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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Mar 20. 2023

계절과 무관한 일상.  

무관하기 싫다.

이상한 감기에 걸렸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가면, 고개를 갸웃하며 목은 괜찮다고 한다. 이비인후과에선 멀쩡하다고  하는데,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나니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원인을 몰라 그냥 다 처방해 본다는 약은 진통제와 소염제가 대부분인데도 조금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일주일을 먹어도 그대로지만, 약조차 먹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어 또다시 병원에 가서 더 강한 약들로 일주일치를 더 받았다. 이건 필시 코로나다 싶어서 죄 없는 콧구멍을 들쑤셔대도 나오지 않고, 독감이라기엔 열이 없다. 목소리로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성대결절씩이나 걸렸나 싶어서 의심해 보다가 도대체 어디 병원으로 가야 고통이라도 가라앉혀주나 평생 가면 어쩌나 의심하던 때에야 조금씩 나아졌다.


문제는 이게 전염성이 있다는 거고, 더 큰 문제는 전염된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거다. 엄마는 기저질환자고, 아주 사소한 감기만 걸려도, 크고 작은 폐앓이까지 가야 간신히 끝을 보는 사람이다. 게다가 간이 좋지 않아서 쉽게 약처방도 할 수 없는데 지금 이 이상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간질환 때문에 평소에 어지간히 아픈 걸로는 병원도 찾지 않고, 아주 많이 아파도 진통제는 빼고 끝내 버티는 엄마가 스스로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먹고, 약이 듣지 않으니 또 다른 병원을 가고, 그래도 낫지 않으니 너무 괴로워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고통은 언제나 사람을 약하게 만들지만, 애틋이 바라봐줄 부모님이 없는 나이에 찾아오는 고통은 기댈 곳 없는 외로움과 신체적 무력감에 힘입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다.  나는 자식이라서, 게다가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을 다니고 있는 자식이라서, 그러려니 짐작만 할 뿐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낮에는 일을 하러 가고, 저녁이 되면 아이를 돌보러 간다. 부모는 모든 걸 뒷전으로 하고 아픈 자식을 챙기지만, 자식은 부모를 뒷전으로 하고 다른 모든 것을 챙긴다.

나는 이 이상한 감기가 극심한 목의 통증과 자다가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새벽에 깨는 정도였는데, 엄마는 목의 통증과 아예 잠을 못 이룰 정도의 끈질기고 격렬한 기침, 그로 인해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는 불면과 불면의 밤이 준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는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매일 짜증을 내고 있고, 나는 부서가 바뀌어서 나름대로 적응 중이다. 엄마는 강력한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하루가 다르게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있다. 나는 일하는 사이사이 엄마의 심각한 불면과 기침에 대해 고민하고, 또 틈틈이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궁금해한다. 퇴근길엔, 회사에 있는 아빠에게 엄마가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집에 혼자 있으니 가달라고 전화가 오고, 남편은 야근하면서 아픈 엄마 대신 시누이에게 아이를 맡겨뒀으니 찾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에 앞서 '나는 오늘 혼자 어디서 저녁밥을 해결하고 가야 하나'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인간이 나다.

결국 제일 먼저 생각했지만, 제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저녁밥이라 오늘은 저녁밥을 포기하고 지금 이 시간, 그러니까 밤 11시 45분에 아이를 재워놓고 일기를 쓰면서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야간엔 내가 먹고, 아침엔 아이가 먹고, 어쩌면 엄마도 갖다 줄 수 있겠지.


요 며칠 넷플에서 밤마다 '나는 신이다'를 한편씩 보고 잤더니,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피로와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나를 둘러싼 상황도 그렇다 보니 요샌 여러모로 '아 그러니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사탄이 보면 어이구 선생님 하면서 무릎을 꿇을 만한 인간들과, 그 앞에서 진짜로 무릎을 꿇는 인간들과 , 그 모든 가해와 피해와 의지와 의존과 사랑과 사기와 인간성과 기만과 탐욕과 염병 뭔지도  모르겠는 그 모든 것들이 몽땅 나를 피곤하게 한다.


그런데, 이 감기 같은 감기 아닌 감기는 대체 뭘까.

빨리 엄마가 나았으면 좋겠다. 좋은 계절에 맘 편하게 꽃이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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