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진로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냐고 물을 때면 20대 초반부터 30살이 된 지금까지 줄곧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가이거나 극작가라고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내게 탁월한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글 쓰는 일을 동경하게 된 것은 글을 많이 읽게 되면서 글이 주는 힘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초반 약 6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권태로움에 지쳐, 병문안을 올 예정이었던 아버지께 책을 몇 권 사다 달라고 부탁드렸던 것이 나의 지독한 책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버지께 처음 부탁드렸던 책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신앙서적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걸 보면 위로가 많이 필요한 시기였구나 생각된다. 무튼 이찬수 목사님의 책을 시작으로 입원 기간 동안 인문학, 철학, 소설, 자연과학, 경제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하며 활자를 접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독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시험을 보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 뜬금없게도 병실의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마지못해 집어 들었던 책이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지독한 책 사랑에 빠지게 됐다. 나는 인생에서 재능이나 노력만큼 운이 중요하다는 것을 병실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책을 많이 읽게 되니 많은 정보와 논리를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저자의 철학을 여과 없이 나의 모럴로 연결지었던 것 같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찬양하며 작은 정부만이 국가 부흥의 길이라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인즈야말로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떠들어댔던 적이 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플라스틱 빨대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원자력이야말로 기후위기 해결의 주요 방안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이 외에도 자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발로 이불을 차 올리게 만드는 기억이 여럿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특정 이론이나 계급, 그리고 정치색에 치우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의 저자들을 접했던 것이 나만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시각을 갖게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만의 굳은 신념 혹은 철학이 정립돼 있다는 것은, 그것이 아집이나 고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념이 고집이랑 무엇이 다른지는 개인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삶이란 주변의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자신의 모럴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건강한 삶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자신의 모럴을 세워가는 과정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삶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같음과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스며듦과 동시에 침범하지 않는 태도에서 건강한 삶이 태어난다. 물론 이건 나의 모럴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전공한 나는 졸업 후 자연스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삶을 살게 됐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늘 글 쓰는 일에 대한 갈망이 자리했지만,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전공 지식이 아깝기도 했고, 엔지니어로서 현업을 경험해보지 않고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괜히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졸업 후 바로 IT 회사로 취직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 회사였다. 점심시간에는 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때론 누군가의 한숨 섞인 하소연에 모두가 경청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의 시작이 이렇게 평탄해서 나중에 사내 문화가 경직된 곳으로 이직하게 되면 못 버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이 정도로 만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자 엔지니어의 삶을 뒤로하고 글쟁이로 살아가기 위해 이직을 했다.
그렇게 기자가 됐다. 사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언론계는 취직 과정이 ‘언론고시’라 불릴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군이지만,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같은 대형 언론사에 취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저 글 쓰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운이 무척 좋았다. 다시 한번 인생에서 운이 중요하구나를 느끼는 지점이다.
나는 현재 제약·바이오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약·바이오라는 분야가 가지는 특수성이 기사 작성에 어려움이 될 때가 많은데, 경험 많고 성품이 온화한 선배들이 많은 언론사에 들어와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내가 봐도 준비되지 않은 채 기자가 돼서 기본기조차 없이 주먹구구로 일할 때가 많은데 선배들은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기다려주신다. 한참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괴감에 휩싸여 있는 나에게 선배는 “기자로서의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하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다독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운이 정말 좋다.
한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설명하자면, 이직 과정에서 논술학원이나 기자 아카데미에 다니는 등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지, 읽기와 쓰기는 약 8년 동안 매일 했다. 독서 후에는 서평을 썼고, 일기나 에세이 등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글쓰기를 시작했고, 이제는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가 됐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글 쓰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10년 가까이 말하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진짜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새삼 말하면 이뤄진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진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성공한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말하는 대로 살게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이 글도 쓰고 있다.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작가가 돼서 광화문 교보문고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이 글이 담긴 내 책이 놓여 있기를 바라본다. 난 지속적으로 말하고 다니니 이뤄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