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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밋 Nov 23. 2023

좋아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

<도대체 난 뭘 좋아해?> 미리보기 ③

디자이너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평소에 즐기는 취미도 당연히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디자이너의 선명한 취향은 그들의 디자인 작업에서 드러나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상생활에서도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와는 많이 달랐다. 디자인을 제외하고도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다 하나쯤 있는 취미도 없었다. 면접 볼 때 면접관과 대화할 소재로 쓸 수 있고, 너무 진부하지 않고, 팀원들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추측이 가능하면서 누구나 호감을 느낄만한 가짜 취미만 있을 뿐.


여가 시간을 보낼 땐 할 게 없어서 스마트폰 속 세상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열렬히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고, 자주 가는 단골 맛집도 없었다. 매사에 미지근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땐   ‘좋아서’라기보다는 ‘나쁘지 않아서’에 가까웠다. 이런 내가 외계인같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왜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까?




좋아하는 것을 꼭 찾아야 하는 걸까.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았다. ‘남들보다 좋아하는 감정을 담을 공간이 작은가 보다’ 하고 살았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고 거슬리기 시작했다. 멈춰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돌보지 않고 방치해 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뭘 좋아해?’라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물어볼걸.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의미와 같았다. 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어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좋으면 왜 좋고 싫으면 왜 싫은지 대답 없는 질문을 할수록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만 커졌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내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나를 포토샵 레이어 속에 넣어놓고 투명도를 점점 투명하게 조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도 딱히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바쁘게 사는 그들에게 대뜸 “난 좋아하는 게 없어. 나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바보라고….” 고민을 털며 당황스럽게 하고 싶진 않았다. 가벼운 위로는 해주겠지만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지인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었는데 생각보다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따라 하고 싶은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설렜다. 내 마음을 읽은 듯이 필요한 말을 해준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캡처해서 저장했다. 저장한 사진을 새 폴더에 넣어야 할 만큼 제법 많이 모았다. ‘좋아하는 것’과 ‘재미’를 주제로 여러 장 저장한 사진을 보니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재미를 쫓아갔다. 재미를 못 느끼면 억지로 하지 않았다. 재미있으면 취미에서 그치지 않고 일까지 이어가기도 했다. 나의 흐리멍덩한 동태 눈빛과는 다르게 그들의 눈빛은 생기가 돌았다. 그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정확히 알고 그걸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그들을 보며 부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1. 높은 삶의 만족도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 잘 알고 있다. 일상 곳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놔두었다가 언제든 꺼내어 쓰는 생활방식이 건강하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쳤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치유한다. 여유가 있을 땐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간다. 이런 모습을 봤을 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2. 주체적인 삶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이 우선인 삶을 지향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과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살아간다.

 

3. 자기만의 색깔

어렸을 때부터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자기만의 색깔은 바지와 신발 사이에 살짝 보이는 양말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 글씨체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찍은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마치 가만히 있어도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드러나는 것 같았다.


4. 자신 있는 태도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 싫어하는 것도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남들보다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본인의 미래를 자신 있게 그려나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찾느냐였다. 자기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준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본인에게 맞는 방법일 뿐이었고, 나에게 맞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들이 공통으로 말한 것이 있었다. 지금 바로 무엇이든 해보라는 것. 


앞으로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 ‘내가 좋아하는 것 찾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더 이상 매사에 그냥저냥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평생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삶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재미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낮아진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싶다. 뭐든 푹 빠져서 좋아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몰입하고 싶다. 다시 디자인이 좋아질지 전혀 상상도 못 한 무언가가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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