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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릿 세이 Jun 01. 2024

충동 억제 미숙아

글쓰기 초보

손 글씨는 참 매력적이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써 내려간 글자에는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육체와 정신이 맑은 날에 써 내려간 손 글씨는 마음에 쏙 든다. 어느 날은 귀엽고 어느 날은 정직하고 또 가끔은 어른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느 날은 지렁이가 지나간 것처럼 휘갈겨 쓴 날도 있다. 컨디션이 엉망인 날 특히 충동이 요동치는 날의 글씨는 들쭉날쭉하여 정갈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기분이었든 상관없다. 

손 글씨로 노트 한 페이지를 꽉 채운 글들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글 쓰는 시간이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걸리는 일이고, 반복 작업을 또 하는 귀찮은 일이다. 누군가는 미련하고 바보 같은 쓸데없는 짓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미련하고 느리게 가는 행동이 사실 나에게는 30배는 더 빠른 지름길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글이 써지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부팅하는 1~2분 동안 생각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방을 한번 둘러보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후루룩 훑어본다.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책의 내용이 좋아서 책 속으로 빠져든다. 노트북 부팅 시간 1~2분은 나의 관심을 글쓰기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딴 길로 새지 않고 노트북이 부팅된다. 바탕화면에 있는 여러 개의 폴더 중 '브런치 북' 폴더를 열었다. 폴더 속에는 5개가 넘는 또 다른 스토리 폴더가 있고, 글을 쓰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30개가 넘는 미완성 파일이 각기 다른 제목을 달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 이 글도 좋은 소재였지.' 파일 제목을 보니 새록새록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파일을 열어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충동을 꾸욱 누르고 새로운 빈 파일을 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빈 파일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충동을 억누르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일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휘발되었다. 또 억지로 글을 쓰려니 더 안 써진다. '에잇,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화면도 크고 속도도 빠른 메인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한다. 여기까지가 1시간 동안 있었던 노트북의 유혹이다.


이번에는 휴대폰 메모장을 이용해서 글을 써보자. 노트북처럼 부팅하는 시간이 없으니, 접근성이 훨씬 쉽고 간편하다. 휴대폰은 간편함의 대명사다. 간편성이 괜히 간편성이겠는가? 그 간편성이 글쓰기에만 간편하겠는가? 휴대폰을 켜자 내 최고의 관심사들만 모여 있는 메인화면이 나타났다. 네이버 웹툰,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톡, 문자, 일정 확인 등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모여 있는 휴대폰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웹툰 하나만 볼까?' 휴대폰을 켜는 것과 동시에 나의 의지는 충동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휴대폰과 노는 시간이 계속 늘어간다.


'하아... 오늘도 망했다. 내일은 진짜 열심히 써야지.'




노트북과 휴대폰은 분명 글쓰기에 매우 편리한 도구다. 노트북은 글을 쓰는 속도가 빠르고, 단어 수정이나 문장 또는 문단의 순서를 바꿀 편리하다. 또 카페나 지하철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멋있어 보인다. 프로페셔널함과 자기 일에 몰입되어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라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만약 지독한 악필이라면 자신이 글씨를 보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가 누군가에게는 독이 수도 있다. 특히 필자처럼 충동 억제 미숙아에게는 악마의 유혹과 같다. 짧고 강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에 빠져들면 자기의 본질인 글쓰기는 뒷전이 되고 만다. 시작은 달콤하지만 끝은 쓰디쓴 실패와 좌절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노트와 펜을 이용한 손 글씨를 좋아한다. 

조금은 손이 아플 수도 있고, 조금은 귀찮을 수도 있고, 조금은 느릴 수도 있다.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이 가끔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한꺼번에 두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가는 전환 속도가 빠른 것이라고 한다. 손 글씨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생각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흘러가는 생각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이 빠르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육체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정신이 다른 충동에 이끌리더라도 육체가 손 글씨를 쓰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했던 정신은 마치 자석처럼 육체가 하는 행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인간은 정신. 감정. 신체가 일치된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없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한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손 글씨다. 신체인 손은 글씨를 쓰고, 정신은 써야 할 내용을 생각하고, 감정은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에 가서 닿게 된다. 신체와 정신이 하는 일을 감정은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충동 억제 미숙아라면 손 글씨를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손 글씨가 충동 억제 미숙아들에게는 선물처럼 기적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이루고 싶은 것 100번 쓰기’의 기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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