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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진저 Oct 02. 2024

나는 땅콩을 좋아해

마흔의 발견

 “나는 땅콩을 좋아해!”


  마흔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엉뚱한 아내의 고백에 남편은 황당해했지만 자기 고백과 같은 그 말은 내 머릿속에 일대 지진을 일으켰다. 마치 ‘나’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놀라움이 있었다고나 할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날 나는 땅콩을 좋아하는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더 웃긴 일은 한동안 나는 꽤 마음에 드는 단어를 배운 어린아이처럼 만나는 사람에게 이 말을 외쳐댔다. “나는 땅콩을 좋아해!” 그런데 그런 나를 오히려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이 봤다. 내가 평소에도 오징어 땅콩이나 국희 같은 땅콩 과자를 잘 먹었다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하지만 정작 나는 마흔이 되도록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그런 인식이 없으니 좋아하는 땅콩을 적극적으로 즐긴 적이 없다. 적극적으로 즐긴 적이 없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먹은 땅콩의 양이 적다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땅콩을 먹으면서도 딱히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니 많이 먹었어도 오히려 손해 보면 산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땅콩이 내 ‘최애’는 아니다. 나는 커피와 초콜릿을 훨씬 더 좋아한다. 어디 그뿐일까? 김치찌개는 나의 소울푸드이고 엄마를 배려한 이유도 있지만 고3 내내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으로 가지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다만 그런 음식은 그 감정이 너무 뚜렷해서 의심 한 점 없이 좋아했다면 땅콩은 마흔이 넘도록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서 땅콩이 좋다는 나의 외침은 “나는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았어. 이제부터 더 적극적으로, 나의 작은 부분까지도 알고 싶어.”라는 뜻이었다. 부작용은 있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남편은 땅콩과 함께 “나는 이게 좋아. 저건 싫어.”하며 자기감정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아내의 어리광을 들어야 했으니까.

 

  나는 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깨달음이 있었어도 생활에 치이고 감정의 기복에 휘둘리다 보니(라고 적고 나의 게으름으로) 별 진전 없이 어느새 마흔 중반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예전보다 조금 더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외부로부터 오는 감정이 아닌 내가 나에게 기대며 느끼는 편안함이랄까? 희미하지만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안온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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