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Maketh Man
적어도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어떠한 설득력도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행복을 살만한 돈이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기대를 한껏 받아 자라온 아이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내가 대신하여 이루어 주기 위해서,
한 학생의 주위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우월감을 한껏 뽐내기 위해서,
한 번뿐인 청년의 인생에 있어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철없는 아이의 인생에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소녀와 행복한 평생의 인생을 꿈꾸며,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단순히 살아간다는 것 만으로 항상 무언가를 지불해 왔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는 그것들을 포기하고 대학교 졸업장을 손에 넣어 그들에게 그것을 안겨주었고,
좋은 직장을 얻은 그 학생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을 대가로 지불했었지,
그제야 어릴 때 자신의 꿈을 발견한 청년은 쌓아왔던 것을 모두 무너트리고 세상 밖을 나왔으며,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아이 앞에는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등장했지.
이제 아무것도 없는 아이는 신데렐라의 구두를 얻기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시간? 꿈? 자존감? 더 가혹한 대가가 있어도 이 아이는 어떠한 흥정과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돈이 없으니.
아름다운 디즈니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인어공주도 왕자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놓지 않았던가.
최근에 나는 성인 애착 유형 테스트를 했다.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혼란형 - 자기부정 타인 부정" 애착 유형의 검사 결과를 받았다.
어릴 적 외상의 경험, 학대, 방치등의 다양한 이유로 지금의 정서적 유형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듣고 있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분명하게 회상할 시간이 되었다.
"방치"라는 단어가 굉장히 거슬렸다.
나의 부모님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살부터 밤낮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직장에서 만나 내가 세상에 태어났겠지.
나의 애기 때의 생활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의 끝에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둘 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늦은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운동회날에도 한 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지만, 항상 그날엔 집에 와보면 따뜻한 피자와 오늘 못 가서 미안하다는 쪽지가 식탁 위에 있었다.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은 게임과 티브이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고 더욱이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이것에 대해 서운하고 부모가 밉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나의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자라나 "혼란형"이라는 단어를 내게 주었겠지.
그들은 어째서 나를 20년 동안 "방치"라는 것을 했을까.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돈"과 바꾸었을 테지. 나는 그 "돈"을 가지고 다른 것과 바꾸어 지금까지 큰 걱정 없이 자라왔다.
만약 그들에게 일찍이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운동회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해도 걱정 없을 만한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들과 그들의 아이는 조금 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아이는 "방치"라는 단어 대신 "안정"이라는 단어를 달지 않았을까.
어린 나에게 있어 행복이라는 가격은 그저 이 정도였으면 충분했다.
다시 돌아와, 이제 나의 행복은 얼마의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디까지의 나의 행복을 정의하고 타협할 수 있을까?
과연 당신들은 지금 얼마만큼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