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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Sep 13. 2022

사회는 원래 사람의 구역

노키즈존보다 더 중요한 문제

휴먼존


오원 장승업의 생가터로 추정하는 장소에 아주 오래된 한옥이 있었다. 100년 정도 되는 한옥을 개조하여 찻집을 만들었고 서울 추천 데이트 코스에 올라있을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아이들이 유아였던 시절부터 오며 가며 들르던 곳인데 2019년에 아이들의 친구들과 함께 단체로 방문했었다. 유모차 끌고 다니던 시절부터 다니던 곳이라 좋은 기억에 친구들을 데리고 갔었다. 엄마가 일곱 명,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치원생이 아홉 명이었다.


뭐라고 한 사람은 없지만 어린이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축된 분위기로 들어갔는데 직원들은 평소처럼 인사하고 주문을 받았다. 아이들이 거울과 생화로 장식한 찻집을 구경하며 너무 돌아다니길래 우리는 야외 테이블과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사과차를 주문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비가 싫다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예의 주시하며 밖에 머물렀다. 직원이 갑자기 밖으로 나오길래 어린이들 중 한 명이 사고를 쳤나 싶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비바람을 막아줄 차양을 설치하고 다시 들어갔다.


직원들은 어린이들이 웃거나 말거나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 무관심이 어찌나 고맙던지 우리 일행은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장님도 직원분들도 절대 모르시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단골이 되었다. 음료만 주문하면 똑같은 사람대접을 하는 곳에서 어린이들은 차를 마시며 성장했다. 그리고 인스타 감성 사진 촬영을 즐기는 청소년이 되었다. 오미자 에이드가 든 유리잔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들고 오고 음료는 끈적하기 때문에 손에 묻히거나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거울이 많은 좁은 장소에서 뛰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누구라도 돈을 주고 음료와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는 것과 타인의 음료를 마실 권리와 대여한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어린이들은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이용하며 만 13세 미만 미성년자들은 부모 동반 입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노키즈존은 사실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를 차별하는 행위라는 것을 어린이들은 이제 알고 있다.


노키즈존


얼마 전 새로 생긴 찻집에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직원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노키즈존이세요.’ 


들을 때마다 적응 안 되는 의인법에 당황할 틈도 없이 파운드케이크와 마들렌 그리고 음료를 파는 이곳이 어린이 입장 불가라는 말을 듣고 술집을 잘못 보고 들어온 것인지 고민했다.


‘지금 저 가게 우리 차별한 거야?’

'우리가 어린이라서 문제가 된 거야?'


어린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잠재적 문제아동 취급을 받았다며 불쾌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분히 의도한 결과다.


성인시설이 아니라면 입장 전에 미리 검색을 통해 노키즈존을 미리 걸러내지 않는다. 노키즈존으로 어린이들의 사회성 발달과 경험을 제한하는 사회가 현실인데 예스키즈존만 선별해 다니며 나의 편리와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 예스키즈존을 방문하는 어린 시절을 만드는 것이 아이들 발달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장소가 많아지면 어린이들은 당연히 그런 장소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며 자랄 것이다. 노키즈존이 많아지면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차별을 당연히 생각하며 자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당한 차별을 일부러 피해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논란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의 아이들이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실수에 너그러운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아이들을 홀대하지 않았던 사회 곳곳에 계신 친절한 사장님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키즈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차별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회보다는 예의 바른 소비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하는 사회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어린이들은 자라서 좋은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잘 알고 있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이 많은 사회의 사회 규범은 노키즈존 합법화보다는 휴먼존의 차별금지에 더 많은 주장과 힘이 실리지 않을까.  


어린이가 감소하는 사회


2012년 484,550명이었던 출생아수가 2021년에는 260,562명이 되었다고 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사회에서 아이들이 설 공간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역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출생아수와 합계출산율.e-나라지표


출처;e-나라지표


절대다수의 기준에 맞춘 도시 건설은 다양성을 고려할 때보다 확실히 적은 돈이 들 것이다. 언젠가는 자라 어른이 될 어린이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학벌이나 직업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학업을 위해서라면 얼마든 쓸 수 있지만 약자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한 밑거름이 될 어린 시절의 경험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왜 이리 아깝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서 어디서나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면 아이들이 있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 될 것이다. 키즈존이라 명명한 곳에 새장의 새처럼 어린이들을 몰아두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회의 신입 구성원으로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어린이들의 보호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 흔히들 출산율을 높이려면 출산하고 싶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출산하고 싶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현재 사회가 영유아 및 어린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천인은 자식에게 천한 신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면천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출산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돈은 있어야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자식을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출산 없이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돈도 돈이지만 근미래 사회를 투영한다고도 할 수 있는 현재 사회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어쩌면 출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노키즈존이 옳고 그른지를 말하기 전에 어린이를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일이다. 어린이를 많이 보고 싶다면 어린이가 마음껏 돌아다닐 장소를 많이 만들어달라. 어린이들에게는 사회를 경험할 장소가 필요하고, 예비 부모들에게는 사회에서 존중받는 어린이들의 예시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불안감을 낮춰줄 좋은 사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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