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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랭 Jan 27. 2022

"K 열풍" 뒤에 숨은 한국 사회의 잔인한 민낯

서평 #002 <당신이 몰랐던 K>

  


  책 정기구독 서비스나 북 큐레이션을 통해 독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서비스들이 가지는 장점은 약한 강제성 덕에 쉽게 독서습관을 들일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을 새로운 분야의 책을 권해준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계기는 조금 다르나, 나 또한 최근에 한겨레 출판 서포터즈를 시작하며 유사한 경험을 했다.


  “당신이 몰랐던 K”는 정말 내가 읽지 않을 법한 책이다. 책 뒤표지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카피만 봐도 그렇다.


“’유사 선진국’에서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할 K를 위한 조언’”


물론(!)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국가적 이상으로 자리한 ‘선진국’ 개념을 단지 경제 지표의 우위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책은 강하게 비판하지만, 그래도 ‘선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국가 간의 위계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불편한 것만은 사실이다.


  책은 과거, 위계, 혐오, 노동, 세계, 미래의 여섯 주제이자 목차를 가지고 “K-“의 민낯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한다. 각 장은 5-8개의 짧은 칼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제의식-주장-근거-해결책’이라는 명쾌하고 정갈한 구성을 지닌다. 책을 통해 저자는 ‘00 강국’이라는 발전주의적 구호와 근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K 열풍”이 그 발상지인 대한민국을 정치, 경제, 사회, 노동,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해부했을 때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고발한다. 더하여 '무늬만 선진국’이 아닌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박노자의 제안들을 담고 있다.




  급진 좌파주의 성향이 엿보이는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박노자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완벽히 왼편에 서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비평한다. 어떤 주장과 논리를 전개해 나갈지가 다소간 예상이 되지만, 한편으로 ‘완전한 왼편’이라는 저자의 위치성은 갖가지 안건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예리한 관점과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그들’이 언젠가 ‘우리’처럼 될 거란 착각”에서 저자는 ‘중국, ‘북한’, 러시아’ 등의 국가를-우리나라의 과거 ‘군부 독재기’에 비추어-미(未) 민주화 후진국으로 바라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띠는 이들 국가들은 우리의 근현대사와 매우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이들의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는 것(시장경제의 확립 및 다당제 도입)은 오만한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훌륭한 통찰과는 무관하게, 저자의 의견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젠더와 소수자 의제에(반중 등의 좌파 주요 어젠다와 비교하여) 다소 미지근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하나마나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지점에서 특히 그렇다.


책 초반에는 간혹 전 서울특별시 시장이자 ‘위계적 성폭력 이슈’로 스스로 목숨을 달리 한 박원순이 등장한다. 분명 저자가 ‘박원순’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를 ‘재야 시절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이라며 구태여 존칭까지 써가며 언급하는 점은 의아하기 이를 데 없다. 더불어, ‘K의 혐오정치: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혐오 이슈를 언급하며, 혐오세력의 우파적 결집을 제지하기 위한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연대를 통한 위기 대응이다. 남자와 여자, 국내인과 거주 외국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신자유주의의 야만에 함께 대응해야 오늘의 ‘헬조선’보다 더 바람직한 사회에서 우리가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국내에 불고 있는 혐오의 바람이 단순히 ‘젊은이들의 불건전한 유행’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광범위한 피해 집단을 양산하는 명백한 폭력이자 그에 대한 방관의 기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파’, ‘우파’라는 이념 차원의 문제로 현상을 해석하며, 의제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 ‘당신을(혹은 당신이) 업신여기고, 혐오하는 이들과 연대하여 우파들을 무찌릅시다!’하는 구호는 양쪽 모두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없으며 그가 이야기하는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도 정당성이 떨어진다.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분명 세계의 갖은 현상들을 이해하고 비전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큰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무리 클지언정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맹점 없는 이론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합한 ‘렌즈’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박노자가 가진 렌즈는 오직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글이 쉽고 흥미진진하지만 어딘 지 모르게 불편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자는 현상을 명확하게 가름하여 보여주기는 하나, 그가 선택한(혹은 창조한) 프레임 밖의 것들은 모두 ‘페이드 아웃’해 버린다. 초점 밖의 것에는 박노자가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국 반열 입성’에 있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요소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여기 실은 글들이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주의를 은근히 찬양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맞서 누군가 소신껏 사회주의 체제의 장점을 말할 자유를 박탈당할 때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만이 진정 거리낌 없이 사회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 우리 사회를 비판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사회주의를 연구할 자유조차 없는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똑같은 무게로 비판한다고 해서 ‘공정한 역사’가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몰랐던 K’는 이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집필한 7,80년대뿐 아니라, ‘선택’과 ‘취향’이 몹시 중요해진 현시대에도 우리는 ‘취향’과 ‘신념’이라는 원자화된 프레임 속에 갇혀 ‘공정한 관점’을 상실하기도 한다. 박노자의 글은 중언부언이나 모호한 서술 없이 본인의 주장과 당위를 투명하게 내건다. 때문에 독자는 비교적 쉽게 글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이는 ‘까더라도 알고 까는’ 정당한 비판을 용이하게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책의 쓸모를 말한다면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저자의 논리를 소화하며 도리어 나의 균형을 재점검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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