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군 청소년의 코로나19 감염기
여름 계절학기를 마치고 집과 도서관만 다니던 중학생 아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고위험군 청소년 집단에 속한 아이의 감염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 만13세, 고위험군 청소년
신생아 때는 호흡기 질환으로 인큐베이터 생활을 했고 유아기에는 극심한 아토피로 고생했다. 삼나무 화분을 비롯한 다양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으며 알 수 없는 화학물질에 의한 급성 발진을 1년에 1-2회 정도 겪는다. 2019년에는 마이크로플라즈마 폐렴으로 7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고 약 2달 동안 통원 치료를 했다. 2019년 12월부터 천식 증세가 나타나 로컬 병원 진료를 시작했으며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2020년 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3차 병원 진료를 받았다. 학교에서는 고위험군 학생으로 분류되어 정기적으로 양호교사와 보건소의 전화를 받고 건강 상태를 알려줬다.
코로나19 청소년 백신 접종을 시작하자마자 접종 예약을 했고 1차 21년 11월 08일, 2차 21년 12월 14일, 3차 22년 03월 25일에 주사를 맞았다. 성인에 비해 1/3에 해당하는 양을 맞기 때문에 큰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줄이고 보호자의 불안을 낮추는 효과가 더 큰 편이라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다. 백신 부작용이 코로나19 감염보다 아이에게 덜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예방 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성장 주기마다 맞아야 하는 국가필수 예방접종은 모두 했고 독감백신도 매년 맞고 있다. 그리고 2022년 8월 2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3차 접종일로부터 2주 지난 시점은 4월 8일이었으니 백신으로 인한 면역력을 확보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시기부터 117일이 지난 8월 2일에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백신 효력 기간은 180일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효과 반감은 60-90일 정도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미 감염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었다고 판단하고 생활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하게 감염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교회 수련회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는 슬퍼했지만 말이다.
■ 증상
8월 1일 아이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도서관 냉방으로 인한 온도차 알레르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1일 4-5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8월 2일 아침부터 기운이 없고 얼굴에 열감이 있으며 목이 아프다는 말을 했을 때 온 집을 소독한 후 인근 소아과로 가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아이는 격리 조치하였고 식기구와 침구를 세척하고 소독하였다.
아이가 말하는 증상은 잘 알려진 코로나19 감염 증상과는 많이 달랐다. 콧물이 났고 이튿날부터 기침을 했다. 열은 있지만 고열은 아니었고 후각이나 미각 상실도 없었다. 만약 내가 [시리즈 - 감염병X의 시대]를 읽지 않았더라면, 특히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증상에 관한 집현네트워크의 글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흔한 감기와 비슷했던 증상을 코로나19로 의심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코로나19의 대표 증상으로 알려진 것들이 임상학적으로는 대부분 절반 혹은 그 이하의 비율을 차지하는 증상일 뿐이며 '진료 현상에서 일하는 임상의 입장에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다'는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후각상실 또는 미각상실을 경험한 코로나19 환자는 15.3%다. 후각과 미각상실을 동시에 겪은 환자가 52%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후각상실, 미각상실 순이다. 특히, 성별로는 여성에게 흔하고, 연령대는 20~39세에서 흔하게 나타났으며 증상도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시리즈 - 감염병X의 시대] 후각상실부터 후유증까지...임상의사가 본 미해결 문제들
■ 가족 감염
현재까지 가족 감염은 없는 상태다. 가장 최근에 백신을 맞은 둘째 아이의 경우 21년 5월 26일에 2차 접종을 완료한 상태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행히 격리가 가능한 상황이라 질병관리청의 '확진자 및 동거인 안내문'에 나와있는 권고사항에 따라 각자의 영역에서 생활하며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 운 좋은 가족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등장했던 2020년 1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이 코로나19를 잘 피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언제 어디에서 걸릴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운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불안감을 낮추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늘 생각했다.
엄마인 내가 덜 불안해야 가족들도 안정감 있게 생활을 이어 나갈 텐데 불안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했고 나의 믿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진짜 믿을 수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던 코로나19 초창기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실시간 공개 정보였다.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누리집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모든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다. 설명이 모호하거나 납득이 어려운 부분은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international-travel에 올라온 자료들을 보며 도움을 받았다. 동아사이언스의 '코로나19 기억의 저장소'를 통해 감염병 시대의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얼룩소 시리즈의 코로나19 관련 글과 장영욱 님의 글을 통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국가연구기관과 병원 연구팀이 발표하는 코로나19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운이 좋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바라보기'였다.
어떤 사람들의 마스크 사재기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정부는 마스크 배급제를 실시했고 학교는 세금으로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제공했다. 덕분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던 시기에도 안전하게 외출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증가하던 시기에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을 수입해 전 국민이 부족함 없이 접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과거에는 유료였던 박씨그리프테트라주를 정부가 무료화하여 우리 집 어린이들도 무상으로 4가 독감 예방 접종을 할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애써주신 학교와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코로나19 확진 학생들에도 불구하고 교내 전파는 거의 없었다.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둘째 아이가 다니던 학원은 정부 방침에 따라 공부 대신 학생들의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고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배우자의 회사는 업무 특성상 재택이 어려웠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아프면 쉴 수 있게 업무 일정을 조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회사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접촉자로 분류된 직원들은 임시 재택을 하거나 격리된 장소에서 업무를 보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추가 감염자로 확인이 된 경우 재택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금전적 손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건강을 우선시한 회사의 결정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국가를 포함하여 우리 가족과 연결된 수많은 집단과 사람들의 배려와 노력 덕분에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식구 한 명이 확진을 받은 지금도 큰 두려움 없이 건강에 신경 쓰며 지내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13년 동안 아토피와 알레르기, 호흡기 관련 질환을 품고 살아온 나의 아이가 그저 감기 증상처럼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국가 필수 예방 접종과 독감 백신을 꾸준히 맞았기 때문인지 코로나19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호흡기 관련 질환으로 병원의 추적 조사를 받던 아이의 면역 시스템이 기민하게 반응하여 증상이 약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감염 이틀째부터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진 상태지만 코로나19 후유증이 어떤 식으로 아이 인생에 나타나거나 향후 다른 전염병이나 질환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사망할 수 있었을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 코로나19 증상이 심각해서 중증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 논란이 컸던 초기 방역 체계가 아닌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진 지금 감염되어 상대적으로 편하게 치료 기간을 가질 수 있게 된 점들을 생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우리 아이의 운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 운 좋은 사회
아프면 쉴 수 있는 직장은 불가피하게 재택근무를 신청하더라도 오후 6시 이후에는 회사 시스템 접속을 차단해 추가 근무를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아마 배우자는 감염되더라도 고통을 참아가며 출근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병에 걸렸을 때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덜 아픈 행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사립초등학교 경쟁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유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처가 빨랐기 때문이라는데 주변 유명 사립초들을 둘러보면 그 '대처'라는 것이 학습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았다. 공부를 우위에 두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은 대처일까. 학생들이 아프거나 아플 수 있는 상황에서 학습에 대한 부담을 주는 대신 학생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편하게 쉴 수 있는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아파서 쉰 학생들에게 재학습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교라면 어떤 전염병 상황에서도 운 좋은 학생들의 수는 많아질 것이다. 아픈 상황에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학습 계획을 짜는 학교보다는 아팠던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가 우리에겐 더 절실하다.
아프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건 정책을 펼치는 나라의 국민은 쉬는 기간 동안 돈이나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상황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파서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운신이 어려운 몸으로 해야 할 일을 줄일 수 있으니 고통 경감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아픔을 참아가며 일하는 것은 미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일의 성패가 노력이 아닌 운에 달려있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어깨에 힘이 빠지는 내용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노력만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운이 좋기를 바란다. 국가의 정책과 사회 전반의 배려와 노력이 합쳐진다면 개인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좋은 운을 타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야 말로 개인의 노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테니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운이 나쁜 상황이 줄어들면 운 나쁜 사람들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운 좋은 상황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운 좋은 사람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재수가 없어서 수학여행을 가다 배가 가라앉아 수백 명이 사망하고 불운해서 병가도 주지 않는 회사에 다니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보다는 모두에게 골고루 행운이 전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