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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Sep 26. 2022

손에 손잡고

한일관계가 파탄 나지 않는 이유

팬데믹 이전에 한일 민간 교류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여가부 예산을 받은 비영리 단체에서 진행한 청소년 활동 중 하나였는데 홈스테이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취지를 가진 사업이었다. 일본 학생들이 먼저 입국해 10일 정도 활동한 후 한국 학생들이 출국해 일본에서 10일 정도를 보내는 일정이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아이가 참여했었다. 

2018년 가을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양국이 들끓던 시기였다. 계절을 지나 2019년 봄까지 여파는 가라앉지 않았지만 민간 교류 행사는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속한 가족 구성원들의 신상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조심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여론은 험악하게 흘러가는 듯했고 그 때문인지 교류 참여 가정 중 많은 일본 가정이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런 시기에 한국으로 아이를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 판단했으리라. 

일본으로 아이를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업은 진행 중이었지만 포기자가 나올 정도라면 보통의 상황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집에 오기로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어 교류에 계속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소 가정은 점점 늘어갔고 한국에서도 취소 가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담고 일본 가정에 메일을 보냈다. 어려운 시기에 한국행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며 부적절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을 잘 보호하겠다는 글을 보냈고 역시 이런 시기에 일본 학생을 받아주는 결정에 대해 감사한다는 답변이 왔다.

대면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통솔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리를 정리한 후 인사를 하고 소개를 시작했다. 홈스테이를 여러 번 했지만 이처럼 경직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에 참석자들은 대부분 긴장한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를 풀어버린 것은 한 일본 교사의 말이었다. 일본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를 섞어가며 들려준 이야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낮출 수 있었다. 

제가 이 사업에 참여한 이후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늘 불안했습니다. 단 한 번도 좋은 관계에서 교류를 시작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교류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뉴스에서 하는 말만 들으면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도 민간 교류는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줘야 합니다. 들려오는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만난 사람들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류를 허락해주신 많은 한국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양국의 학생들은 공연을 준비했었다. 일본 초중등학생들이 준비한 공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파프리카 パプリカ' 노래에 맞춘 군무였다. 파프리카 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춤으로 표현한 부분은 지금도 동작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주제곡 노래였지만 학생들의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다. 노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인솔 교사에게 질문했더니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도쿄 올림픽을 치를 예정인 일본의 밝고 경쾌함을 담은 노래라고 설명했다.

일본 학생들은 무사히 한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고 첫째 아이를 비롯한 한국 학생들이 이어서 출국했다. 아이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한일 정세는 더욱 나빠졌고 고등학교 교사라는 일본 가정의 보호자는 거의 매일 내게 아이의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국의 분위기를 물었다. 일본 뉴스에서는 한국의 반일 정서를 계속 소개하고 있고 서울 중심부에서는 일본인들이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데 정말이냐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한국의 미세먼지 때문에 못 살겠다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미국인은 있어도 한국인이 가할 테러가 무서워서 귀국한 일본인은 없었다. 일본 대사관 앞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모두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문득 허탈해졌다. 나 역시 아이를 일본에 보내 놓고 한국에서 뉴스를 보며 일본 내 한국인 혐오가 극에 치닫고 있다는 기사에 굉장히 불안했었는데 정작 일본에서 오는 아이 사진은 길에서 일본 학생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는 일상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 걸까.

한일을 오가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인들의 공방과 언론이 전하는 과격한 뉴스를 보고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집에 머물렀던 일본 학생의 어머니는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양국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전쟁과 아무 상관없는 지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네 신사의 역사까지 출력해서 파일로 만들어 학생 편에 보낸 그녀는 자료를 정리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본 학생은 매일 아침마다 학습지를 했는데 역사 과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재에 실린 세계지도에 일본과 네덜란드의 수교는 표기되어 있어도 한국과 중국은 이름조차 붙어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일 교류에 참여했고 아들의 한국행에 돈을 지불했다.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놓쳤던 것은 이런 부분들이었다. 늘 불안했던 한일관계를 지탱해 오고 있었던 것은 정치인들의 언행이나 국가의 묵직한 결정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이었던 것이다.

미야기현의 센다이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 도서관은 유리로 만들어진 놀라운 곳이었다. 다양한 각도의 기둥과 유리로 된 도서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경대지진으로 도서관은 부서졌지만 기본 골조는 남아있어서 다시 재건이 가능했을 정도로 잘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들 때면 센다이의 미디어테크와 민간교류를 생각한다. 유리 파편처럼 서걱거리는 관계에서도 끝내 부서지지 않고 남아있을 이웃한 나라의 국제 시민으로서의 소양이라던가 얼어붙은 정치 상황에서도 일반화에 가려졌지만 꽤 괜찮았던 일본인들을 떠올리며 감정의 온도를 낮춘다.

2022년 여름을 맞이한 서촌에는 한국인만큼이나 외국인이 많다. 유럽과 북미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동남아시아인들과 일본인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스마트폰의 인스타 앱을 켜고 카페 어니언북촌에 있는데을 찾는 일본 여성들의 한복이 인상 깊다. 정동길 소녀상 옆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다. 그들에겐 캐나다 대사관 옆의 600살 가까이 된 회화나무나 소녀상이나 모두 한국의 볼거리인 것이다.

정치나 역사를 묻어둘 순 없다. 하지만 꼭 칼로 난도질해 피를 흘리며 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로 혐오를 줄여나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서로를 미워하며 증오하는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이 있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양국의 국민은 함부로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는 진짜 감정을 교류하며 알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부추김에 휩쓸리지 말고 양국의 미래를 위해 시끄러운 겉모습의 이면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건강하고 생동감 있는 한일 관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한일 민간 교류에 참여했던 일본 학생(왼쪽)과 한국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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