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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Jun 03. 2022

학벌이라는 신기루

특별한 아이와 평범한 아이

특별한 아이


임신을 하고 출산하기까지 마음을 졸이며 아이를 기다렸다. 입체 초음파 같은 옵션으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40주를 기다려 아이를 품에 안았다. 어떤 선택이 아이에게 가장 좋을지를 고민하며 모유와 분유로 언쟁을 벌이고 기저귀의 유해성과 물티슈 브랜드를 두고 갈등을 한다. 유모차도 카시트도 최고 브랜드로 구입했다. 맘카페에서 나오는 월령별 발달사항에 맞는 장난감을 시기별로 구입하며 행여라도 내 아이가 남들보다 발달이 느린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아이의 소중한 일상을 기록한 성장앨범을 제작하고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다녔다. 캠핑도 하고 지역 축제도 다녔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시대니까. 나의 특별한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경험했으면 해서 아이를 위한 검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영어 학원(영어 유치원)과 일반 유치원을 두고 고민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영어 학원을 선택했다. 한글 이름과 비슷한 발음의 영어 이름 '제이미'로 불리게 된 아이는 명문학교 휘장을 단 것처럼 보이는 원복을 입고 스쿨버스에 올라 등원을 한다. 너무 자랑스럽다.


초등 입학을 앞둔 만 5세에는 아무래도 진학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초3부터 시작하는 영어는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다른 과목이 걱정이다. AR, SR, Lexile 지수는 또래보다 빠른 편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 이대로만 잘해주면 수능까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 잘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뒤떨어지는 것이 있으면 곤란하지 뭐든 평균 정도는 맞춰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학과 국어는 방문학습지를 신청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고 하니 미리 준비를 해두면 아이가 학교에서 기죽을 일은 없지 싶다. 초등 수학은 연산이 중요하니 꾸준히 연습해서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줄넘기 특훈을 해준다는 태권도 학원을 등록했다. 체육 평가 활동을 줄넘기를 한다고 하니 미리 해둘 필요가 있겠지. 사립초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려면 악기 하나 정도는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하니 하나 정도는 해야 할 텐데 피아노는 너무 흔하고 들고 다닐 수 없어서 불편하다. 바이올린은 너무 많이 하고 있으니 분명히 선발시험에서 밀릴 것 같다. 그래 클라리넷으로 하자.


사립초 추첨에서 떨어졌다. 믿을 수가 없다. 괜찮은 집 아이들은 다 합격인데 어떻게 우리 아이만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미리 짠 것이 아닐까. 자존심 상하고 속상하지만 어중이떠중이 다 모여있는 공립초에 귀한 아이를 보내야 한다. 기분 나쁘지만 그만큼 상을 받거나 돋보일 상황도 많을 것이니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입학하고 처음 배우는 것이 줄긋기다. 이미 받아쓰기 연습까지 다 했는데 크레파스로 선긋기 연습이라니 어이가 없다. 남는 시간에 다음 학년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4 성적이 대학 성적이라고들 하는데 그만큼 초4가 힘들다는 말이겠지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


연산은 곱셈까지 끝냈는데 아직도 두 자릿수 더하기를 하고 있다니. 이러니 공교육이 욕을 먹는 것이다. 수준별 학습이 중요한데 똑똑한 아이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한심하다. 사교육 종사자들 세미나라도 열어서 공교육이 좀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 전문가한테 수채화를 배웠는데 학교 미술시간에는 자꾸 이상한 것만 한다. 종이접기를 하고 뉴욕의 휠체어 마크 디자인을 배운다. 보고 그리는 정물이나 할 것이지 뭘 자꾸 상상하라고 해서 애가 짜증을 낸다.


클라리넷을 2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자랑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 지급한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그리고 칼림바로 연주를 하고 학급 영상을 만든다. 졸업하면 어디 쓸데도 없는 시시한 악기들로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게 짜증 난다. 외부에서 상을 받았는데 학교장이 전달해주지도 않는다. 3학년 때부터 수영을 한다고 해서 배접평자를 선수 출신 코치 붙여서 가르쳤는데 개헤엄 같은 거나 한다. 세금을 이따위로 낭비하다니 화가 날 지경이다.  


시험 점수도 없고 국어 시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시시한 동화책이나 보며 유치한 독서록이나 쓰게 하는 수준 낮은 학교에 집중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대학 진학이 중요하니 이런 쓸데없는 과정은 다 무시하고 진도나 나가야겠다.


오죽하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을까 싶은데 학교 방과후 활동에 돈 쓰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뭐든 배우려면 제대로 학원에서 배워야지 맛보기 방과후로 시간낭비를 하는 게 안타깝다. 교육청이나 구청에서 진행하는 활동도 모두 단발성일 뿐이다. 하려면 진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게 교육이지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리기만 하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내 아이는 스카이는 어렵더라도 인서울은 무난하게 갈 수 있을 실력인데 아직 전공을 못 잡았을 뿐 모든 부분에서 상위권이다. 이런 아이들을 뒷받침해서 최상위권으로 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공교육에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중학교 1년은 버리는 과정이니 수능 영어 끝내고 중2부터는 수학에 집중하자. 우리 애는 수학 머리가 나쁘진 않는데 실수로 꼭 몇 문제는 놓친다. 어려운 건 잘 풀면서 사소한 연산에서 자꾸 틀리니 본인도 답답하겠지. 이것만 고치면 전국형 자사고도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전국형 자사고는 떨어졌지만 강남 8 학군으로 왔으니 내신만 제대로 받으면 '서성한이중경외시'중에서 골라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스카이보다 과가 중요하니까 학교는 좀 떨어져도 과가 유망하면 취업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재수를 결정했다. 지난번에는 컨설팅 비용으로 삼백만 원만 써서 제대로 못 했던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유명한 컨설턴트 예약했으니 이번엔 잘 되면 좋겠다. 3년 동안 매달 들어간 인강 비용을 따져보니 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일타 강사들 수업이 중요하다고 해서 인강 업체 3곳 강좌를 수강했더니 이 정도 나왔네. 그래도 괜찮아. 애 인생 생각하면 지금까지 쓴 돈은 아무것도 아니지 뭐.


대학까지 보내 놨는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아이라니 답답하다. 성인이면 이제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할 텐데 아직 전공에 마음도 못 붙여서 걱정이다. 문과보다는 이과, 이과 중에서도 수리통계를 해야 취업이 잘 되는데 엄마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 엄한 과를 기웃거리며 전과 이야기나 하고 있네. 자격증이랑 영어 좀 해놔야 대기업 입사가 수월할 텐데 언제 정신 차리나 모르겠다.


이번 회사도 1 다니더니 그만뒀다. 경력직으로 좋은 회사 가려면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자꾸 높은 데만 바라보며 만족을 못하니 오래 버티질 못한다. 첫술에 배부를  없는데 쟤는 누구 닮아서 저렇게 눈이 높은지 모르겠다.  힘든 직장이 어디 있다고. 애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창업이나 하게 할까. 기본 머리는 있으니까 하면 잘할  같은데 없는 부모 밑에서 시대까지 잘못 타고나서 고생하고 있는  보니 불쌍하다.  팔고 대학 등록금이랑 어학연수비  다음 남은 금액이 있는데 모아서 줘야겠다. 얘가 성공해야 우리 노후도 좋은 거니 노후자금을 투자하는  치고 아이한테 주고 응원해야지.


우리 아이가 뭘 좋아했더라. 아이가 요리를 참 좋아했는데 스타 셰프 될 기량이 없어 보여서 못하게 말렸었지.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할까. 아냐 그래 봤자 길가에 널린 식당 요리사 밖에 더 되겠어? 아 그래. 수영도 참 좋아했었지. 소체에서 순위 안에 들 성적은 아니라서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했는데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어땠기는 그저 그런 체육센터 비정규직 수영강사나 하고 있겠지. OO학과로 전과하고 싶다고 했는데 돈이 안 된다고 뜯어말렸던 적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졸업했으면 지금보다는 정을 붙이고 살았을까? 아냐, 그럴 리가. 수학 싫어하긴 했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수리 통계 전공자인 지금이 훨씬 나아.


회사 경력 2년 중 이직이 3번이지만 그래도 전공이 워낙 좋으니까.

지금이 훨씬 좋은 상황인 것 맞겠지?


평범한 아이


내 아이는 사회적으로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이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보니 큰 욕심이 없다. 그저 성적과 연봉이 비례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학벌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 굶지 않고 살아갈 방도를 깊게 생각하는 복잡한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공식처럼 준비하는 대학입시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과정을 필요할 때 이용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목적이 대학이나 취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입시가 인생의 끝도 아닌데 가장 찬란한 시기를 우울하게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서서 이기는 것보다는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승패에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낙오자로 살아갈까 봐 두려워하는 대신 넓게 보고 멀리 보며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면 좋겠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나누는 기쁨을 느끼고 살면 좋겠다.


세상은 원래 고단하고 힘든 일 투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살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도전은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가진 것이 없다고 좌절하지 않고 가진 것이 많다고 자만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살아가렴. 내가 너를 응원할게. 교육이 입시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너의 인생을 존중하며 부모의 자리를 지킬게. 네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간에 너를 도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함부로 실패한 인생이라 폄하하지 않을게.

평범한 너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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