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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Jun 14. 2024

무엇이 아니다

언제는 담긴 물이었던 것이

안에 담겼던 빛이었던 것이

가두어 두었던 벽이었던 것이

흙을 파내던 곡괭이 날이었던 것이

뽑혀 버려지던 풀이었던 것이

풀 위를 거닐며 꽃을 희롱하던 날개였던 것이

그것을 노리던 매서운 눈이었던 것이

멈출 줄 모르는 빗줄기였다가

몸을 가려주던 조그만 우산이었던 것이

유월 무성해지는 숲 속 나무로 있다가

오월 단장했던 꽃잎이었던 것이

겨울 준비하는 부지런한 다람쥐였던 것이

도토리 한 알일 것이

늦어 발 동동 구르며 기다렸던 버스였다가

초조하게 확인하던 휴대폰 액정이었다가

내쉬어지는 한숨이었던 것이

느긋해져 마시는 커피 한 잔일 것이

앉아있던 은색 알루미늄 의자가,

하얗게 물보라 일으키며 나아가는 뱃전에서

유혹하는 손길에 쥐어졌던 새우깡이었다가

물고 날아가 먹어버린 갈매기였을 것이

흰 포말이, 려 나가는 배가,

대지를 다 덮었던 하얗던 눈이

미움을 쏟아부었던 너일 것

단단했던 나였던 것이

사연 적어 내린 펜이기도, 적히는 종이이기도 했던 것이

쌓인 인연쯤이야 한 줌 모래보다도 쉽게 새어나가지만

모래 한 알에 담긴 시간들이 애달파

바다 서러운 눈물로 뒤척여

그렇게 날아 물고기도 되고 구름도 된 것이



*이미지:Pixabay<by  El Camin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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