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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밋 Jul 22. 2024

신경 쓸 게 많은 독립출판물 디자인

<도대체 난 뭘 좋아해?> 비하인드 스토리

글을 다 쓰고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시작했다. 내지에 이미지를 넣을 계획이 없었고, 흑백으로만 할 생각이라 표지 디자인만 잘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아니,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아주 아주 아주 많았다.






책 만들기 수업을 들을까, 혼자 할까

온라인에 '독립출판 책 만들기 수업'을 검색하면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수업이 많이 나온다. 처음엔 책 만들기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 블로그 후기를 몇 개 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을 보며 혼자서 제작했다. 책은 <나만의 책 만들기> (스토리지북앤필름)와 <된다! 책 만들기 with 인디자인> (이지퍼블리싱)을 보면서 했다. 나는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알고 인쇄 경험이 있어서 혼자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책 만들기 수업에 참여했을 것 같다.



사례 조사

우선 대형서점, 독립서점에 가서 판매 중인 책을 다 훑어보며 책 표지 디자인을 조사했다. 에세이는 어떤 판형이 많은지, 눈에 들어오는 표지 디자인은 무엇인지,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의 디자인은 어떤 점이 다른지 파악했다. 북디자이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작업물을 찾아보기도 했다. 내지 디자인은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꺼내서 쌓아놓고 세세하게 내지에 들어갈 요소(목차, 장표제지, 소제목, 여백, 쪽수, 주석, 판권지 등)를 어떻게 표기했는지 조사하고 적용했다. 


여기서 꿀팁은 디자인 작업할 때 내가 제작할 책과 비슷한 판형과 쪽수의 책을 하나 구입하거나 빌려서 작업할 때 옆에 두고 자주 비교해 보면서 작업하면 도움이 되어 좋다.  



세상엔 서체가 너무 많다

본문에 사용할 서체를 선택해야 했다. 회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할 땐 고딕 계열 서체를 주로 썼는데 에세이 책은 대부분 명조 계열 서체를 썼다. 세상에는 수많은 명조체가 있기에 책 본문에는 어떤 명조체를 쓰는지 알아봐야 했다. 검색도 하고 관련 서적도 찾아보니 무료 서체 중에 본명조와 Kopub 바탕체가 마음에 들었다. 


본명조는 서체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고, Kopub 바탕체는 서체가 날렵한 느낌이었다. 둘 중에 뭘 쓸지 한참 고민하다가 가독성을 중점으로 눈에 더 잘 들어오는 Kopub 바탕체를 선택했다. 하지만 샘플 제작 후 또 다른 서체로 바꿨다. 


Kopub 바탕체 중 가장 얇은 Light로 작업했어도 컴퓨터 화면과는 다르게 샘플은 더 진하고 두껍게 나와 답답하게 보였다. 집에 있는 다른 책과 비교해도 서체가 확실히 진하고 두꺼웠다. K 100 값의 검은색 서체를 K 95로 조금 밝게 적용해 봤지만, 망점 때문에 서체가 미세하게 흔들려 보여서 얇은 굵기의 서체로 바꿔야만 했다. 결국 깔끔한 분위기에 개성이 조금 더해진, 5개 종류의 굵기를 제공하는 아리따 부리로 변경했다.


서체를 결정했으면 서체의 크기, 자간, 행간 넓이도 정해야 한다. 각각 어떻게 설정했느냐에 따라 가독성이 좋아지거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도 끝에 크기 10pt, 자간 -25, 행간 21pt로 정했다.


Kopub 바탕체(왼쪽) / 아리따 부리(오른쪽)


종이는 뭐로 고를까

소량 제작이라 종이를 고를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무난하게 표지는 스노우지 250g에 무광코팅, 내지는 미색모조지 100g으로 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종이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코팅을 안 하고 싶었는데 파손이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코팅을 했다. 블로그 후기를 보면 생각보다 표지를 랑데뷰지에 무광코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 랑데뷰지의 특유의 거친 느낌을 코팅으로 덮어서 의미가 없어지고, 기포가 생길 위험도 큰데 인쇄소 사이트에 이런 설명을 따로 명시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가장 중요한 표지 디자인

원래는 그림에 자신이 없어 표지에 일러스트를 넣을 계획이 없었다. <도대체 난 뭘 좋아해?> 속의 내 모습은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했고, 때로는 무기력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표지 디자인을 위해서는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출판물스러운 표지를 디자인하고 싶었다. 나에게 독립출판물스러움이란 여백이 많고 레이아웃이 자유분방하면서 개성 있고 그 맛에 사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대형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디자인 요소가 잘 정리되어 있고 완성도가 높으며 책 제목 외에도 부제, 부가 설명, 추천사 등이 꼭 적혀있다.

일부러 어설픈 느낌을 더하고 싶어서 일러스트에 컬러를 적게 넣고 제목 외에는 다른 내용은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제목도 단순히 한 줄로 적지 않고 '도! 대! 체! 난! 뭘! 좋아해?' 이렇게 답답함을 호소하는 느낌으로 과하게 한 자씩 띄어서 배치했다. 


대형서점 출판물(왼쪽) / 독립출판물(오른쪽)


책등에 들어갈 제목을 세로로 쓸지 가로로 쓸지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대형서점에 가서 봐도 무엇이 더 많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율이 비슷해서 고민 끝에 더 잘 보이는 세로 쓰기로 정했다. 세로 쓰기로 서체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한 글자만 살짝 옆으로 가도 제목이 출렁거렸다. 내가 쓴 서체가 세로 쓰기용 서체도 아니어서 서체의 모음과 자음을 쪼개서 조절해야 했다. '아 그냥 쉽게 쉽게 가로로 하면 안 돼?' 여러 번 유혹에 넘어갈 뻔했지만 결국 세로 쓰기로 마무리했다.


책날개는 당연히 해야지 생각했었다. 평소에 책날개를 책갈피 대용으로 자주 사용하고, 책날개가 없는 책은 표지가 쉽게 휘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인쇄소 웹페이지에서 자동 견적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왜 독립출판물 날개가 없는 책이 많은지. 책날개 유무에 따라 견적이 꽤 차이 났다. 순간 흔들렸지만 책날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디자인 다 하고 샘플을 받았을 때 의도한 대로 독립출판물스러워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서 다시 보니 완성도가 낮아 보이면서 별안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결국 표지 레이아웃을 싹 다 바꿨다. 제목은 읽기 쉽게 바꿨고, 일러스트를 4개에서 3개로 줄이면서 크기를 키우고, 표지만 봐도 책에 공감할 수 있도록 제목 외에 부가 설명을 더했다. 변경한 디자인이 더 만족스러웠다.


기존 표지(왼쪽) / 변경 표지(오른쪽)





독립출판물 디자인은 기존에 하던 디자인 분야와 다른 디자인이라 쉽지 않았다. 디자이너인 나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은 디자인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독립출판물 제작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사실 디자인이 눈에 띄지 않는 독립출판물은 관심 있게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 독립서점에 가면 모든 독립출판물을 눈여겨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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