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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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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Aug 01. 2022

어느 알파 세대의 고민

망가진 지구에서의 삶이 두려운 아이에게



엄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늘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둘째 아이가 자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망가지고 있는 지구가 50년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 더 덥고 더러워질 텐데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있을 것 같아서 60살이 되기 전에 그냥 다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과자를 사 먹을 때마다 과자 쓰레기가 지구를 더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을 원망했다. 무엇이 잘못인 줄 몰랐는데 죄를 짓게 만든 상황이 싫다고 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할 것 같아 한 달에 딱 한 번만 과자를 먹고 무포장 과자를 구매하기 위해 과자통을 들고 다니고 텀블러를 사용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회용품은 넘쳐나고 도시는 매일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후 아홉 시 광화문과 정동 일대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골목마다 불을 밝게 켜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꼭 필요한 공사인지 물었다. 광화문 광장 개장 시기가 임박하자 이상할 정도로 인근 도로 보수 공사가 많아졌기 때문에 필요에 의한 것인지 미관을 위해 아직 쓸만한 보도블록을 더 예쁘게 보일 목적으로 교체하는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없어 말을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는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 영화 '월 E'를 본 아이는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도시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차가 없었더라면, 인간이 기계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달라졌을까. 아니 애초에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땠겠냐며 물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쓰레기는 어딘가에 계속 쌓이고 있고 언젠가는 꽉꽉 차올라 영화 속 장면처럼 아파트 높이만큼 쓰레기가 쌓일 것 같은데 그래도 인간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거냐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인간이 환경오염의 원인인데 나는 나중에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더 늦게 태어난 우리는 쓰레기를 제일 조금 만들었을 텐데 더 많은 오염물질을 떠안고 살아야 하잖아.
엄마가 죽은 다음의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망쳐놓은 사람들이 다 사라진 지구에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해?



억울한 알파 세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데 인간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나는 너와 만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니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겠지. 인간으로 함께 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진 않아. 눈을 먹어도 괜찮았던 할머니의 시대나 마스크 없이 성장기를 보냈던 엄마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부러워한다고 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잖아. 네가 속한 세대의 시대는 더 많은 걱정과 쓰레기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넌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알파 세대니까.


10년 뒤에 어른이 된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멋진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 믿어. 네가 지구를 위해 노력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지구를 덜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어른들도 너희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어. 너희가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친환경 기술 개발에 열심인 과학자들이 있어. 닥쳐올 기후 위기로 슬픔을 느끼거나 우울할 사람들을 위해 위로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고 말이야. 

사람들은 달라지고 있어. 환경이 나빠지는 속도와 사람들이 변하고 실천하는 속도 중 어떤 것이 더 빠를지 우리는 아직 몰라. 하지만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해. 언젠가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그때가 언제일지 정확히 알지 못해. 그래서 많이 불안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직 닥쳐오지 않은 인류의 멸망을 걱정하며 네 삶을 포기해버리면 엄마는 무척 슬퍼질 거야. 넌 더 좋은 선택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으니까 그 권리를 너무 쉽게 내려놓지는 말아줘. 


엄마, 우리 반에 집에서 대체 고기를 먹는 친구가 생겼어. 이런 것도 변화야?


그럼 아주 큰 변화야.


우리는 세종대로에 서서 불이 꺼져 있는 건물이 몇 개나 있는지 살펴보았다. 열대야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보며 지금 이 순간 아껴지고 있을 전기에너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전기에너지를 덜 생산하게 되면 화력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 발전도 줄어들 테고 어쩌면 너는 꽤 괜찮은 세상에서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삼성이나 애플 같은 큰 회사들이 재활용품을 이용해 새로운 가전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전기차 폐배터리도 재활용하는 기술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눈에 보이는 위기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없는 취급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자원을 함부로 써댔던 우리 세대와 알파 세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아이들은 탄소발자국이나 기후 위기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왜 우유팩이나 테트라팩을 집 앞 분리수거장이 아닌 전용 수거함이나 제로 웨이스트 마켓에 가져다줘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린 워싱 개념도 더 빨리 습득하고 있기 때문에 MZ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청년들보다 더 현명하고 지구에 도움을 주는 소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알파 세대가 낳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분명히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괜찮은 사람들로 자랄 것이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재활용하는 삶이 풍요롭고 낭비가 심했던 삶보다 더 가치 있고 행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랄 너의 미래를, 알파 세대의 지구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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