콘텐츠라, 어렸을 때는 특히 너무 많이 보여주면 다른 건 다 재미없어질 것 같아. 열차에서 본 아이가 서울역에 내려서 놀이공원에 갔어도, 중간에 보던 영상 끊어버리면 울지 않았을까 싶어. 그 생각이 드니까 아찔하더라고.”


“나도 자기 생각이랑 정말 동의해. 근데, 우리만 그러는 거 아닐까? 다른 집에서는 애들 다 영상이나 텔레비전 보여주면서 키우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여주면 좀 친구 만들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게 좀 걱정이기는 해.”


“아예 차단시켜버리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친구 집에 가서 보는 것도 괜찮고, 집에서도 괜찮은데, 사용하는 기기가 텔레비전이면 자제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항상 켜져 있을 수 있잖아. 제한성이 있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친구 집에서 오면 언젠간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집에서 봐도 뭔가 편하게 계속 틀어놓지 않는 방식으로 보게 해 주는 거지.”


“그렇기는 하네. 근데 아예 안 보여줄 수는 없고... 언제부터 노출을 해주고 어떻게 조절시키지?”


“이 벽 쪽에 텔레비전 대신 큼지막한 모니터 달린 컴퓨터를 놔주자. 절대 내가 특정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가 해상도도 좋고 인테리어 소품만큼 디자인도 완벽하기 때문은 아니고, 요즘 웬만한 건 꼭 텔레비전이 없어도 보는 데는 문제없으니까. 소파나 바닥에 누워서 볼 수 있는 화면이 아니라, 앉아야 볼 수 있는 화면으로 놓아주고, 규칙을 정하는 거지. 혼자 보지 않고, 거실에서만 보고, 제한된 시간만 보도록. 그래야지 너무 폭력적이거나 야한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고, 그런 걸 본다고 해도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옆에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그럼 그렇게 하자. 난 사실 텔레비전을 놓으면, 다들 그냥 화면을 보게 되어서 대화가 단절되는 게 싫어. 특히 밥 먹을 때, 서로 대화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 이야기하거나, 재미있는 이슈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집안에서 아기를 키우고 싶어. 자기도 꼭 동참했으면 좋겠고. 근데 우리 아직 해결 못한 문제가 있어.”


“뭔데?”


“이 벽에다 뭐 놓지?”


“음... 책장을 큰 거 사서 놓을까? 그리고 우리 긴 테이블을 옆에 두자. 밥 먹을 때는 식탁으로 쓰고, 평소에는 큰 서재처럼 쓰자. 우리도 책이 옆에 있어야 보지.”

나중에 다시 이렇게 꾸며줄게.


“너무 좋다. 하긴 자기 책 다 놓으려면 거실 벽면 말고는 답이 안 나오기는 해. 근데 그러면 부엌이랑 식탁이 너무 멀어지지 않나?”

(웃으며) “우리 집이 그 정도로 넓진 않아... 딱 세 걸음 정도 멀어지는 건데 뭐.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식탁이랑 주방은 한 공간에 붙이고, 서재는 아예 방 하나를 지정해야지. 그리고 엄청 큰 책장 놓을 거야. 막 몇 겹씩 포개져있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야 하는 걸로.”


“어이구 그러세요? 돈 많이 버셔야겠네! 일단 저 책부터 포장 푸세요. 내가 보기엔 저 책만 다 정리해도 한나절이다 지금.”




덧.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나눈 대화의 결과로 인해, 우리 집에는 아직 텔레비전이 없다. 대신 네가 조금 더 크면, 거실에 데스크톱 컴퓨터는 놓아줄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왜 컴퓨터는 있는데 텔레비전은 없는지 따지겠지.


데스크톱 컴퓨터는 누워서 못한다. 켜놓고 딴짓도 못하지. 어떤 목적을 위해 켰으면, 그 목적이 충족되면 끄자. 끄고 나서는 다른 활동을 하고 놀았으면 좋겠다.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활동이면 다 괜찮다. 아빠는 개인적으로 그 시간에 여자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줄게.


거실에 있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을 서로 모니터링하고,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서로 자제시키기 위해서다. 엄마와 아빠도 똑같이 영상이나 전자기기에 노출될수록 더 보고 싶을 테니까, 우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도 영상을 보는 만큼 너와 대화할 시간이 준다. 가족이라고 저절로 친해지고, 저절로 서로를 알아가지 않는다. 서로 노력해야지. 그리고 그 노력이 가장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게 아빠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회사의 컴퓨터를 살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엄마하고도 이야기 다 했다.


식물도, 아이도, 햇빛을 더 보고 자라면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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