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환경 속에 태어난 여러분께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구 평균 온도가 장기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 배우긴 했다. 그러나 그걸 피부로 직접 느끼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땐 밤 최저기온이 25°C 이상인 현상을 뜻하는 열대야현상을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 앞에서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면 여름을 나기 충분했기에 지구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과학자들의 유별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으로 폭우나 폭염과 같은 일이 빈번히 발생하며 우리의 생활 터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이젠 ‘지구 온난화’라는 말 대신 ‘기후 위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를 막 인지하기 시작한 기성세대와 태어날 때부터 기후 위기를 들으며 자라고 있는 세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구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을 때부터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자주 밀려온다. 학생들 상대로 강의할 때면 희망찬 미래를 들려주고 싶은데 기후학자들이 제시하는 미래 지구 시나리오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빙하로 지구의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빙하를 이용해 지난 80만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기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빙하는 얼핏 보면 얼음과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이 둘은 매우 다르다. 얼음은 물이 얼어 형성된 것이나 빙하는 연중 내내 내린 눈이 수백 년 수천 년 이상 동안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 것이다.
빙하에는 과거 대기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눈이 내려 땅에 쌓이는 동안,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 중에 흩날리고 있던 에어로졸이나 산불로 인해 발생한 숯과 같은 물질이 눈과 함께 쌓인다. 게다가 당시 대기도 빙하에 포집된다. 그래서 빙하 시료를 얇게 잘라 표면을 관찰해보면 투명한 빙하 속에 많은 공기 방울이 보인다. 이것이 과거 대기이다. 이 공기 방울을 터뜨려서 모아 과거 대기 중 이산화탄소나 메탄 농도를 복원할 수 있다. 빙하를 녹여 에어로졸 농도 변화나 산불 기록을 복원할 수 있다. 빙하를 녹인 물을 이용해 눈이 형성된 지역의 온도 변화를 복원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과거 기후를 측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의 기후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자연적인 타임캡슐인 빙하를 이용하면 과거 기후나 환경을 복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비가 내리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봄이 되면 겨울에 내린 눈이 다 녹아 버린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연중 내내 눈이 내리고 여름철에도 눈이 녹지 않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히말라야나 알프스와 같은 높은 산이나 그린란드와 남극과 같은 극 지역이다. 이 지역에 눈이 계속 내리고 쌓이게 되면 과거 대기 기록도 연속적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지역에서 형성된 빙하를 원통형 기둥으로 된 시추기를 이용해 수직적으로 빙하 시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빙하코어라고 한다. 빙하학자는 빙하코어를 이용해 과거 기후 기록을 복원하고 빙하가 남겨둔 과거 기후 기록을 읽으며 의미를 분석한다.
빙하학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도 현재도 아닌 지나간 지구의 과거를 연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지구의 과거에 대한 연구로 그치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인 1950년대부터 사람이 직접 기후 자료를 측정해 기후 실측 자료를 확보했다. 그러나 기후 실측 데이터의 길이가 매우 짧고 데이터를 측정하던 당시부터 이미 인류 활동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그래서 인류의 영향 없이 자연적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언제부터 기후가 인류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기후 자료를 이용하면 이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빙하학자들의 노력으로 빙하코어를 이용해 지난 80만년 동안 연속된 기후 데이터를 복원했다. 현생 인류가 탄생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0-3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땐 인류가 지구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적었다. 약 46억 년의 지구 역사 중 지난 80만 년이라는 기간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기후 조건이 지금과 매우 유사해 오늘날의 지구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빙하로 얻은 80만년 동안의 기후 데이터와 오늘날의 실측 데이터와 비교해 현재 지구의 상태를 알 수 있고 지구 기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빙하학자는 과거를 연구하지만 사실 지금의 지구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빙하는 중요한 기후 정보를 우리를 위해 남겨두었다. 빙하는 기후 위기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기록해 두었다. 짧은 연재 기사를 통해 빙하가 우리에게 남겨둔 기록을 여러분과 함께 읽으며 우리의 지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이 글은 틴매일경제에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