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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Dec 08. 2021

나를 버티게 해 준 그녀의 영화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omn.kr/14mc5



프랑스에 살기 시작하면서, 반강제로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됐다. 프랑스가 사랑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프랑스에서 항상 개봉했는데 그의 영화를 보는 동안엔 나는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잠시 홍대도 강릉도 잠시 다녀올 수 있으니까.


올해 처음으로 간 베를린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풀잎들’을 첫 영화로 봤다. 이 영화는 세상에 처음 상영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world premiere). 영화가 시작이 되자,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해 영화보다 관객들의 반응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관객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그들이 진지하면 나도 같이 진지해졌다. 꼭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 같았달까.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를 했다. 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살면서 모은 그의 표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모은 영화표에 그의 사인을 받고 싶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홍상수 감독님 근처로 갔다. 하지만 감독님 근처의 스텝들에 가까이 가진 못하고 감독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 발치에 떨어져 있는 감독님이 양팔을 번쩍 들더니 누군가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내 옆에 떨어졌고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내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내 옆에 그녀가 있었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 내가 말을 한번 건네보고 싶었던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 바로 배우 김민희였다.


실은 그녀를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이니까.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내가 아주 못났을 때,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나 스스로 다짐할 때, 그것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보면서 버틸 수 있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2012년 영화 화차가 개봉했을 당시 나는 대학원 신입생이었다. 학부 졸업 후, 잠시 회사를 다녔다. 일정 금액을 모으고 회사를 그만둔 뒤, 다시 내 길을 가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4년이란 공백기는 너무나도 컸다. 전공은 다 까먹었을뿐더러, 나는 공부하는 방법도 영어까지 다 잊었다.


그래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학원 수업은 논문을 스스로 읽고, 소화한 후, 그것을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논문조차 읽어 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학원 첫 수업, 어렵게 준비해 간 수업 시간에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 살얼음이 교실 구석구석 끼어 있는 것 같았던 차가운 수업 시간에 그 얼음을 깨부순 건 교수님의 한 마디였다.


‘야 거짓말하지 마.’ 


한 번이라도 좌절한 번 안 해봤을 학교 친구들 앞에서 나는 사기꾼이 되었다. 내가 영얼 못해서 저렇게 됐다는 건, 학교 안에 소문이 쫙 퍼졌다. 세상에서 제일 공부 잘한다는 애들 사이에 끼여서 영어 하나 못 읽는 무능력자로 그들과 함께 있는 일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기분이라 되려 노력은 더 힘들었다. 내 적성이 이거라고 기껏 찾아온 이 길에서 영어가 안돼 연구를 할 수 없는 내 상태가 한심했다.


기껏 회사에서 자기 꿈을 찾아 자기 길을 찾겠다고 온 사람이 자기 길 앞에서의 좌절은 그냥 패배자 선고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누군가 그려셨다. ‘회사 한번 그만두는 사람들, 자주 그만둔다. 그거 습관 된다’라는 그 말. 그 말의 숨은 말은 너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였다. 첫 발표를 마치고 그의 조언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그런 거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난 인내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말 이 길을 찾아서 떠나는 건걸요.’라는 그 말도 못 한 채 그만뒀는데, 이젠 내 길 앞에서 그만둬야 되는 상황이니 이건 연속된 실패는 인생의 패배자 선고였다.


그때 우연히 배우 김민희가 출연한 피플인사이드를 봤다. 10여 년 전 연기력 논란으로 연예계를 떠날까 했던 김민희가 무서운 연기력으로 화차라는 영화를 가지고 나온 직후의 인터뷰였다. 그때 그녀의 성장을 보면서 견뎠다. 그래도 김민희라는 배우는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날 것으로 보여줘야 했지만, 난 단지 10명 채 안 되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린 거니까. 나도 그녀처럼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달리 질지 모른다는 알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녀를 보며 꿈꿨다. 화차 때 보여준 그녀의 무서운 연기력은 10년 전 연기력 논란으로 휩싸였던 그녀의 미성숙한 연기력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나도 그녀처럼 10년 뒤 내 재능이 발휘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계속 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당신 덕분에 저도 이렇게까지 왔으니 당신이 더 잘 되면 저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사인해달라는 그 이야기에 영화관을 두려운 눈으로 살펴보곤 그녀 이름 석자를 내 영화표에 남기고 도망갔다. 그녀가 갈긴 그녀의 이름 석 자는 정말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수준의 사인이었다. 그녀 뒤에 있던 스텝이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등을 툭툭.


6년 전 영어 때문에 좌절했던 내가 아직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연구하고 있다. 아직도 영어 때문에 논문이 이해가 안 돼 학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너무 많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언어 장벽으로 하루 몇 줄 밖에 못 쓰고 있을 때 이게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다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연기력 논란을 겪었던 한 배우가 화차라는 영화를 거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나도 꾸준히 노력하면 지금 보더 더 잘할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견딘다.


이젠 재능을 갖춘 그녀가 그녀의 지극히 사적인 일로 세상에 사라졌다. 그녀의 멋진 연기를 못 보는 게 아쉬운 일이다. 한 가정에겐 나쁜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은 한 건 없다.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사랑을 잃은 사람이지, 우리는 아니다. 사랑이 떠나고 시작되는 건 그들의 이야기고 우리와의 일은 아니니까. 다시 그녀를 홍상수 감독의 영화뿐만 아니라 더 좋은 작품으로 그녀를 만나는 것, 오랜 팬으로서 그때가 오기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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