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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밋 Feb 22. 2024

매일 메일 읽기

메일함을 매일 열어보는 이유

디자이너가 영감을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은 핀터레스트와 비핸스를 둘러보는 것이다. 핀터레스트는 시각적인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쉽게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며, 비핸스는 디자이너가 본인의 창작물을 홍보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디자인 영감을 얻고 싶을 땐 월간 디자인 매거진과 잘 나가는 디자인 에이전시 웹사이트를 둘러봤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언제부턴가 디자인 업계 바깥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디자인 관련 정보만 파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가 하는 이야기 말고, 디자인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뉴스레터를 추천하는 게시물을 발견했고, 뉴닉과 어피티를 구독했다. 뉴닉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복잡한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요약해 전달하는 뉴스레터이며, 어피티는 사회초년생을 위해 경제와 재테크 뉴스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뉴스레터 구독 신청을 한 후 평소에 쓸 일이 없어 비밀번호도 가물가물했던 개인 메일함에 들어갔다. 스팸메일로 가득했던 메일함에 구독한 메일이 하나씩 오기 시작했다. 무료여서 큰 기대 없이 구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좋아서 놀랐다. 초반에는 신나서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읽었다. 하지만 무료 서비스는 양날의 검 같았다. 무료 서비스 덕분에 좋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뉴스레터를 읽지 않고 쌓아두는 날이 늘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뉴스레터는

유료 뉴스레터 ‘롱블랙’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롱블랙은 하루에 하나씩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담긴 노트를 발행하고, 발행한 지 24시간이 지나면 읽을 수 없는 뉴스레터다. 뉴스레터를 제때 안 읽고 메일함에 쌓아뒀던 나에게 딱 좋은 시스템이었다. 역시 유료인 만큼 완성도가 높았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평소에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의 글에서 생각지 못한 영감을 얻었을 때였다. 농구선수, 비건 화장품 브랜드 대표, 바리스타 등 유튜브에서 봤으면 그저 넘겼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롱블랙 덕분에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면 캡처해 두는데, 캡처본 중 70% 이상이 롱블랙 콘텐츠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롱블랙은 문장 저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장한 문장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패션 디자이너 지용킴의 좋아하는 감각을 기르는 것에 대한 인터뷰다.


저는 옷을 어렵게 좋아했어요.  좋은 옷을 파는 공간도 적었고,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도 없었죠. 늘 컴퓨터를 켜 해외 사이트를 다니며 국내에 없는 뭔가를 찾아다녔습니다. 일본과 영국에서 공부할 때도 도서관에서 살았죠. 지금의 분위기는 조금 다른 듯해요.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디자이너를 좋아하는지 물으면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해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좋아요’를 눌렀다고만 해서 내가 그걸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닌 거죠. 요즘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기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해요. 결국, 절대적인 나의 감각을 키우려면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롱블랙 <지용킴:햇빛도 패션이 될 수 있다, 전에 없던 옷을 제안하는 법>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구나!’ 싶었다. 옷을 어렵게 좋아한 지용킴과는 다르게 나는 모든 걸 쉽게 좋아하려고만 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만의 감각으로 발전시킨 그의 노력이 흥미로웠다.


구독 중인 뉴스레터는 대부분 정보성 콘텐츠이다. 그중 유일하게 다른 성격의 뉴스레터가 밑미레터다. 밑미레터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음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다. 월요일이 뉴스레터가 가장 많이 오는 날인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먹듯이 마지막에 밑미레터를 열어본다. 밑미레터에서 보고 좋았던 문장이 있다. 이 문장 덕분에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던, 오랫동안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온 일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게 되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고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저항하고 불평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요. 불평을 하면 스스로가 희생자가 되지만 자신의 의견을 밖으로 발산하면 힘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밑미레터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일이 있나요?>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앞으로는 불평하는 단계에 머물러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실행하고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히 읽은 문장 몇 줄로 단숨에 달라지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고 위로가 되었다.



뉴스레터를 좋아하는 이유

굳이 새로운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떠먹여 주는 뉴스레터가 좋았다.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세상에서 내 관심사 밖의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뉴스레터와 비슷한 내용을 전달하는 유튜브도 여럿 구독해 놨지만, 엔터테인먼트 성격의 유튜브 채널에 먼저 손이 가서 결국 잘 안 보게 된다.


글을 읽고 싶지만 책도, 잡지도, 신문도 읽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무엇이든 가볍게 읽고 싶지만, 내용은 어느 정도 깊이가 있었으면 했을 때 뉴스레터가 딱 좋았다. 읽는 데 부담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매일 아침마다 뉴스레터를 읽는 습관이 형성됐다.


많은 뉴스레터가 무료이지만 뉴스레터는 운영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개인이나 회사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유료 서비스를 안내하고, 협업의 기회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로 사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목적성을 띠고 있지만 정성 어린 내용이 눈에 먼저 들어와서 좋았다. 그래서인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보다 노골적인 느낌이 덜하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낮아서 뉴스레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두 개를 구독했던 뉴스레터가 지금은 스무 개로 늘었다. 뉴스레터마다 발행주기가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나 많아졌다. 자주 챙겨보지 않는 뉴스레터는 해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둘러봤지만 뉴스레터 각자의 매력이 달라서 구독 취소할 게 없다.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사실은 하나 더 구독하고 싶은 뉴스레터가 있다. 철학 주제의 뉴스레터 ‘전기가오리’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꽤 오래전부터 구독하고 싶었지만, 평소에 철학에 관심이 없어서 구독하기를 고민했다. 하지만 전기가오리는 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즉 실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에 구독해 보고 싶었다. 조만간 구독하는 뉴스레터가 하나 더 늘 것 같다.




구독하고 있는 모든 뉴스레터 운영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무료 뉴스레터 운영자에겐 더욱 감사하다. 읽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정보를 왜 돈도 안 받고 사람들에게 보내는 거지?’ 싶을 정도로 유익한 무료 뉴스레터가 널렸다. 그들은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무료 뉴스레터를 발행하겠지만 구독자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뉴스레터 끄트머리에는 참여를 독려하는 문구로 마무리한다. 내용이 어땠는지 별점을 달라고 하거나, 후기를 보내달라고 하는 요청을 늘 귀찮다는 이유로 넘겼다. 이제는 애정을 담아 별점도 누르고, 간단한 의견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조금씩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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