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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화 Dec 07. 2021

해외살이 7년, "니하오" 인사에 주저앉을 뻔한 이유

사소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이해해준 책, '마이너 필링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omn.kr/1w5t0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해외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익숙지 않은 차별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받았던 차별은,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들 때문이었다. 이러한 차별은 내 생애 걸쳐 받아온 아주 익숙한 차별이라 되려 이게 차별인지 인식이 안 될 정도로 내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해외로 나와 살게 되면서 새로운 문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별도 받아들여야 했다.


차별에도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누군가가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찢어 나를 바라보며 웃거나, 내 귀에다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누가 봐도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 다른 하나는 은근히 내가 한국인이라 차별받는 기분이 들 때다.


예를 들면, 내가 쓴 논문을 과학저널에 제출하면 영어 원어민이 여러 번 교정한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이상하다고 지적받는다거나, 내가 가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야외조사 가는 일에 제외되거나 하는 아주 미묘한 차별적인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을 나누면, '네가 섬세하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감받고 싶어 꺼낸 말에 되레 감정만 상했다. 그런 피드백이 이어지자 내 감정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예민해서 오해하는 것이라고 내 감정을 부정해왔다.


그런데 이런 나의 사소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이해해주는 책이 등장했다. 바로 2020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자서전 부문)을 수상한 캐시 박 홍 작가의 수필집 <마이너 필링스>(노시내 옮김, 출판사 마티)이다. 캐시 박 홍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인이다. 이 책은 팬데믹 선언 전 2020년 2월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한국에는 2021년 8월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  <마이너 필링스> 책표지 ⓒ 출판사 마티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작가 개인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엮은 수필집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작가는 작가 개인이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 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 1세대의 역사와 그들의 트라우마,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 등 인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저자는 내가 느낀 감정을 책 제목인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라고 정의하였다. 마이너 필링스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소수적 감정이다. 작가는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며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유명해진 건 코로나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이슈 되면서다. 팬데믹으로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이 점점 심해지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쉬쉬했던 아시아인 사이에서 이 책이 입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나 2021년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 마사지숍에서 총기 사건으로 6명의 아시아인이 살해당하는 사건 때문에 이 책은 더욱 주목받았다.


나도 그 무렵에 이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애틀랜타와 멀지 않은 캐나다에 살고 있으니 그 사건이 무섭게 다가왔다. 특히나 내가 사는 동네에 인종차별 사건이 계속 발생하던 차였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난 후, 며칠 밖을 못 나갔다.


그러다 사건 발생 며칠 뒤 용기를 내 운동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어떤 젊은 백인 청년이 나에게 "니하오"라고 했고, 나는 별말 아닌 그의 "니하오"에 무서워서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계약직으로 사는 이방인이었다. 프랑스에서 5년, 캐나다에서 2년. 길거리에 지나가면 누군가 말을 걸며 쫓아오거나, 언제 어디서나 성적 대상이 되어 누군가의 눈요깃거리가 되어야 했다. 누군가가 대뜸 차 문을 열어 나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일들이 일상이었다.


나는 어느 나라에도 시민인 적이 없었고, 나는 여기서 잠시 살다 갈 사람이니 그냥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이 부정적 감정을 마음속 깊히 집어넣었다. 그러나 어떤 행인의 "니하오"에 마음 한편에 눌러왔던 감정들이 올라왔던 것이다.

             

▲  공원에서 뛰어노는 사람들 모습 ⓒ 신진화


이 책을 읽으며 내 감정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받아들이며 나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주변에 나를 '한국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그들 덕분에 점점 회복되어 갔다. 그와 더불어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도와 호기심이 높아진 덕도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가끔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차별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이러한 사소한 차별과 소수적 감정에 대해 이해해달라는 마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공감받기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내 삶을 조금 더 생각해달라는 애원이었다.


이 글을 쓴다고 다시 읽어본 작가의 말 중 한 문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남들에게 좀 더 이해받고 눈에 덜 안 보이는 존재가 되고자 이책을 썼다. 한국 독자들이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아시아인을 예속시켜온 백인 우월주의의 복잡하고도 견고한 근원을 더 잘 파악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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