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묘염 Apr 02. 2023

날씨는 죄가 없지

이모는  주말에 놀러 갈 때면  자주 나를 데리고 다녔다. 어린 시절 바쁘고 여유 없었던 엄마아빠랑 놀러 다녔던 기억보다 이모를 따라가서 사촌동생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도 놀러 갈 때면 사촌동생을 데리고 가곤 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동인  나를 위한 부모님과 이모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내 어린 시절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게 된다.

나를 데리고 다니고 돌봐주었던 그 시절이 고맙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아무래도 나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단 엄마와 이모  서로를 위한 무언의 합의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어제도 조카들 둘을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서라기보단,  다섯 살이  넘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나를 찾지 않고 자기들끼리. 심지어 그것을 돌봄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랑은 여유에서 나온다. 아이들 셋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밭을 뛰노는 장면은 나무그늘에 앉아서 거리를 두고 봐야 사랑스럽다.  함께 뛰며 땀을 흘릴 때가 아니라.

만 4세가 주도하는 도둑놀이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 내가 도둑도 경찰도 아니여야만 가능하다.


둘째를 권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강조한다. "동생 낳으면 자기들끼리 놀아. "  하지만  그 소리에 귀가 열릴 때 명심해야 할 부분은    (5세 이상부터 12세 이하까지)라는 거다.   치밀한 계산과 신중한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성비 좋은 사촌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천한다.   데리고 나갈 때마다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환절기에 심한 감기로 한 달 정도 앓다 나오니 벚꽃이 지고 있다.  트렌치를 꺼내자마자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겨울 끝무렵에 망설이며 산 가죽재킷은 한 번 입고 옷장 속에서 소파냄새를 품기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뛰어다니고  구부정한 노인들이 해를 등지고 느릿느릿 아파트 화단을 거닌다

예전엔  촛불같이 피어나는 목련이 봄을 시작하고 산수유 벚꽃 백일홍이 차례차례 피고 지며 계절이 무르익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모든 꽃들이 축제처럼 요란하게 한꺼번에 피고 진다. 모든 것이 일제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밖으로 나온  인파로 꽉 막힌 고속도로의 차 안에서  봄을 맞이한다.

따뜻하고 덥고 지치고 나른한 주말이  지나간다.


유난히 출근하기 싫은 계절이다. 창문밖으로 나랑 무관한 화창함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내면의 전구가 나가는 기분이다. 주말이 되면   아이와 사촌들을 차에 태우고 쫓기듯  운전대를 잡지만,  내가 놓치는 것이  단지  봄은  아닌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출근하기 싫단 얘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다.

봄이다.

놀러 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계절과 무관한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