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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Oct 31. 2023

설사vs변비. 내 자신vs니 엄마

아이의 설사가 일주일 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장염의 악몽이 떠올라 처음 설사를 보자마자 아동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 당일 진료를 보려면 새벽 두 시 부터 번호표를 뽑는다는 소리에 시도도 하지 못하고 포기 했다. 두시에 번호표를 뽑으러 달려갈 자신도 없고, 뽑는다한들 그 아수라판에서 대기하다 가 없는 병도 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절기라 독감 환자가 유행한다고 치자. 독감에 코로나에 각종 호흡질환이 만연해있다고 하자. 사정이 어찌 되었건 새벽 두시에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현상을 '의료붕괴'라는 말 대신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작년에 왔던 환절기가 죽지도 않고 올해 또 왔을 뿐인데? 애들은 오히려 줄었다면서 해마다 얼씨구씨구 들어오는 환절기에 부모들이 새벽 두시부터 미친년 칼춤 추듯 달려나가는 현상을 의료붕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렇다면 이 새벽 두시의 고요를 깨는 성스러운 번호표의 존재로 의료붕괴 앞에 만인은 평등해지나?


먼저 온 순서대로 부지런한 놈은 살고 게으른 놈은 도태되는게 현대인의 상식이자 정의라서?


새벽 두시부터 번호표를 뽑은 사람은, 내 눈 앞에 남의 아이가 토사광란을 일으켜도 현관문보다 완고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밤 잠을 설치며 번호표를 뽑은 사람이고 지금 내 아이도 아픔을 참아가며 독감환자들이 바글거리는 병원 대기실에서 나름의 고통을 감수하며 인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고 평시에는 비교적 선량하며 개인적으로는 따뜻하고 사랑도 많은 평범한 인간이 , 선량한 피해자 앞에서 차디찬 가해자로 돌아서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건 그 사람의 타고난 이기심 때문일까 사회 시스템의 어딘가가 고장났기 때문일까. 어느날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뉴스의 머릿기사는 사회 시스템과 제도를 운운할까 아니면 지 새끼밖에 모르는 요즘 부모들의 이기심을 개탄할까.


새벽 두시와 번호표를 떠올릴 때마다 가능한 모든 상상에 불안해지곤 한다. 피해자가 되는 것도 가해자가 되는 것도 끔찍한 상상이지만, 어쩌면 이미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무언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새벽 두시의 행렬에 동참해야 할 만큼의 상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토하지도 않고 탈수가 오지도 않고, 열이 나지도 않고 그저, 설사만 일주일 째 하고 있다. 동네 작은 소아과와 내과를 전전하며 지어온 지사제 때문에 설사를 하는 와중에 응가가 안나온다고 고통스러워하며 대성통곡을 한다. 한밤중에 세번 네번 내 눈 앞에서 쏟아내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뭐가 나오고 뭐가 안나온다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요 진실은 뱃속에 똬리를 틀고 나오지 않는다는건가?


한참 잠들어 있을 때 갑자기 깨우면 누군가 머리통을 망치로 때리는 것 같다. 매일 밤 서너번씩 머리통을 해머로 갈기는 날이 지속되니 놀랍게도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 하루이틀은 아이가 걱정되고 안스러운 마음으로 벌떡벌떡 일어났는데 며칠 지나고부턴 피곤하고 좀 짜증도나고 아이걱정보다 내 잠이 더 소중해졌다. 내 자신의 몸과 내 자신의 역할 사이에서 한바탕 전투가 일어난 것 같다. 출근해서 일어나는 모든일에도 무감각해지고 누가 앞에서 진상을 좀 부려도 화도 안난다. 진상이 진상좀 떤다는데 내 알바야? 이런생각이 들면서 모든 인간이 무미건조하고 지긋지긋해졌다. 역시 인간은 제 한 몸뚱이를 잘 건사할 수 있어야 그 외의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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