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날씨가 십일월까지 이어졌다.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예년보다 따뜻한 가을을 보냈다. 이맘때면 찾아오던 '수능 한파'도 올해엔 없었다. 다행이다.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고 하얀 입김을 불어내며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모습은 해마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리게 했다.
기온은 변했으나 십일월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에는 모두가 수험생이 되어 하루를 보낸다. 어른들은 출근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수험생들에게 길을 터주고 듣기 평가가 있는 시간에는 시험장 근처의 차량을 통제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마음으로 수험생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해마다 수능 보는 날 아침이면 갖가지 사고가 발생한다. 올해에도 수험표를 놓고 간 학생의 어머니가 112에 신고를 해서 지구대 대원이 수험표를 갖다 준 이야기, 수험생을 태운 차가 접촉사고로 발이 묶이자 경찰이 수험생을 태우고 달린 이야기 등이 지면을 장식했다. 근래에는 팬데믹으로 분리된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도 있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 집안에 수험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해마다 그런 기사에 마음을 졸이고 안도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는 수능 이전의 학력고사를 보았다. 당시에는 먼저 가고 싶은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하고 그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유난히 추웠던 그날 아침의 새벽 공기는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정답을 찍듯 한 걸음 두 걸음 발자국을 찍으며 집을 나섰다.
시험 전날 예비소집이 있어서 다녀오긴 했지만 낯선 길이라 혼자 가기엔 무리였다. 다행히 오빠가 그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나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학생인 오빠가 자차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해서 우리는 버스로 가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날이 완전히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언니가 싸준 보온밥통을 들고 나는 오빠와 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 버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차창에 낀 성에 때문에 밖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버스가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도로에도 눈이 많이 쌓였으리라 짐작했다. 서둘러 출발했으니 늦지는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공부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나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마나 갔을까. 버스기사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거 큰일이네. 잠깐 좀 멈췄다 가야겠네요.”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잠깐 꿈을 꾼 것일까. 수험생이 타고 있는데 차를 멈추다니,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내 놀란 마음을 알 리 없는 기사는 차를 갓길에 대더니 차에서 내렸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추워서 엔진이 얼었다는 둥 고치고 가려면 한 시간도 더 걸린다는 둥 불안하기 그지없는 말들이었다. 오빠는 차에서 내려 기사에게 달려갔다. 몇 마디를 나누더니 바로 내게로 와서 내리라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내렸다. 오빠는 잠시 도로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걸어가자.”
날벼락같은 말이었다. 차가 멈춰 선 것도 꿈만 같은데 그 추위에 걸어서 시험장까지 가야 하다니…. 오빠는 눈길에 택시를 잡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행여 탄다 해도 어느 세월에 갈지 모른다며 걷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사정이 그러하다니 걸어가는 것이야 별 수 없다 해도 시험 시간 안에 도착할 수는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오빠는 내 보온밥통을 어깨에 메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쉼 없이 눈길을 빠른 걸음으로…. 나는 오빠의 속도를 맞추느라 얼마 못 가서 숨이 찼다. 발까지 미끄러져 자꾸만 휘청거렸지만 오빠를 놓칠까 봐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시험을 못 보게 되는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오빠의 걸음처럼 내 가슴이 쉼 없이 쿵쾅거렸다.
얼마를 걸었는지 몰랐다. 찬바람에 볼은 깨질 듯 아팠는데 등에서는 땀이 났다. 드디어 시험 볼 학교 정문에 닿았다. 그제야 오빠가 걸음을 멈췄다. 오빠는 보온밥통을 내게 주며 말했다.
“수험표 손에 쥐고 무조건 뛰어!”
정문에서 시험장이 있는 건물까지도 상당한 거리였는데 수험생이 아닌 오빠는 정문 안으로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나를 순간이동시켜달라고….
그날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은 거기에 없었으나, 그곳에서 안내하던 사람들은 나에게 괴력을 발휘하게 해 주었다. 박수로 나를 응원하며 시간 안에 갈 수 있으니 뛰라고 독려했다. 나는 무조건 앞으로 달렸다. 전날 가보긴 했으나 여전히 낯선 길이었다. 하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갈림길마다 안내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간마다 내게 시간을 체크해주며 갈 수 있다고 외쳤다. 나는 마라토너라도 된 양 그들의 응원 속에서 힘차게 뛰었다. 그렇게 나는 시험 시작 시간 2분을 남겨두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시험 감독관이 들어왔다. 새빨간 볼에 거친 숨을 내쉬는 내가 한눈에 봐도 고생 한 티가 났을 것이다.
“궂은 날씨에 오느라 다들 애썼다.”
감독관의 한마디가 내 언 마음을 녹였다. 그 궂은 날씨에 나를 시험장에 시간 맞춰 들여보내느라 애쓴 사람들이 몇이던가.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한 언니, 눈길을 앞장서 걸었던 오빠, 그리고 나를 뛰게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그뿐인가. 그 하루를 향해 십 수년을 달리는 동안 나를 위해 수고한 손길들을 어찌 다 헤아릴까.
"잘 보자!"
감독관의 말과 함께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날 그 교실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나의 경쟁자였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시험을 잘 보길 나는 바랐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누군가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나지막이 인사하고 연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