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9일부로 인사발령이 났다. 함께 입행한 동기들보다 반년 늦은 인사였다. 통상 2년 주기로 부서 이동을 하지만, 나는 기준년개편을 핑계로 기존 부서에 한 차례 잔류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인사이동이 늦어졌다.
평가가 얽혀있어서 하반기에 이동하는 것을 대부분 꺼려한다. 나는 통계국에서의 생활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고 하반기에 손 들고 이동을 희망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잔류를 희망했다.
하지만 인사내신서에 잔류를 쓰면서도 내가 잔류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품지 않았다. 기준년개편이라는 훌륭한 구실은 이미 쓸모를 다 했고, 나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서에 있었기에 내가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아마 다른 사람들은 성실하게 작성했을 인사내신서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한 문장으로 갈음했다. "12월에 완료될 2차 기준년개편까지 마무리하고 이동을 원합니다,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동은 확실했는데, 어디로 가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명목상으로는 잔류를 희망했으니 원하는 부서에 대한 추가적인 어필도 쓰지 않았다. 최근 같은 팀에서 근무하다가 이동했던 조사역들의 예후가 썩 좋지 않았어서 내가 기대와 야망을 한껏 담아 내신서를 성실히 쓰더라도 기다리는 건 처참한 결말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기가 상당히 빨랐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상반기 인사 결과를 받은 동기들의 숱한 절망을 가까이에서 봤던 영향도 컸다. "은행에서의 커리어는 인사팀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과장님의 금언도 한 몫했다.
7월 19일 오후 2시, 인사발령통지를 위에서부터 읽을지 아래에서부터 읽을지 상상하다가 그냥 위에서부터 읽었다. 지역본부 발령은 인사발령통지의 아래에 적혀있는데 '부산본부'가 나올 때까지 내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많이 내려가지 않은 곳에 내 이름이 있었다.
하반기에 이동하는 조사역은 지역본부에 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잔류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지역본부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절반 정도는 각오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인사 발령을 딱 받고 나니 실감이 나지 않고 막막할 따름이었다.
이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기다리면 안내해 주려나? 인사발령 후 이동일까지 고작 일주일인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겠네? 등등 이동이 현실화되니 온갖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무실이나 집이나 짐이 별로 없어서 이사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정리되니 이동에 따른 막연한 두려움은 대부분 해소됐다. 아무래도 지역본부 발령이 내게 주는 걱정은 이사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사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으로 놀라울 정도로 진정되고 오히려 지역본부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동기들에게 농담처럼 하고 다녔던, 본부에서 바쁘게 지냈으니 지방 가면 드라이브나 다니면서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게 설레기 시작했다.
가깝게 지냈던 회사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만 마음에 걸렸지만, 다행히 서울과 가까운 곳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본부에 올 수 있으니 후일을 기약하며 책상을 빠르게 뺐다. 요란하게 떠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강원도민으로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