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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텔라 Mar 03. 2023

<스위니토드>, 얕보면 '피' 봐요

- 이중성의 관점에서 본 뮤지컬 <스위니토드>와 인물 분석 -






이미지 출처: ‘열면 ‘피 보는’ 냉장고까지? •••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 TMI (올댓아트 공식 블로그)


“피 전용 냉장고, 열면 ‘피’ 봐요.” 말장난은 재미있지만, ‘피 전용 냉장고’라니? 진짜인지 장난인지 감이 안 잡히는 이 냉장고, 놀랍게도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대기실에 실제로 존재한다. “피 전용 냉장고를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면 피 소품이 많이 쓰인다는 건데, 뱀파이어라도 나오는 뮤지컬인가?”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뮤지컬엔 뱀파이어 같은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낮은 곳에 웅크린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일 뿐.


꿈도 희망도 없는 잔혹한 살인극 <스위니토드>, 대다수에겐 동명의 영화가 더 익숙할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전설 ‘스위니토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현대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 작곡하였으며 1979년 브로드웨이에 초연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많은 뮤지컬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현대 뮤지컬의 토대를 구축한 파격적인 작품, <스위니토드>를 조각조각 살펴보고자 한다.


<스위니토드>, 이중성으로 구축한 정반합의 뮤지컬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한 마디로 ‘이중성의 뮤지컬’이다.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뮤지컬의 제작 원리 및  형태, 손드하임의 작품관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의 형태는 크게 통합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북 뮤지컬’, 해체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콘셉트 뮤지컬’로 나뉜다. 먼저 통합의 원리란 드라마 / 음악 / 춤의 완전한 결합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 원리로 만들어지는 ‘북 뮤지컬’은 기승전결이 뚜렷하며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북 뮤지컬은 미국 뮤지컬 형성기인 1940-60년대에 로저스, 해머스타인 2세의 주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허나 통합의 원리가 복잡한 시대상을 전부 담을 수 없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뮤지컬의 정형화된 논리를 깨기 위해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끌어온 것이 바로 해체의 원리다. 해체의 원리는 드라마 / 음악 / 춤의 결합을 해체하고 극을 파편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지는 ‘콘셉트 뮤지컬’은 상징과 은유에 중심을 두며, 기존의 낭만적 성향에서 벗어나 철저히 삶과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집중한다. 콘셉트 뮤지컬은 1940년부터 태동하였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여 1970년에 전성기를 맞았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콘셉트 뮤지컬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손드하임은 1970년대 초에 이미 <컴퍼니(1970)>, <리틀 나이트 뮤직(1973)>을 통해 콘셉트 뮤지컬의 전형을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콘셉트 뮤지컬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바로 지나친 형식 탈피로 인해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손드하임은 통합 원리와 해체 원리를 융합해 두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스위니토드>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이미지 출처: OD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od_musical)


<스위니토드>는 이야기 구조와 음악 동기에서 통합 원리를 따르되 소재와 음악에서는 해체의 원리를 따르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우선, 제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음악이 극에 위화감을 조성한다(해체의 원리). 예컨대 <The Ballad of Sweeny Todd>의 경우, 마네킹처럼 배치된 인물들이 '스위니토드의 악독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데 이로 인해 관객은 무대 위의 상황을 허구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Epiphany> 도중 스위니토드는 관객 한 명 한 명을 직접 가리키며 윽박지르는데, 이는 무대와 객석 간 제3의 벽을 해체하는 장치다. 이처럼 음악이 관객의 심리적 몰입과 동화를 방해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선형적인 음악과 작품 전반에 반복되는 음악 동기가 작품에 필연성을 부여한다(통합의 원리). 인물을 상징하는 모티프가 각 캐릭터의 테마곡에 변형되고 이것이 결국은 비극이라는 공통 결말로 귀결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렇듯 손드하임은 통합과 해체의 메커니즘이 한 작품 내에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것이 필자가 <스위니토드>를 ‘이중성의 뮤지컬’로 칭하는 이유이다.


선과 악을 오가는 인물들, 그들의 종착지 '어리석음'


앞에서 설명했듯, 서사와 음악을 포함한 <스위니토드>의 모든 요소는 이중성을 띤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등장인물에 집중하여 <스위니토드>의 이중성을 톺아보고자 한다.


<스위니토드>의 모든 등장인물은 극단적인 선과 악을 내재하고 있다. 이를 인물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스위니토드: 복수 – 정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본명은 벤자민 바커. 그는 터핀 판사에 의해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15년 간 감옥살이를 하다 복수를 다짐하고 ‘스위니토드’라는 이름으로 런던에 돌아온다.

스위니토드의 복수는 분명 불합리하다. 터핀 박사에게 살인으로 앙갚음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인물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그러나 그 복수의 동기,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과 터핀에 대한 원망만큼은 합리적이다. 스위니토드는 잔인할지언정 자신만의 정의를 행하는, 한 마디로 ‘불합리한 정의’를 지닌 인물이다.


러빗 부인: 탐욕 – 사랑

벤자민 바커의 이발소가 있던 건물 1층에서 망해가는 파이 가게를 운영한다. 스위니토드와 범죄 파트너를 맺고, 그가 죽인 사람들의 시체로 인육 파이를 만든다.

러빗 부인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스위니토드가 벤자민 바커였던 시절부터 그를 사랑했으며, 파이 가게의 조수 토비아스를 (무의식적으로나마) 자기 아들처럼 애지중지 대한다. 허나 그 사랑의 실상은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정을 스위니토드가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그릇된 탐욕일 뿐이다. 사랑으로 꾸민 러빗의 탐욕은 결국 스위니토드, 토비아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비극으로 몰아넣고 만다.


터핀 판사: 배덕 – 합법

런던의 판사. 모든 시민이 준법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하에 작은 죄도 엄중히 판결한다. 그의 사명은 겉보기에는 매우 정의롭고 신실해 보인다. 허나 실상은 배고픔에 빵 한 조각을 훔친 거지 소년에게 사형을 내리고, 남의 아내를 빼앗아 그 딸까지 차지하려고 하는 배덕한 인물일 뿐이다. 스위니토드의 완벽한 대척점에 선 터핀 판사는 스위니토드와는 정반대로 ‘정의로 가장한 불합리’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거지 여인: 광기 – 가련함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런던 거리를 배회하는 인물. 구슬픈 목소리로 한 푼 만 달라고 구걸하며 안쓰러운 감정을 자아내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성매매를 암시하는 저속한 행동으로 미친 자의 광기를 보인다.

거지 여인은 등장 내내 사회적 약자와 미친 여자의 자아를 넘나들며 비극을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극 말미, ‘미친’ 거지 여인이 사실은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가련한’ 루시임이 드러나면서 극의 아이러니와 이중성의 비극이 심화된다.


토비아스: 간교 – 순수

이발사 피렐리의 어린 조수. 피렐리가 죽은 후에는 러빗 부인에게 거둬져 파이 가게 일을 돕는다.

토비아스는 1막에서는 피렐리의 가짜 발모제를 판매하고, 2막에서는 러빗 부인의 인육 파이를 홍보한다.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의 진실을 알았든 몰랐든 간에, 추악한 의도를 품은 인물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토비아스는 간교한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정을 베푼 러빗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에서는 타인의 어두운 속내를 꿰뚫지 못하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조안나: 무지 – 아름다움

스위니토드의 딸. 갓난아기 때 터핀 판사에게 거둬졌다. 터핀의 아내가 될 위기에 처하자 안소니와 함께 탈출을 공모한다.

터핀 판사는 조안나를 가리켜, “창문도 없는 어두운 방에 갇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라고 평가한다. 그의 평가대로 조안나는 자기 어머니를 쏙 빼닮아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나, 대화 몇 번 안 나눠 본 남성에게 자신의 미래를 덜컥 맡길 만큼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무지한 인물이다.


안소니: 맹목 – 낭만

선원이다. 스위니토드가 런던으로 도망쳐오는 배에서 만났다. 우연히 만난 조안나에게 첫눈에 반해 그와의 도피를 약속한다.

그의 사랑은 낭만으로 가득 하나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어딘가 뒤틀린 데가 있다. 정신이 불안정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여인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점, 그 여인을 위해 살인까지 아무 죄책감 없이 감행한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한편 에서 조안나가 두려움에 떨고 있음에도 앵무새처럼 사랑 고백만 되풀이하는 모습에서는 조안나보다 조안나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OD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od_musical)


위와 같이 각기 다른 이중성을 보유한 등장인물들은 절대 교감하고 교차되지 않으나 결국 ‘어리석음’이라는 궤를 같이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각자의 악에 미쳐 상대의 진실을 간파하지 못하는 데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스위니토드는 복수에 미쳐 루시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러빗의 탐욕과 거지 부인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러빗은 스위니토드를 향한 탐욕에 지배당해 토비아스의 순수한 사랑을 눈치채지 못한다. 세상에 대해 무지한 조안나는 안소니의 기이함을, 조안나를 사랑하는 자신에 취한 안소니는 조안나의 정신박약과 무지를, 너무 순수한 토비아스는 러빗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유일하게 거지 부인만이 인물들의 악한 속내를 눈치채고 고발하나, 그가 광기에 서려있다는 이유로 묵살당할 뿐이다. 그리고 거지 부인 본인마저도 광기에 사로잡혀 스위니토드가 자신의 남편 벤자민 바커임을 끝까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이중성을 남에게 적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물들의 최후는, 단 한 명이라도 진실을 보기 위해 애썼다면 피할 수 있었을 ‘어리석은’ 비극일 뿐이다.


맺음말


결국 <스위니토드>는 악을 품은 채 선을 가장하는 인물들, 거지 부인을 제외한 극 중 누구도 진실을 보지 못하는 데서 초래되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극에서 이중성의 메타포가 강조될수록 관객은 역으로 진실을 보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극 내내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한 채로 스위니토드가 설파하는 복수 이면의 불합리, 모두가 외면하는 거짓 부인의 정체, 러빗이 어필하는 사랑의 이면 등을 지적하며 그들을 향해 적나라한 냉소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스위니토드>가 ‘이중성’이라는 명확한 해설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변호하자면 <스위니토드>의 인물들이 서로의 진실을 간파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악을 발견하지 못할 만큼 그들 눈앞에 보이는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들에게 서로를 탐색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서로에 대한 정보값을 더 많이 수집했더라면, 혹은 당신이 이중적이듯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실마리를 누군가가 던져주기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스위니토드>를 관람하는 내내 우리가 그 가능성을 묵살하고 있지는 않은가.


손드하임은 음악과 소재로 관객에게 극 중 모든 것이 이중적이라는 단서를 쥐여준다. 우리가 극 중 인물들의 진실을 손쉽게 간파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자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스위니토드> 속 인물들보다 더 많은 정보값을 갖고 있을 뿐이다. <스위니토드>의 장막을 걷어내는 순간 극 중 인물과 우리는 정확히 동일선상에 있다. 극 중 인물이 그렇듯 우리도, 세상 모든 것이 단편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달의 이면을 가리켜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눈앞의 정보가 진실과 거짓을 교란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스위니토드>에서는 오직 미친 사람만이 진실을 보지만, 그가 미쳤다는 이유로 누구도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관객은 이를 보며 눈앞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안타까워한다. 허나 생각해 보라, 현실에서 진실을 계속해서 캐묻고 이면을 지적하는 이를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직 미친 사람만이 진실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미친 사람인가, 혹은 자신이 진실을 보고 있다고 믿는 위선자인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스위니토드>가 말하는 인간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니까.


이미지 출처: OD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od_musical)


한국 <스위니토드> 4연은 서울 샤롯데시어터에서 22년 12월 1일부터 23년 3월 5일까지 올린다. 스위니토드 역에 강필석 / 신성록 / 이규형, 러빗 부인 역에 전미도 / 김지현 / 린아, 터핀 판사 역에 김대종 / 박인배, 안소니 역에 진태화 / 노윤, 토비아스 역에 윤은오 / 윤석호, 조안나 역에 최서연 / 류인아 배우가 분한다. 6년 만에 스위니토드로 복귀한 전미도 배우, 유독 전미도 배우와 합이 좋기로 유명한 강필석 배우, 컨셉 포토 공개 후 ‘팀 버튼이 빚어놓은 비주얼’로 소문난 신성록 배우, 2022년 하반기 연극 <살아있는 사람을 수선하기>에서 1인 다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연기력을 입증한 김지현 배우 등. 지금 놓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캐스트를 더 늦기 전에 무대에서 확인하시라.



뮤지컬 <스위니토드>

2022.12.01 - 2023.03.05 (4연)
서울 샤롯데씨어터
공연시간 170분 (인터미션 20분)

강필석, 신성록, 이규형, 전미도, 김지현, 린아, 김대종, 박인배, 진태화, 노윤, 윤은오, 윤석호, 최서연, 류인아




* 이 글은 포스타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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